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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또노미아(Autonomia)

아우또노미아총서 조회 수 6305 추천 수 0 2003.09.26 04:46:02
rhizome

아래는 <오마이뉴스> 9월 15일자 기사입니다.




“아우또노미아는 전 인류적 대안이다”
네그리 사상 본격 입문서 <아우또노미아> 출간 앞둔 조정환씨
정병진 기자



조정환 선생은 전남대 윤수종 교수와 더불어 국내에 안토니오 네그리를 중심한 ‘아우또노미아 사상’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5일 그를 갈무리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래 인터뷰 내용은 그때 만나 대화한 내용을 이메일 교환을 통하여 수정보완한 것이다.<필자주>


- 사노맹 및 <노동해방문학> 활동경력으로 십여년간이나 수배를 받아왔던 것으로 안다. 과거 함께 활동한 박노해, 백태웅씨 등과는 아직도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가? 그들의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전국지명수배가 된 것은 199010월이지만 내가 자진 수배생활을 시작한 것은 198938일부터였으므로 수배가 풀린 199912월 말까지 정확하게 109개월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이 기간 중에 박노해 시인과는 깊고 의미 있는 교류를 가졌다. 많은 것을 서로 주고받았던 것 같다. 투옥과 수배라는 강제된 분리가 오래 지속된 후 2000년 초에 한 번 만난 것을 제외하고는 박노해 시인과 더 이상 직접적 교류는 없다. 그러나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그의 활동 소식을 접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교류까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백태웅씨는 유학을 떠나기 직전인 1999년 말에 나의 수배해제 문제와 관련하여 한 번 만난 것이 유일한 것이다. 나는 그들 나름대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평등, 자유, 민주, 정의와 같은 1980년대 사회주의 이상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일련의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것들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와의 투쟁에서 얼마나 유효한 방법일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특히 현대의 지구화된 자본주의를 극복할 주체성을 발견하고 구성하는 과제가 외면되고 있으며 1980년대의 노동계급 주체성 입장으로부터도 커다란 후퇴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 이번에 출간될 책 <아우또노미아>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달라.


“아우또노미아(자율)라는 용어는 1960~70년대 이탈리아의 사회운동 속에서 출현하고 발전했지만 나의 책 <아우또노미아>에서 나는 그것의 전 지구적 현재성을 살려내고자 했다. 이탈리아에서 그것은 제도화되고 타협적으로 된 좌파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자본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전투성을 주로 표현했다. 물론 이것은 21세기 아우또노미아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지향이다. 하지만 21세기 아우또노미아에서 이 전투성은 저항, 탈주, 구성이라는 세 가지 지향으로 세분되고 그 중에서도 구성이 가장 근본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아우또노미아가 ‘영원하게-되기’의 운동이라는 윤리적 함축을 강하게 갖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맑스의 가장 깊은 탐구 지점이었던 가치관계의 발생 공간에서 조직론에 이르는 삶과 운동의 전 영역에 걸쳐 탐구했다. 이것은 잉여가치화 대 자기가치화, 주권합성 대 계급구성, 제국 대 다중, 자본주의 대 코뮤니즘, 주권적 조직화 대 자율적 조직화 등 자본관계 운동의 전 영역에서 사회적 적대의 발생과 순환을 밝혀내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것을 이탈리아 출신의 걸출한 이론가이자 활동가이며 <제국>의 공저자 중의 한 사람인 안또니오 네그리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또 검토하는 방법으로 수행했다. 이 작업은 <제국>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표명 정도가 아니라 20세기 사회운동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이자 1968년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인류적 사유의 집약으로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 지금 이 시대에 왜 “아우또노미아”인가? 네그리를 중심한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는 지금의 한국사회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줄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아우또노미아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제안은 전 지구적 인류의 생산적 협력이 인간해방의 현실적 힘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에 대한 아우또노미아의 관점이 단순한 반지구화, 즉 지역화나 국가화와 같은 복고적이고 전통적인 관점과 갖는 차이가 있다면 바로 국경을 넘는 인류의 교류와 연합을 전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라는 아우또노미아의 발생 지역, 발생 국가의 문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사회주의 운동이 러시아에서 실현되고 세계 각국 민중들의 지향으로 받아들여졌던 것과 유사하다.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그것이 민족국가 주권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민족국가 주권을 이행의 도구로 사용하려 했던(그래서 결국 민족국가 주권에 한정되고 그것으로 귀결되었던) 사회주의보다도 더 그것의 국가적 발생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아우또노미아는 이탈리아적 대안일 뿐만 아니라 한국적 대안이고 나아가서는 전 인류적 대안이다. 전 지구화는 세계시장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인류의 삶의 모든 현상들은 세계시장의 총체적 운동의 효과이다. 뉴욕의 맘모스 금융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빈곤과 비참의 지대마저도 그 효과들이다. 한국 역시 세계시장의 한 구역이자 일부로서 가동된다. 세계시장은 세계시민, 즉 인류의 생성공간이다. 내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국적을 넘어서 세계시장 속에서 자본에 대항하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계시민적 주체성이다.”


