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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이루는 밑절미가 사랑이라는 생물학

책 여행 2011/01/08 05:13 꺄르르

세 상은 굳게 정해져 있다고 여느 사람들은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회는 저렇고, 사람이란 그렇고, 나는 이렇다며 어떠한 ‘틀’을 믿어버리는 것이죠. ‘정해진 세계’에 ‘객관화된 지식’을 얻으려고 나름 애를 쓰면서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이런 흐름은 자연과학부터 처세술까지 고샅고샅 미칩니다.

 

그러나 객관화된 세계란 없으며 모든 세상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얘기는 철학사에서 자주 나왔었지만, 마뚜라나와 바렐라는 신경생물학을 통해 ‘사람의 인식’을 찬찬히 파고들죠. 스승이면서도 동무였던 두 사람은『앎의 나무』[갈무리. 2007]에서 생명이 어떻게 생겨나고 앎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아주 쉬우면서도 재미나게 풀어갑니다.

 

빨간 능금을 봤으면 뭇사람들은 빨간 능금이 내 앞에 있구나, 이렇게 알지만,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지요. 자기 몸의 얼개에 따라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객관화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세계를 이룩합니다. 그 빨간 능금은 ‘나의 짜임새’에 따라 되돌려진 '앎'이지요.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33쪽

 

이들에 따르면, 자기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는 능금은 ‘나의 짜임새’에 따라 ‘특수하게’ 알아낸 경험입니다. 세계를 알아서 앎이 생기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아는 움직임이 세계를 낳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는 자신이 만든 것이죠. 그렇다고 나 혼자 엉뚱하게 세계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엔 ‘이미’ 자신의 몸짓이 엉켜있다는 뜻입니다. 겪음과 앎은 뒤얽혀있습니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고 앎이 삶이고 삶이 앎이라는 뜻입니다.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처럼 나의 앎이 함을 낳고 그 함이 삶이며 삶이 앎을 낳는다. 서로 맞물려 있다.

 

이런 생각이 낯설 수 있기에 지은이들은 상냥하게도 여러 자료들을 나긋나긋 들어주면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아는지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앞에 있는 것들을 ‘고스란히’ 본다고 여기지만, 똑똑히 말하면,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바로 ‘맹점’이죠. ‘맹점실험’을 해보면, 버젓하게 앞에 있는 물건이 안 보입니다. 늘 맹점의 크기만큼 사람은 자신의 앞을 못 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죠.

 

여러 보기들을 들면서 세상은 모두가 똑같이 알고 있는 ‘진짜’가 아니라 자신이 ‘이룸’을 한 것이며, 이에 ‘자기생성’ 개념으로 이야기를 뻗어나갑니다. 세포들이 그러하듯 생명 또한 바깥과 마주치고 맞대어 이어지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론이죠. 이런 ‘자기생성’은 생명의 탄생부터 자연선택이 아닌 자연표류에 따른 진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수께끼들을 새롭게 밝혀줍니다.

 

이와 아울러 앎이 곧 함이고 함이 앎이라는 ‘맞물림’은 언어의 중요성을 도드라지게 합니다. 사람이 오늘날 사람일 수 있는 까닭은 언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언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벌레가 그러하듯 ‘나’를 인식할 수 없으니까요. 언어가 없으면 나도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정신’을 만들고 ‘세계’를 짓습니다.

 

이 처럼 언어와 (그것이 나타나는) 사회적 맥락 전체가 생김에 따라 인간의 가장 깊숙한 경험인 정신과 자기의식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그것에 걸맞은 상호작용의 역사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이 영역에 참여할 수 없다. 늑대소녀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정신이란 사회적, 언어적 접속의 그물에서 ‘언어 안에 존재’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지, 내 머리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의식과 정신은 사회적 접속의 영역에 속하며, 그 영역에서 의식과 정신의 역동성이 작용한다. 262쪽

 

이러한 돌아봄을 통해 신경생물학은 윤리학과 만납니다. 왜 자신의 생각을 자주 가다듬고 남과 어울리며 만나야 하는지 그 밑바탕을 신경생물학이 닦아줍니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니까요.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나의 얼개’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에 남과 꼭 같을 수 없고, 늘 옳은 것이 아니죠.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남과 함께 지내려면 줄기차게 자신을 돌아보고 매만져야 하며, ‘나만의 옳음’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윤리’가 나옵니다. 이렇게 사랑이 열립니다.

 

나 아가 생물학은 우리가 인지적 영역을 넓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란 예컨대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 낯선 이를 나와 같은 이로서 마주할 때, 더 직접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의 생물학적 일치를 체험할 때 등이다. 사람들 사이의 생물학적 일치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볼 수 있고, 또 우리 곁에 타인이 있을 자리를 비워둔다. 이런 행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좀 약하게 표현하면 일상생활에서 내 곁에 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77쪽

신경생물학에 따르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밑절미는 놀랍게도,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남과 다를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울타리에 갇히지 말라, 요것이다. 영화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생물학으로 볼 때, 남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세계를 알 수 없으며 사랑 없이 사회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는 매우 솔깃하고 두근거리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고 남과의 만남이고 자기 돌아봄이라는 ‘생물학’은 오늘날 이 사회에 절절하게 있어야 하는 윤리학을 마련해줍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이 책에서 서술한 것들은 자연과학적 탐구의 한 바탕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사람다움을 이해하기 위한 바탕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기서 마주친 사회적 역동성은 이제는 그저 가정에 머무르지 않는 인간 조건의 한 존재론적 근본 특징을 암시한다. 곧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뿐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우리는 이 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 278~279쪽

 

무언가를 알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앎이 함이기 때문에 아는 순간, 자신은 이미 다른 주체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더 나은 앎을 얻으려 애면글면해야 하고, 그릇된 앎을 갖고 있지 않나 안간힘을 내어 되짚어야 합니다. 자신의 앎이, 자신의 함이, 자신의 삶을 낳으니까요. 우리의 앎이, 우리의 함이, 사회를 낳으니까요. 남들과 만나고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습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묵직한 깨달음을 안겨주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원문 링크 : http://blog.ohmynews.com/specialin/35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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