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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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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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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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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정치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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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음색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공산주의의 현실성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

자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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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게임

산촌

생이 너무나 즐거운 까닭

빚의 마법

9월, 도쿄의 거리에서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정동 이론

정동의 힘

마이너리티 코뮌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크레디토크라시

예술로서의 삶

가상계

가상과 사건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잉여로서의 생명

로지스틱스

기린은 왜 목이 길까?

기호와 기계

집안의 노동자

지금 만드는 책

예술적 다중의 중얼거림

Pourparlers

부채통치

사건의 정치

부채인간의 관리

일상생활의 혁명

내가 긴 시간을 들여 장문의 글을 여기 올리는 이유는
출판사에 이 책을 폐기할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함이다.

해러웨이의 저서가 한국에 소개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책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모조리 회수하고,
다시 제대로된 번역자를 구하여 번역서를 내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해러웨이가 난해하다고 여기거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알라딘에도 서평을 올렸다. 갈무리 출판사 분들이 열심히 책을 만드시고, 한국에서 아직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많지않은 이 책을 열심히 홍보하고 계신데 너무나 감사하지만,
이 책은 그런 노고들을 수포로 돌리는 끔찍한 오역 그 자체이다.

만약, 편집과 인쇄과정에서의 실수로 만약 본문에 모든 페이지마다'의료화'라는 단어가 한번 씩은 나오는 책에서 '의료화'가 모조리 '의무화'라고 인쇄되어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출판사는 당연히 책을 회수해서 다시 찍을 것이다. 이 <겸손한 목격자@...>는 그런 실수보다도 더욱 심각한 왜곡으로 가득찬, 책 전문이 오역 그 자체인 책이다.

역자서문에 역자는, 해러웨이의 저서중 "본 책은 생물학적 이론이나 페미니즘 이론보다 사회비판적 성격이 큰" 책이라고 써놓았다. 헛소리다. 왜냐?

본문 157쪽(원서 70) 맨 끝에 "현재 나는 페미니즘적 입장의 이론에 전념하고 있으므로"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마치 어떤 일반적인 페미니즘적 입장의 이론인듯이 두루뭉수리하게 번역해놓은 "페미니즘적 입장의 이론"이란 실은 원문을 찾아보면,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알 수 있으며 이미 유통되는 번역어도 있는 feminist standpoint theory 즉 "페미니스트 입장론"이다. 샌드라 하딩이 이블린 폭스 켈러, 로즈, 하트삭 등의 일군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경향을 분류하며 쓴 명칭이다. 내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 책 원문에는 'feminist standpoint theory'가 꽤 여러번 등장했던 것 같은데 번번히 어떻게 번역들을 해놓았을지....

그런가 하면 자주 등장하는 용어중에 하나로'페미니스트 과학학 feminist science studies'처럼 엄연히 일군의 탁월한 학자와 학제간 연구작업들을 지칭하는 말을 '페미니즘 학문'(62)이라고 번역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중요하고 전도유망한 학제간 연구분야 하나가 번역자의 힘으로 간단히 사라졌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바로 이 feminist science studies 로 통칭되는 분야가 해러웨이가 발딛고 선 곳이라는 점. 그리고 이 책의 본문에 인용되고 있는 학술작업의 태반이 바로 '페미니스트 과학학'이라 통칭될 수 있다는 것.  
이건 마치 '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일반상대성이론)를 어떤 문외한이 영한사전 하나만 믿고 '상대성에 관한 일반의 이론은'라고 번역하는 격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문외한 스러운 번역이 끝도 없이 차고 넘친다.

또 간단한 예로는 35쪽(이건 본문 첫페이지다! 그리고 이 첫페이지부터 아래 지적하는 거 말고도 여러가지 오역이 있다는..),
'악어-약탈자', 이건 'alligatot-predator', predator는 생태학에서 피식자prey-포식자 할때 '포식자'다. 약탈자는 무슨;(영한사전 1번 의미를 그대로 넣은 듯)
생물학과 여성학 배경지식 뿐 아니라 역자의 전공이라는 '문학' 배경지식이 있는 것인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벤야민과 Flaneur를 '벤자민과 게으름뱅이'라고 번역해놓는 걸 보면 말이다.

이건 이 책의 다른 오류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으로,빙산의 일각이다. 역자의 배경지식이 전무함으로 인해서 책 전체가 끔찍하게 내용이 뭉개지고, 거의 정반대의 내용으로 해석되는가 하면, 그걸로도 성에 안차는지 원문에 전혀 있지도 않은 '창조적이고 난해한' 번역자의 창작까지 수두룩하게 담겨 있다.  