- 아우또노미아가 제시하는 “혁명”이 생활세계의 탈식민화, 탈권력화를 지향한다고 할 때 듣는 이에 따라 다소 막연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우또노미아는 <당대비평>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우리 안의 일상적 파시즘” 논의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건가? 또한 생활 속에서의 코뮤니즘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


“확실히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권력을 장악하여 새로운 혁명 법령을 선포하는 식의 방법에 비해 덜 화끈한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로 센세이셔널하지 못하다. 그러나 센세이셔널한 것에 대한 숭배는 우리의 감성 속에 내면화된 정신적 사대(事大)주의의 표현이다. 적대는 삶의 모든 영역, 부문, 시간을 관통한다. 그 모든 지점들에서 싸움과 대안의 축적이 필요하다.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는 이렇게 우리의 시선을 미시적인 시공간 속으로 이동시키고 삶의 미시적 운동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것은 아우또노미아가 드러나는 한 모습이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우또노미아는 ‘우리안의 파시즘’론보다 좀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우리, 민중, 다중을 바라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안의 파시즘을 발견하는 일을 우리안의 힘, 우리안의 활력, 우리의 구성력을 살려내기 위한 노력의 일부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자율적 노력은 늘 새롭게 창안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까지 꾸준이 진행되어온 것들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전개되어온 파업과 점거, 도로 시위와 점거, 국가의 매개 없이 생산과 유통과 분배와 소비를 운영하려는 새로운 공동체적 실험, 지성과 정서의 네트워크들의 구축,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투쟁, 자연환경과 협력적 인간관계를 지키고 주체성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들,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그려내려는 예술적 노력들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들이 있는데 멕시코 치아빠스 주의 사빠띠스따들의 실험, 아르헨티나에서 피께떼로나 구역의회의 실험,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농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건설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역사 속에서 코뮨이나 소비에트, 평의회 등에서 나타났던 운동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자율적 사회운동은 민노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활동을 부정하는 것인가? 오늘의 좌파적 실천으로 진보정당 운동은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진보정당 운동들이 다양한 형태의 자율적 사회운동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좀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진보정당 운동들의 영향력은 자율적 사회운동들의 활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시대착오적이기보다 현실적이다. 자율적 사회운동들에 대의의 구조를 설치하고 그 운동들을 대의의 회로를 따라 흐르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한에서 진보정당 운동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들의 영향력은 자율적 사회운동이 독립적으로 되는 정도만큼 약화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율적 사회운동들의 네트워크들이 모든 것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 9.11 테러 2주기를 맞이했다.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해온 미국은 현재 북핵 문제를 통하여 계속하여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9. 11 테러와 미국이 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무엇인가?


“테러는 국가주의의 폭력적 표현이다. 국가테러는 국가를 테러의 기관으로 사용하며 좌파테러는 국가에 대한 도전을 테러라는 방식을 통해 표현한다. 9.11 테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항의가 범죄의 형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때로 범죄는 기존 질서에 대한 항의와 도전을 표현하기도 한다. 도둑질이 사유재산제에 대한 도전을 표현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범죄적 테러의 방법은 다중이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도둑질이 실제로는 사유재산제를 승인하고 보존하는 것과 흡사하게 국가테러를 승인하고 또 보존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국가가 테러의 기관으로 전진 배치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먹고사는 체제임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는 다중의 삶에 대한 항구적 공격의 질서, 즉 전쟁의 질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항의도 끝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든 항의를 테러로 치부하고 그것들에 대한 위로부터의 전쟁을 정당화할 필요성이 자본에게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테러에 대한 전쟁은 결국 21세기가 20세기와는 달리 강력한 매개의 제도들을 갖지 못한 제국과 다중 사이의 적나라한 전쟁, 즉 내전의 시대임을 의미한다.”


