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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엇을 할 것인가』(워너 본펠드, 쎄르지오 띠쉴러 편저,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4)

러시아 혁명의 영광은 스딸린주의라는 전체주의적 억압체제 속에 파묻히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 같다. 분명, 레닌은 무언가 큰 오류를, 어떠한 중요한 혼돈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룩셈부르크가 예견한 바와 같이 볼셰비키의 ‘초중앙주의’는 노동자들에 대한 또 다른 억압기구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룩셈부르크의 비판처럼 레닌의 전위주의적 중앙집중주의는 그 자체에 전체주의적 속성을 담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그것은 레닌의 것이 아니라, 스딸린의 것, 즉 레닌의 노동자 국가를 배신한 스딸린 체제의 유물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 글에서 짧게 소개할 워너 본펠드와 쎄르지오 띠쉴러의 편저 『무엇을 할 것인가』는 후자의 질문과 관련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혁명 후 러시아의 타락은 스딸린체제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레닌의 혁명적 실천과 사유에 이미 내재해 있었다고 그들은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레닌을 극복하기 위해 레닌의 어떤 점을 비판하고, 또 어떤 점을 받아 안아야 할까? 나는 이 글에서 위의 문제의식과 관련한 이 책의 주장들을 검토하고, 그것에 대해 짧게 평가하고자 한다.

1. 책의 내용과 구성
이 책은 총 11개의 논문을 통해 3부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 글들의 필자들은 레닌을 맑스와 룩셈부르크, 그리고 20세기 초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관점과 대비시키며, 그의 혁명적 관점과 교조주의적 관점들을 분리해내고 있다. 1부는 그것을 20세기초의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문맥 속에서, 2부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와 레닌의 혁명전략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그리고 3부는 혁명의 방법에 관한 이론적 고찰을 통해 레닌의 실패한 혁명적 유산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책의 이러한 구성을 통해 레닌은 20세기초의 중대한 혁명적 사건(특히, ‘크론슈타트 반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당대의 주요 혁명가들(예를 들어, 룩셈부르크와 판뇌쾨크를 비롯한 좌익 공산주의자들)과의 이론적 차별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된다. ‘크론슈타트 반란’에서 나타나는 파시즘적 억압 정치와 그의 전위주의적 관념들은 맑스에 대한 오도된 해석 속에서, 그리고 러시아 인민주의로부터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 구성되었다고 필자들은 주장한다. 엥겔스로부터 카우츠키, 그리고 플라하노프 등을 경유하며 러시아로 수입되어 온 이른바 ‘기계적 유뮬론’(과학을 참칭한 철학적 유물론)의 흐름들은 레닌의 저작 속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난다.(싸이먼 클락의 「레닌은 맑스주의자였는가?」를 참조.) 카우츠키와 플라하노프가 그렇듯 레닌 역시 경제와 정치의 분리라는 부르주아적 이원론을 근본적으로는 극복해내지 못했으며, 국가라는 부르주아 지배기구를 혁명의 긍정적 전유의 기구로 오인하였다고 비판된다.(싸이먼 클락과 워너 본펠드의 논문 참조) 당의 지도와 국가장악을 통한 혁명이라는 관념은 인민주의적 전위주의와 기계적 속류 유물론의 영향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이중적 비판을 통해 근대형이상학을 극복하려 했던 맑스의 주요한 개념적 무기는 다름 아닌 ‘실천’이었다. 그러나, 레닌에게서 이 ‘실천’은 노동자 운동의 자생성과 의식성이라는 오도된 대립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 빈자리를 대신한 것은 주지하듯이 전위적 지식인들의 당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실천’에 대한 레닌의 무시는 그의 실천 일반을 크게 규정짓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는 “공산주의가 노동자 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맑스의 명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레닌의 오도된 실천과 사유를 대신하여 3부에서의 아그놀리와 홀러웨이의 글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에 대한 다른 사유의 방법 - 전위주의적 관념과 선험적 계급규정들을 넘어서는 ‘존엄’과 실존의 ‘부정적 정치학’ -  을 보여주고 있다.

2. 레닌은 극복되었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비판을 통해 레닌은 근본적으로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어려움 없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처럼 레닌은 맑스의 몇 몇 테제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룩셈부르크나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중심으로 해서는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양산해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들은 레닌이 직면하였던 혁명적 정세에 내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혁명적 정세가 만들어낸 구체적이고 중층적인 갈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통해 혁명적 이행의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었지 정언명령적 교리문구를 무기력하게 반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들이 쉽게 도달하고 있는 결론들과는 다르게 레닌에게 있어서 인민주의적 뿌리는 그의 저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서(여기서 그와 인민주의를 근본적으로 단절케 하는 것은 ‘전국적 정치신문’이다. 인민주의적 테러리즘에게서 대중 운동의 유기적 통합이라는 과제는 부차적이거나 비관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극복되며, 그의 전위주의는 때로 뛰어난 정치적 통찰들을 통해서 극복되곤 하였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혁명적 테제가 그러하다.) 문제는 그의 엘리뜨주의적 관념과 그 편집증이 그의 실천들 속에서 어떻게 혼효되었는가를 견고하게 분석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분석은 카요 브렌델이 이 책의 2장에서 시론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크론슈타트 반란’과 같은 反레닌주의적 실천들과 레닌의 지배의식이 맺는 관계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저자들은 너무 성급하다. 그들은 레닌주의에 대한 비판과 혁명적 이론의 생산은 레닌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레닌으로 더욱 더 깊게 침투해감으로써(그러므로, 내재적 접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룩셈부르크와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정세적 비판과 맑스의 명제들로 대체되었던 비판은, 대안을 향한 보다 발본적 접근으로 이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9장에서 쎄르지오 띠쉴러가 레닌주의적 실천을 넘어선 오늘날의 혁명적 사례로 유일하게 ‘사빠띠스따 반란’을 다루지만, 이 글에서 ‘사빠띠스따’의 혁명적 실천은 그 자체의 긍정적 술어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레닌주의에 대한 반정립을 통해서 아주 짧게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레닌주의에 대한 반정립’을 통한 서술로 과연 레닌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태경

2004.02.11 00:34:23
*.245.18.180

서평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글은 금방 쓴 것인데, 천천히 다듬고 올릴까 하다가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올립니다.

태경

2004.02.11 00:34:48
*.245.18.180

한글 파일로도 첨부했습니다.

가브리엘

2007.05.16 01:57:37
*.143.134.171

본문 중에, 기계적 유뮬론(과학을 참칭한 철학적 유물론).
네이버 사전에서, '참칭 - 1.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를 임금이라 이름'.
(자연)과학이 임금이고, 주제넘은 철학은 감히 스스로를 과학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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