번역자가 책의 맥락과 논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바람에, 쉽고 간결한 원문도 난해하게 만들어버리는 오역을 무수히 해버리고도, 역자서문에

"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이 난해한 책이므로 반복하여 읽어달라는 것이다. 번역이 아닌 애초부터 한글로 씌어진 책들 중에도 어려워서 읽히지 않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영어 자체로 읽어도 어려운 책이다. 하물며 한글로 번역되었을 때에는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해러웨이가 글을 쓰는 제일의 모토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뒤집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어리둥절해지거나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말을 적어둔 것을 볼 때,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끔찍한 오역을 지적한 사람이 없다보니 그 이후 번역자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듯 하다. 그리고 나는 민경숙씨가 그런 자신감으로 또다른 해러웨이 책에 도전할까봐 이제 정말 정말 두렵다. 그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아래의 오역 지적을 읽어보신 후, 저 역자서문을 반드시 다시 읽어보시기 바란다. 뻔뻔스러움과 기만때문에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끼실 것이다. ㅎㅎ 원서가 난해한게 아니다. 번역자가 번역자의 자격은 커녕 책의 내용을 이해못하는(그리고 겨우 '위키피디아'나 좀 찾아보는 거 말고는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최악의 독자이기 때문에 번역자에게는 이 책이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모쪼록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서 최소한의 '상식'적인 판단이라도 하셔서, 이 책을 하루속히 회수하고 절판시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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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방대한' 분량의 오역(사실 이 정도가 되면 일부 오역을 지적하는 게 의미가 없다. 책의 내용 전체가 날라간거니까) 중에 일부들을 원문대조하여 지적해둔다.  

오역의 수준을 넘어 번역자의 개작, 창작에 이른 것 대목들이 엄청많음은 말할 것도 없고, 책 전반이 대체로 오역이며, 이 번역서에서 그나마도 의미가 통하게 번역된 부분에서조차, 훨씬 재미있고 생생하던 원래의 문장이 대단히 따분해 졌다. 한글 책을 보면 해러웨이의 책이 이렇게 딱딱하고 알수없고 따분한 책이었나? 싶다. 해러웨이는  대단히 명쾌하고, 짖굳고, 야하고, 재기발랄한 저자인데 말이다. 자, 일단 아래 1부에서 단어들을 맥락없이 번역한 것은 양반! 이라고 할 수 있다. 뒤에서 문장오역으로 들어가면 뭐 점입가경에 일취월장(?) 이랄 밖에는...


1. 책에 너무나 빈번히 등장하는, 기본적인 단어들의 맥락없는 번역

-너무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기에 이 단어들만 알 수 없게 번역해놔도 책 전체가 알수없어지는 효과가 있다.

1)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단어 figure. 다짜고짜 무조건 '비유'라고 번역해놓았다. 원래 figure나 figuration이 워낙 의미가 풍부해 적절한 번역어를 하나로 정하는 게 힘들긴 하다. 이거야 말로 역자주가 필요한데 모든 걸 위키피디아에 기대는 역자이니...
그래도 저자 해러웨이 자신이 이 책에서 자주 쓸  figure 라는 단어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띠는가에 대해서 만화까지 동원해 비교적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고 있건만(50-56쪽), 이 부분이 오역투성이이다. 해러웨이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논의를 빌려 기독교 천년왕국설이 어떻게 세속화되었나를 설명하는 부분은 완전한 오역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제목 번역도 틀렸다. "제2의_천년"이라고 번역된 the second millenium은 '제 2의 천년왕국'이다. 그리하여 지상낙원의 실현 내지 천년왕국의 실현을 뜻하는 the fulfillment는 번역서에서 아주 모호하게도 '이행'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본문을 이해못했으니 책의 제목까지 틀리게 번역할 수 밖에.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론이자 방법론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figure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는 책의 도입부가 알 수 없어지면서, 당연히 이 책 전체도 알수 없게 된다. 물론, 당신이 시간이 많고, 쓸데없이 지적허영심이 심한 독자라면 '워낙 해러웨이가 어렵다자나'하고 간혹 나오는 그나마 독해가능한 부분들을 조각난 채로 읽어가면서 시간낭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2) representation을 '재현'이라는 널리 쓰이는 번역어를 놔두고 '표현'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도대체 representaion처럼 중요한 개념어를 expression 이랑 구분안되게 '표현'이라고 번역해서 어쩌자는 건지, representation을 영한사전 펼치면 처음나오는 해석인 '표현'으로 번역해버린 것을 볼때, 역자는 '재현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설마, 비교문학전공인데?)

3) articulation 과 splicing 을 둘다 무조건 '접합'이라고 번역했다. 접합은 그냥 붙이는 건데, 사실 저 두 단어다 '잘라낸' 후 다시 다른 연결로 붙이는 걸 뜻한다. 잘라내기와 붙이기 둘다 포함되는 단어. 그래서 articulation에 대해서는 '절합'(분절+접합 정도가 된다)이라는 번역어가 유통되고 있건만.

4) agency 를 거의 일률적으로 '중개행위'라고 옮기고 (행위성, 힘, 작용, 대리와 대행.. 등으로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인데.) 이를테면 "피조물을 창조자로 오해하고 중개행위를 소외된 객체에게 옮기는 것은 겨우 20세기 말에 이르러 생긴 일 같다."(159) 중개행위를 옮기다니 무슨 뜻일까? 물론 agency 겠거니 하고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작하며 읽으려면 뭐하러 번역서를 읽나. 그러고보니 이 책은 object도 모조리 '객체'라고 옮겼다.