- 아우또노미아 운동을 “맑스주의 탈을 쓴 아나키즘”이라는 비판이 있던데, 자율주의 운동과 아나키즘과는 어떻게 다른가?


“아나키즘에 대한 부정적 사회심리는 스탈린주의 시대의 부정적 유산임이 먼저 지적되어야 하겠다. 그것은 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모든 움직임들을 부정하기 위한 권력적 필요가 만들어 낸 사회심리이다. 맑스는 아나키즘과 오랜 동안 논쟁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러한 매카시즘적 시각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중에서 다중으로의 주체성의 재구성은 당의 지도력과 같은 엘리트적 힘을 점점 덜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 점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매카시즘적 시각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협력에 대한 자율주의의 강조이다. 자율주의는 생산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노동자들의 협력을 다중의 정치적 윤리적 협력으로 발전시키는 일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아나키즘이 개인주의적 지향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 개념을 통해 협력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 맑스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경직된 교조주의자들만이 이 양자의 경계가 현실과 사유 모두에서 극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 돌리지 않고 있다.”


- 한국은 민족문제인 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민족개념은 당분간 유효할 수밖에 없으며 자율운동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우리 시대에 ‘국가와 결합된 민족’ 개념은 인류의 해방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인류가 전 지구적 존재로 재구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로서의 민족’에 어떤 전진적이거나 긍정적인 가치부여를 할 수는 없다. 오늘날 민족적 분단은 자본의 전 지구적 운동의 필요에 의해 심화되거나 약화되고 있는 것이지 이것과 분리되어 ‘민족문제’라고 불릴 수 있는 특정한 문제 영역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분산 속에서 싸우고 있는 투쟁들의 특정한 연합체로서, 투쟁의 공통체로서이다. 그리고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인간 집단이 그들을 배제하는 시민사회의 일부임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서이다. 예컨대 사빠띠스따들이 자신들을 대문자 민족으로 제시할 때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것은 배제에 대항하는 언어일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이 진전되고 여러 지역의 투쟁들의 연결이 심화되면 이러한 의미에서의 민족 개념마저도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 갈무리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앞으로 출판 계획은?


“대표제를 극복하는 것이 갈무리 출판사의 지향성이다. 그래서 갈무리 출판사에는 대표가 많다. 우리는 지금 당출판에서 삶출판으로의 전환을 모토로 2기 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갈무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중심으로 출판활동을 지속해 왔다. 자율주의적 선회가 그 과정에서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심사를 넘어서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이제 지금까지의 관심사를 발전시켜 나가면서도 ‘삶속에서 어떤 사건들이, 창조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출판활동을 통해 탐구해 나갈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 농민은 물론이고 실업자, 여성, 학생, 청소년, 아동, 노인 등 다양한 직업적 세대적 성별적 존재들이 살아나가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 부딪히는 문제들에로 관심을 넓혀 나가고 싶다. 인간의 지성뿐만 아니라 욕망, 활력으로 관심을 넓히고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윤리학으로, 덕성으로 집약되는지를 탐구해 보고 싶다. 그래서 갈무리 기획 지도를 포텐티아(Potentia, 활력), 쿠피티타스(Cupititas, 욕구), 멘스(Mens, 지성), 베르투스(Vertus, 덕) 네 가지 방향을 따라 그려가고 있다.”





2003/09/15 오후 2:45 ⓒ 2003 OhmyNews


정병진 기자는 현재 여수에서 솔샘교회(http://solsam.zio.to) 담임 교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교회 내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정환은 누구?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에서 일제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하고, 1980년대 초부터 <민중미학연구회> <민중예술연구소>에서 민중미학을 공부했다. 중앙대, 호서대에서 한국근대비평사를 강의했으며, 1987년에는 문학운동의 당파성 강화를 주장하는 민주주의민족문학론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이를 수정한 노동해방문학론에 입각하여 1989년에 월간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 노동해방문학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1990년 말에서 1999년 말까지의 수배를 받았고, 수배기간 동안에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국제주의적 및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20009월 다중문화공간 왑의 창립에 참여하여 현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서출판 갈무리 편집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등이 있고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쎄르지오 볼로냐 외, 갈무리 1997)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갈무리, 2002)를 비롯한 다수의 편역서와 역서들이 있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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