5) 또 reified 나 reification 은 루카치가 논의한 개념의 영어번역으로서, 한국말로는 '물화'로 번역되고 있는데, 무조건 '구체화하다'나 '구상화'로 번역하면 도대체 'embody'(이 책에서는 이것도 거의 구체화하다로 번역하고 있는데)나 'concrete' 같은 단어랑 어떻게 구별?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에서는 이런 식의, 기존 한국에서 유통되던 개념번역어들을 이유도 설명않고 무시하고서 영한사전의 단어 설명중 1번에 나오는 번역어를 택한 경우가 많다. 영어어순 파악도 자주 틀리는 건 물론이고, 문장이 거친건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인문학적 소양이 전무하고 갓 영어문장을 좀 읽게된 정도인 중학생이 번역한 것 같다. 끔찍하게 미숙한 손길로 갈갈이 찢겨진 불쌍한 해러웨이의 책;;; 어쨌든, 그런데 차라리 일관되게 영한사전 1번 의미로 번역이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6) appropriation 은 '전유'라고 많이 번역되어 유통되는 단어이고 심지어 이번엔 네이버 영한사전 1번에도 '전유'라고 나와 있구만, 왜 또 '전용'으로 바꾸시고? 다른 사전 쓰시나?

7) 그리고 decontextualize 는 맥락에서 뚝 떼어낸다는 뜻, 즉 '탈맥락화' 인데 또 왜 전부 '탈텍스트화'라고 번역? 나는 처음에 '탈컨텍스트화'에서 '컨'자가 빠지는 오타가 생긴 실수 인줄 알았는데 책의 다른 곳에서도 계속 탈텍스트화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오탈자 문제가 아닌듯.;;;

8)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접두어 trans-(초월, 너머, 등등의 뜻)가 붙는 단어들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테면 transspecific 은 이 책의 맥락에서 (생물학적) 종을 넘어선, 이라는 뜻이다.
책에서 유전자조작 생물들을 수식할때 계속 쓰이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번역서는 이 단어를 모조리  '초특유의'라고 번역하고 있다.(그렇다. transspecific이 사전에 없었던 것이다). '초특유의 이전된 생물'(143) 이걸 읽고 무슨 말인지 알 사람이 있을까? 마치 알타비스타 번역기에 돌린 문장을 보는 듯 하다. '다른 종의 유전자가 이식된 생물'내지 '종의 경계를 넘어서 유전자 조작된 생물'이라는 뜻이다;;;; 해러웨이는 이 부분에서 넙치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잘 썩지 않는 형질을 띄게 된 토마토 이야기를 한다. 종과 종의 경계,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다 넘어선 것 아니겠는가.

9) 그리고 transgenic을 모조리 '유전자 이식 생물'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러면 p.119쪽에서 "초우라늄 원소"와 "유전자 이식된 생물"을 왜 한 비례식 속에 묶어 놓았는지 영 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영어로는" transuranic : transgenic = "이라는 으로 'trans'(초월하는, 너머)라는 접두어를 둘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번역서는 공통된 접두어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의 맥락을 싹 지워버리고, 난데없이 (유전자공학과 핵물리학의 둘 모두의)"생성물은 '횡단trans'이다"라는 둥 하는 선문답의 세계로 독자를 보내버리고 있다. "그들의 생성물은 횡단이다" 문맥파악을 못하는 번역자를 만난 덕에, 자못 그럴듯하지만 실은 쓸데없이 심오해보이는 선문답이 된 번역의 전형이다.

또, 무조건 '위반'으로 번역해 놓은 transgress내지 transgression 은 물론 '위반'이라는 뜻도 있지만 맥락에 따라서는 좀 더 생물학적인 뉘앙스로 부모를 초월한 자식, 태어난 조건을 초월하다 정도의 뜻, 다시말해 부모와 자식이 더이상 유사하지 않아서 족보가 안그려진다는 뜻, 다시말해 돌연변이라는 뜻도 된다.(예를 들면 126쪽)
바로 transuranic, 초우라늄 원소들은 주기율표를 통해 미리 출현이 예상되었고 주기율표를 모태로 태어났지만 인간의 기존 원소체계를 벗어나는(trans)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이고, transgenic 개체간, 종간 경계를 초월하여 유전자 재조합된 생물들은 기존 생물학의 분류학을 초월하는 동시에 그 체계 속에서 태어나 거기 속해있는 돌연변이들 이라는 것. 이게 이 책 119~217쪽(원서 49-101)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이 된다. 하지만 번역서를 읽고 이를 알아채기에는 원문읽고 이해하기보다(나의 모어는 한국어임에도) 한 100배쯤 어렵다는 거. 이 번역서 전반에서 해러웨이 특유의 재기발랄한 비유적인 말장난들이 이런 식으로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이책에서 오역이 덜해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원문보다 훨씬 읽기 지겹다.

10) 그리고  kinship을 혈연관계라고 번역해놓았는데, 이건 유사관계내지 친연관계, 친족관계로 번역해야 한다. 해러웨이는 '피'로 맺어진 기존의 친족관계나 서로 싸우며 미친 듯이 '피'를 흘리는 기족의 '민족'이나 '인종'같은 범주를 벗어나고자, 자신이 그려내고자figuration 하는 새로운 친족관계를 저런 것들에 대조시켜서 말하는 사람이다. 피로 연결된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 연결된 관계를 상상하고 실행하자는 것이 해러웨이의 전저작을 꿰뚫은 핵심주제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피, '혈'자가 들어가지 앉게 번역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이 책의 내용만 봐도 '여성인간'이랑, 앙코마우스랑 서로 친족관계kinship 라는데, 그걸 혈연관계라고 번역해버린다면, 얘들 둘 사이에 서로 헌혈해서 피라도 나눴다는 건가? ^^;;

또 마찬가지로 kin 을 '동족'이나 '혈연'이라고 번역해놨는데, 동일성을 재생산하는 관계를 벗어난 친족관계를 상상하겠다는 해러웨이의 용법에서 '동'족이라고 번역해주기보다는, 그냥 '친족'정도로 번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때 kin 은 related 정도의 뜻이다.

한편, 이와 정반대로 140쪽 같은 경우, '가계 오염에 대한 불안이...'라고 할때 '가계'라고 번역된 lineages는 정말이지 노골적으로 '순수혈통'이라고 번역해 주어도 된다. 이 문장이 나오는 부분은 지식인들의 일종의 자민족중심주의 내지 순혈주의를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인터넷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이 책의 소개문에는 해러웨이가 쓰지도 않는 '동종'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kin 친족, 이나 companion species 동반종들을 잘못 번역한 말이리라 짐작한다. 말이 나온김에 말인데, 사실 나는 민경숙씨가 진화생물학의 복잡한 논의들은 커녕 '종species'이라는 개념에 대해 기본적인 것도 아는 바가 없으리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그렇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오역들이 이번 책과 저번 <유인원..>책에 잔뜩 포진해있다).

10) reproduction을 무조건 '생식'이라고 번역했다. production and reproduction 이라고 붙어서 나오는 데 '생산과 생식'이라고 번역하려면 뭔가 좀 운이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reproduction은 그저 '생식'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넑고 포괄적인 '재생산'을 뜻한다.


2.  원저자여 이 번역자를 용서하소서!

이 정도가 핵심단어들의 오역이랄 수 있고(물론 더 많은데 다 쓰기도 힘들다), 문장상의 오역은 이제 셀 수도 없다. (번역자는 본인자신이 무슨 소린지 모르는 책을 무슨 초인적인 끈기로 번역했을꼬 싶다).그걸 다 지적하다가는 책 한권도 쓸 수 있을듯 하다;; 게다가 역자가 풀어서 번역해줘야 하는 부분에서 역자자신이 무슨 소린지 몰라 뭉뚱그려버린 빛이 역력한 부분들이 부지기수. 지금 해러웨이 저자자신이 주장을 하는 문장인지, 아니면 해러웨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비꼬면서 대신 정리해서 말해주고 있는 부분인지 하는 것도 구분이 안되게 번역을 해놓아서, 마치 저자 해러웨이가 전혀 반대되는 소리를 동시에 횡설수설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1) 일단 사소한? 실수 중 하나,

"그 ⓒ를 저자나 저자에게서 그 작품을 양도한 양수인으로 옮기는 작은 수정은, 18세기 영국의 텍스트 및 코드의 상품화 제도를 20세기 말 미국의 상품화 제도로 옮기는 겸손한 발걸음이다."(165)

이건 사소한 실수같지만 이 문장이 속한 소단원 전체의 내용을 뒤바꾸는 실수이다;; 원래는 저작권, copyright 표기인 'ⓒ'표기가 18세기에는 저자의 이름에 붙어있다가 20세기 들어서는 만들어진 작품쪽으로 옮겨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그 표기가 저자에게서 '작품을 양도받은 양수인'으로 옮겨갔다고 해놓았다;;;; 원서 p74, 13번째 줄이다. 중학생이면 읽을 수 있는 from~to용법으로, to가 어디 붙어있는지 확인해보시길. 문제는 이 번역서에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 끝없는 오역들을 대조해보다가 나는 이런 것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왠지 으스스하지 않은가?)
게다가 해러웨이는 때로 지나치게 압축적인 표현을 구사하긴 해도 대체로는 그닥 문장을 어렵게 쓰는 저자가 아닌데도, 이 책의 번역자는 'the'나 'it'으로 앞부분의 내용을 지시될 때, 그 the나 it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한번 풀어써주거나 해야할 때 모조리 '그', '그것'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문맥을 파악 못해서 뭘 지칭하는지를 완전히 틀리게 해석해놓았다.


2) 아아, 이책을 번역한 분!

I hope the original author will forgive you!!!!

이 책 번역서 160쪽(원서 71쪽)에는 "I hope the original author forgive me." 라는 문장이 있다. 번역서는 이걸 직역하여 뜬금없이 "나는 원본의 저자가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마치 번역자의 고백같다 ㅋㅋ)라고 번역해 놓았다. 어쨌든 이상하지 않은가? 해러웨이가 글을 쓰다가 갑자기 용서를 빌어야할 '원본의 저자'란 누구일까? 해러웨이는 남의 글을 베끼고 있었던 걸까? ㅋㅋㅋ

그런데 '저자'라는 개념의 역사에 관해 설명을 시작하며 등장하는 이 문장에서 the original author 란 바로, 17세기에 문학작품의 창조자로서 '저자author'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일하게 '창조자의 권위 the Author'를 가지고 있었던 분, 바로 '하나님 God'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에서 흔히쓰는 god forgive me 라는 말에서 god 대신 'the original author'을 살짝 갈아끼워넣은 농담조의 말장난이다. 그러니까 저 문장은 "저자중의 저자, 신이여 나를 용서하시길!" 정도로 번역되어야 했다. 해러웨이는 이 문장의 뒤에서 '저자'내지 '창조자'의 권위를 해체하고 저자와 그 작품간의 위계를 아주 작정하고 혼동해주는 글을 쓰고 있으므로, 그런 얘기를 하기전에 '창조주께서 나의 이런 발칙한 짓을 용서해주시길!'하고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 배경지식이 없어서 오역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사실 해러웨이의 책을 번역하면서 생물학 배경지식이 없다는 건 정말 큰 문제이지만), 비교문학 전공이시라는데, 문학사적 배경지식은 있으셔야 하는 거 아닐까.
책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될 여성학, 생물학, 과학학 적 기반지식을 역자에게 바라는 데 까지 가지 않아도 역자의 전공분야라는 문학, 그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바람에 이 책 전반의 농담과 유머감각이 번역서에서는 모조리 사라졌다는 거.


3) "살아있는 존재들을 다루는 조잡하게 맞춰진 혼합된 고대 역사는 곧 다른 역사와 교대될 것이다. 유전적 교환의 긴 전통이 앞으로 다가 올 오랜 시간 동안 산업적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142)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 수 없지만 뭔가 대단히 심오해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원문은

"The ancient, cobbled-together,mixed-up history of living beings, whose long tradition of genetic exchange wil be envy of industry for a long time to come, gets short shrift."


역자는 아마도 shrift(참회, 속죄, get short shrift 라고 하면 숙어가 되어 가차없이 해치운다 정도의 뜻이된다)를 shift(아마도 '교대'로 번역?)쯤으로 읽은 모양이다.그리고 이 문장의 바로 앞 문장도 오역인데(지적하기도 지겹다), 제레미 리프킨 등의 종족순수주의적 주장과 행태를 비꼬는 조로 서술해준 문장인데, 역자는 아마도 그 문장이 해러웨이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문장이라고 여긴 것 같다.

아무튼 이 문장은 정체도 모호한 '조잡하게 맞춰진 혼합된 고대역사'(역자자신은 무슨 뜻인지 알까?)가 한술 더 떠 "다른 역사와 교대"될 것이라는 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ancient, 여러가지 방식으로 한데 모이고 cobbled-together, 잡종으로 뒤섞여온 mixed-up, 생명체의 역사는, 생명공학산업이 앞으로 오래동안 질투할 만큼의 전통-유전자를 서로 뒤섞고 교환해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역사는 가차없이 제거된다.(리프킨등의 순수성을 옹호한다는 유전자조작반대자들의 논리에서는)"

정도의 얘기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거의 직역했지만, 정식으로 번역한다면 당연히 앞뒤 문맥을 고려하여 훨씬 더 풀어서 번역해줄 수 있다. 무슨 얘긴고 하니, 제레미 리프킨등의 사람들은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산업이 각 생물종들간의 경계를 넘어 유전자를 뒤섞어 놓기 때문에 위험하고 나쁘다는 식의 논리로 유전자조작에 반대를 하는데, 원래 생명체라는 애들은 태곳적부터 서로 유전자를 막 교환하고 종을 넘어 뒤섞어온 잡종들이므로 리프킨 같은 논리로 유전자조작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번역자가 이런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덕에 이 문장이 있는 142페이지 전체가 오역이나 다름없다.

또 어쨌든 이 문장의 주어는 '생명체의 역사'인데, 번역자는 그 주어를 수식하며 '오랜'정도의 뜻이되는 the ancient를 무려 '고대'라고 읽어주신다. 이건 흥미로운 실수인데, 이 번역자는 ancient가 나오면 무조건 고대 modern이 나오면 무조건 '근대적'이라고 번역해주는 습관이 있는 듯 보이기 대문이다.
이 번역자는 예전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서도, "modern"이 '최근의'정도의 뜻으로 쓰인 것을 "근대적" 이라고 무조건 번역해버리는 바람에 원래는 구체적이고 간단한 이야기를 담고있는 문장을 엄청나게 '심오'하게 만들어주신 적이 있다. "성은 위험한 근대적 혁신이다."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심오하고 있어보이지 않나? 하지만 원문을 찾아보면 이건 "유성생식이란 진화의 역사상에서 비교적 최근의, 전략상의 위험을 감수한 혁신으로"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진화생물학과 유전자의 복제전략(유성생식/무성생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같은 단어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할 수 밖에 없는 데 기계적으로 한 단어에 한 번역어를 대응시키니까 생기발랄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문장이 장난아니게 현학적이고 절대 아무도 알 수 없는 말씀이되버리신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에 이런 오역은 한 둘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이 따위 번역서를 읽고 '역시 해러웨이는 심오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런 식으로 번역을 해놓고도 역자서문에 당당하게 "어리둥절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은 원작의 난해함 때문이니 포기하지 말고 반복해서 읽으라고 독자에게 당부를 한단 말인가? 오, 이 번역자를 용서하소서!

4) 그리고, 꼼꼼히 읽을 필요까지도 없이 아무데나 펼쳐도 그냥 눈에 보이는 족족 오역인 이 번역서를 훑다 보니 분명 원서를 읽을때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기억상실증'이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 것이었다. 여러번! 149쪽, 154쪽, 160쪽 등등
찾아보니 'fugue'를 '기억상실증'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엉? 이건 갑자기 왠 창조적인 번역인가!

물론 fugue는 도망간다는 뜻으로 dissociative fugue, 해리성 둔주, 기억을 지워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 갑자기 자기가 누군지 까먹고 엄한데로 돌아다니는 증상을 뜻할때도 쓰인다. 영화나 만화에 잘 나오는,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을 당해서 자기가 누군지 훌떡 까먹고 원래 애인이 있었는데, 그것도 까먹고 엄한데로 가서 다른 가족과 애인을 만나서 한참 살다가... 그런데 어느날 또 다시 기억이 돌아와 전 애인은 울고불고 관계가 복잡... 뭐 이런 스토리에 나오는 바로 그 증상. 그래도 말이지... '기억상실증'을 말하려고 했다면 훨씬 더 흔히쓰이는 "amnesia"같은 표현, 혹은 훨씬 쉬운 표현으로 loss of memory 같은 것을 왜 해러웨이는 쓰지 않았을까?

정말 fugue의 다의성을 살려(뭐.. 해러웨이가 다의성, 다성성, 이어성 등등 되게 좋아하니까.. ) 이런 뜻을 살려 '창조적인' 번역을 해보고 싶으셨다면, fugue의 저런 용법에서 핵심은 '기억상실'쪽이 아니라 '도망가다' 쪽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셧어야 한다.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이탈해 도망가는 것이다.

이 fugue라는 단어가 빈번히 나오는 2장 전체(거의 본문의 3분의1분량)의 소제목 자체가
a technoscience fugue in two parts
인데, 이것이 번역서에는 "두 부분으로 나뉜 기술과학 기억상실증"
이라고 되어 있다. 굳이 원문대조까지 안해도, 그냥 한글로만 읽어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기억상실증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니? 정말 기억상실증이 어떻게 두 '부분part'으로 나뉘는지 역자의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 엄청나게 심오한 상상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냥 두부분으로 된 기술과학 둔주곡, 이라든지, 기술과학 2성 푸가, 정도의 제목 아닐까?
그러니까 fugue는 바로 음악의 둔주곡, '푸가'. 바하의 푸가의 기법, 할때 푸가인 것.

그래서, 이 제목하에 글도 Part1과 Part2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책의 다른 장에서는 이런식으로 Part 구분을 하고 있지않다. 이 2장만 그렇다. 그러니까 이 장에서 마치 악보나 합창의 성부처럼 두 부분으로 나누는 파트구분과, 푸가fugue 라는 비유는 상당히 중요한 것.


그리하여,
"this technoscience fugue for scoring the mutations in branding subjects, objects, and texts"

같은 구(원서 71)를 번역서는 '주체, 객체, 텍스트를 브랜드화하면서 생긴 변화들을 지워버리려는 기술과학의 기억상실증을 해결할'(160) 이라고 그야말로 억지스럽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the mutations"는 글에서 이 문장의 바로 앞 부분에서 설명한 여성인간과 온코마우스같은 '돌연변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걸 스리슬쩍 '변화'라고 억지로 오역했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작곡을 한다든지 채점을 한다든지 뭔가를 쓰거나 그려넣는 걸 뜻하는 score라는 단어를 억지로 그와 정반대로 '지워버리는'이라고 번역햇다. score가 지워버리는, 이라는 뜻을 가지려면 원래 있는 것 위에 줄을 쫙쫙 그어서 지우는 걸 뜻한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번역자는 fugue 푸가라는 단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그 단어를 엉뚱하게 번역하면서 이 장의 여러 문장을 모조리 억지스럽게 거의 '창작'했다. 하지만 '푸가'가 그렇게 어려운 비유인가? 우리는 글이나 말에서 음악적 비유를 흔히 쓴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운명의 전주곡이었다.' 라든지, '사랑의 세레나데' 라든지 뭐...


어쨋든 그러니, 문제의 저 구는

"주체, 대상, 텍스트가 브랜드화하는 속에 돌연변이들을 기입하기 위한 이 기술과학의 둔주곡(내지 푸가)"    정도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이 기술과학의 둔주곡'이란 기술과학의 푸가적 성격, (유사한 선율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신없어지지만 패턴은 남아있는)을 말하는 것이도 하지만 바로 해러웨이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을 뜻하는 것이다.

책에서도 누차 반복되는 바, 해러웨이의 글에서는 '비유 figure' 내지 '형상화 figuration' 작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fugue 라는 단어가 재차 등장하는 이 장에서는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을 '푸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in my score for orchestrating the action in technoscience" (68)

"기술과학 속의 행동을 체계화하려는 나의 ... 이유는"(152) 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에서 score 라는 단어는 '이유'라고 번역되었다.(이런 뜻도 있다).

하지만 저자 해러웨이가 organizing 이나 systemizing 같은 표현을 안쓰고
굳이 orchestrating이라는 '비유'를 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 "기술과학 속의 행동들을 재편성하려는 나의 이 음악적 작업에서" 정도가 더 좋지 않을까?

fugue 와 함께 이 장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score 라는 단어역시, 음악적 비유로 '악보', '악보기입' 정도의 뜻인 거 같다.

5) 이번에는 이런 선문답 번역도 있다.

"문자 그대로 크로노토프chronotope는 화제의 시간 혹은 시간성이 조직되는 토포스topos를 뜻한다. 화두topic는 진부한 말이며, 수사학적 소재지이다.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은 결코 "문자적"이지 않으며, 단지 그 곳에 있을 뿐이다. 크로노스chronos 는 언제나 토포스와 서로 얽혀 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바흐친(1981)이 시간성을 조직하는 비유로 규정한 크로노토프 개념 속에서 풍요롭게 이론화하였다."(108)

이 지경이 되면 아예 의미전달이 안되기때문에 뭐, 오역때문에 원문을 정반대로 착각할 걱정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여기서 제일 알 수 없는 문장을 먼저 살펴보자.

"화두는 진부한 말이며, 수사학적 소재지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화두는 진부한 말이며"의 원문은 "A topic is commonplace"이다.
무슨 말인가? 이 문장은 무척 짧게 압축적으로 topic이라는 단어의 어원,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다. 번역자가 이해를 못했음이 분명하다. 해러웨이는 top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이 책 여기저기서 말장난을 하는데, 번역자는 책의 모든 부분에서 topic을 무조건 모조리 '화두'라고 옮겨놓았다. 그러니 topic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떄마다 거의 모조리 오역이 되는 건 당연. 그럼 다음과 같은 국내 일간지의 한 시사평론을 참고해보자.

"'상식'(common sense)이란 고대 파피루스의 같은 페이지를 뜻하는 ‘같은 장소(locis communis-common place)’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 말은 ‘topos’로서, 훗날 ‘topic’의 어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생들은 토론의 논제를 적어 둘둘 말아놓은 파피루스를 펴면서 같은 논제가 적힌 장소를 찾아내어 토론했다고 한다. 같은 페이지의 논제에 대해서만 토론이 가능했고, 그래야 논쟁도 생산적이다.
‘같은 장소’라는 말은 훗날 ‘장소에 대한 믿음’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여러 사람의 신념과 상식을 담은 ‘이데올로기’라는 의미로 새로이 자리매김을 한다.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이 ‘이슈’이며, 상식에 기초해 이를 발굴하고 유통하는 것이 언론 활동이다."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4240067


다시 말해, 영어에서 commonplace 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함께 참조하는 페이지, 즉 여러사람이 공유하는 페이지를 뜻했는데, 나중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흔히 쓰는 구절, 개나 소나 쓰는 구절이라는 뜻으로 점차 변형되어 영한사전에 1번 의미로 나오는 '진부한 말'이라는 뜻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번역하다 보면 부분적으로 있을 수도 있는 실수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해러웨이가 commonplace내지 common이라는 단어를 자신만의 용법으로 자신의 모든 책에서 상당히 자주 쓰기 때문이다. 해러웨이의 글에서 commonplace는 영한 사전 해석 1번에 나오는 '진부한 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정말 말그대로, common place 공동의 공간, 그래서 맥락에 따라 공유지 혹은 공동의 언어를 의미한다.

이런 말장난은 책의 뒤에서 "문자로 쓰여지는 언어의 공유지에 울타리가 쳐졌다.  the literary commons were "enclosed""와 같은 식으로 연결된다. 해러웨이가 굳이 "enclosed"에 따옴표를 넣어 강조한 이유는 언어에서도 "엔클로저" 운동이 있었다는 비유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양을 치려고 사람을 쫓아낸 식으로 토지에만 엔클로저의 역사가 있는 줄 알았니? 언어에서도 엔클로저의 역사가 있었어. 17세기에 '저자', '저작권'개념의 등장과 함께 말이지. 이런 재기발랄한 비유이다. 이런 식으로 한 곳에 사용되던 표현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비유의 방식을 통해 문제설정을 새로이 하는 것이 해러웨이의 주된 방법론이라면 방법론이고, 해러웨이의 책 전반에 이런 비유 말놀이가 그득하므로 이런 부분은 의역하기보다는 오히려 되도록 직역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번역서 160, "문학의 공동사용권이 사유화되고"라고 번역된 부분. 물론 원래 글의 재기발랄한 빛이 싹 사라지고 비유적으로 표현을 옮기는 놀이도 사라져 훨씬 무미건조, 딱딱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그나마 오역은 아니다.)


또,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은 결코 "문자적"이지 않으며, 단지 그 곳에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 시간이 문자적이지 않다니 이건 또 무슨 선문답인가? 여기서 "문자적"으로 번역된 literal 은 컴퓨터에서는 "상수"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이건 영한사전에도 나오는데...). 어차피 "literal"이 '문자적인'(거의 '고지식한' 정도의 뜻)와 '(변치않는) 상수' 둘 다를 의미하는 영어상의 말장난을 한글로 맛을 살려 옮기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literal과 figural을 책 내내 시종일관 대비시키는 원문의 뉘앙스도 어차피 여기서는 다소 희생할 수 밖에 없다.(어차피 이 번역서에서는 뭐 이런 대비가 이미 다 죽어있다) 그러니 두 의미중에 좀 더 한국말로 말이 되는 쪽으로 택해야 하는 문제.    

어쨌든 그러므로 글의 저 부분은 다시 의역하자면,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장소를 의미하는 토포스를 합친 조어인 크로노토프는 문자그대로 공간으로서의 시간, 혹은 시간성이 조직되는 장소 topos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토픽topic'이라는 단어는 토포스를 어원으로 하는데, 어원의 유래를 쫓자면 공유되는 공간 commonplace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토픽'이란 언어를 통해 구성되고 공유되는 장소를 뜻한다. 장소와 공간처럼 시간도 그냥 "변치않고literal"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chronos은 언제나 공간 topos과 서로 역동적으로 얽혀있는데, 바흐친(1981)은 시간성이 역동적으로 조직되는 모양새 figure 를 뜻하는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을 통해 이에 대해 풍요롭게 이론화하였다."


이 정도가 된다. 그리고 물론, 정식으로 번역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풀어서 번역해줄 수 밖에 없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갑자기 topic이라는 단어를 저 문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이 엉망진창 번역서에서 "화제의 시간"운운하고 번역한 맨 첫문장에서 "화제의"라고 번역한 topical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topical을 해러웨이는 첫문장에서 "공간의"라는 정도의 뜻으로 썼다. 결국, 이 구절은 번역서에 담긴 저따위 선문답이 아니라 원문에서는 바흐친의 chronotope를 최대한 간략하고 짧게 해러웨이가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여기에 또 위키피디아를 찾아 역자주석을 다시 달아줘야 했던 것은 전적으로 오역의 탓인거지. 난 이 위키피디아 주가 아마도 의미불명의 번역을 어떻게든 전달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보려는, (역자가 아니라) 편집자의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암튼
a topic is commonplace 가 '화두는 진부한 말이다'가 되는 식의 희한한 선문답으로 번역되는 진풍경이 이 책에서 이 부분 딱 한번 나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번역서를 읽다가 좀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 싶으면 다 번역자 탓이라고 생각해도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책의 일부가 오역일 뿐 그럭저럭 읽을만한 책일 거라고 생각하는 대단한 포용력을 가진 분을 위해. 마지막 지적.

멀리 갈 것도 없이 본문의 첫 페이지부터 오역이 줄을 잇는다. 원작을 읽어봤다면 어렵지않게 모든 페이지에서 오역을 찾아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한 페이지 가득히 의미불명의 개작이 되어 있는 부분도 숱하다.
38쪽 "닐리는 그 사이보그를 프로그램하는 동료 에이브럼을 돕는데, 노파 말카의 집에서", 원문에서 에이브럼이 사이보그 프로그램하는 것을 돕는 이는 닐리가 아니라 말카다.
완전히 무신경하게도 이단자(37쪽)라고 번역했다가 이교도(39쪽)라고 번역했다가 하는 heretics는 그냥 통일해서 '이단자'라고 번역해야 한다. 해러웨이는 번역서의 각주 4번(당연히 의미불명 오역이 되어있는데)에서 섬세하게 '이단heretics'과 '이교infidels'를 구분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39쪽에서 '무신론자들'이라고 번역된 infidels는  '무슬림'(팔레스타인 여성들을 포함한)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교도'내지 배교자를 말한다. 무슬림이 무신론자는 아니잖는가? 해러웨이가 붙여놓은 각주에서 그걸 설명하고 있는데 번역자는 이해를 못하고 각주까지 엉망으로 번역해놓았다.

그리하여 이런 내용을 번역자가 전혀 소화하지 못하는 바람에 "oppositional"이 뭘 의미하는지 번역서에서는 완전히 애매모호하게 번역되어 그냥 계속 '대립적'(뭐에 대립?)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별로 문장이나 내용이 어렵지도 않은 이 본문 첫 세 페이지에만도 위에 지적한 것 말고도 가지가지 오역이 있다;;;;
바로 뒷장 40쪽으로 넘어가면 바로 눈에 띄는, 'cosmopolitan'이 무려 '범우주적'이라고 번역되어 있고....42페이지에서는 아예 한 문장을 빼먹고 번역을 안해버린다든지(뭐, 어차피 이 페이지 전체가 통째로 오역이니 한문장 빼먹는 거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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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으니 이쯤해두고, 제발 출판사는 사람들의 돈과 시간을 빼앗고, 무엇보다 마음아프게는 그나마도 해러웨이에 관심을 가질 소수의 사람마저 씨를 말리고 말 이 유해한 번역서를 속히 절판시켜주시기 바란다;;;;  

본의아니게 번역을 가장한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에 휘말리게 되신 출판사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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