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민주주의

예술인간의 탄생

인지자본주의

아우또노미아

위험한 언어

동물혼

몸의 증언

자본과 정동

자본과 언어

금융자본주의의 폭력

비로소 웃다

아내의 시

리듬분석

봉기

노동하는 영혼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혁명의 영점

캘리번과 마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선언

다중과 제국

네그리의 제국 강의

탈정치의 정치학

옥상의 정치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

매혹의 음색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공산주의의 현실성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

자립기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제국의 게임

산촌

생이 너무나 즐거운 까닭

빚의 마법

9월, 도쿄의 거리에서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정동 이론

정동의 힘

마이너리티 코뮌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크레디토크라시

예술로서의 삶

가상계

가상과 사건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잉여로서의 생명

로지스틱스

기린은 왜 목이 길까?

집안의 노동자

사건의 정치

기호와 기계

지금 만드는 책

예술적 다중의 중얼거림

Pourparlers

부채통치

부채인간의 관리

일상생활의 혁명

내 삶 속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1990년대 초반에 전위 운동의 후퇴와 대중운동의 약진 속에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었고, 1990년대 중반 군대의 직접적이 억압과 가족에의 속박으로부터 독립적 삶을 구성해 갈 때쯤 사회주의자의 삶을 고민하면서 체르니쉐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게 되었다.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끓어오르고 온 몸이 닳아오른다. 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너무도 선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물음이면서도 바로 그 이유로 목적을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 자체만으로 해방의 목적을 담아내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실천에서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했던 이유는 해방의 목적을 긴급한 물음으로 제기하지 않고 희미하게 제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목적' 보다 '수단'이 더 절실했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1990년대 초반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의 목적은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였고 그 해답은 너무도 선명하고 분명하게도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는 나에게 애매하고 모호한 대상이기 보다는 당위였고, 얼마나 올바르고 과학적인 혁명정당을 건설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였다. 1990년대 중반도 자유롭지는 않다. 당시 물음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난 무엇을 할 것인가'였지만,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스스로의 해방'은 '나'를 경계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장의 실천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제기하는 물음이기는 하지만 '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나가지 못하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질문 방식이었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앞에 있어야 할 "왜"를 더 많이 묻는다. 그것이 해방의 목적을 탐구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이곳'으로 끌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해방을 상상하고 실천하기 보다는 삶을 억압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왜' 우리의 노력은 우리 스스로를 더 크게 억압하는 것들을 생산하는가?' '삶을 억압하는 것들을 생산하는 우리들에 맞서서 바로 그 우리들은 삶을 해방하는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1990년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목적을 상실했으면서도 실천상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제기했었다면, 요즘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왜’라는 그 목적에 더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하고, 실천상의 태도 이전에 실천상의 태도를 만드는 실천적 관계들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책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해방의 목적'과 '해방의 수단'을 분리하지 않고 동시에 생각할 것을 제기한다. '수단'이 '목적'을 억압하거나 '목적'이 '수단'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수단'은 '목적'을 예비해야 하고 '목적'은 '수단'을 창출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은 다중의 자율성이 나날이 갱신되며 창출하는 공통성의 두 양태라고 이 책은 들려준다.

"여하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레닌의 위대한 질문은 오늘날 100년 전보다 훨씬 더 긴급하다... 그러나 그 질문은 수단으로부터 목적을 분리시킨다. 그리고 수단을 목적에 종속시킨다. 공산주의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건 정당화된다. 그렇지만 이 개념화는 수단들을 목적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수단들로부터 그것들의 해방적 내용을 박탈한다. (해방은 혁명 이후에 오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해서 그 관계는 역전된다. 왜냐하면 목적은 수단들의 생산물 이상의 다른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목적(소련 공산주의)은 필연적으로 비해방적이다. 수단의 목적에의 외관상의 종속은 필연적으로 목적의 수단에의 종속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모두다 꺼져버려! 혹은 반란;그리고 어떻게 살아갈까? 혹은 혁명)의 두 요소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두 요소 사이의 관계를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으로 본다. 대안적 사회성의 발전은 혁명 이후에 오는 그 무엇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반란에서 혁명으로의 운동이다."(340쪽)

“우리는 당신,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꺼져버려라! 우리가 가는 길에서 비켜라. 인간적 존엄의 상호인정에 기초한 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힘을 발전시키도록 내버려 두라.”(349쪽)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 다중지성총서 [경향신문|김동일] 삶·예술 경계 허문 플럭서스의 미학 / 김동일 _ 2011.4.5. file 오정민 2011-04-07 2081
48 카이로스총서 [펌|이종찬] 윤리로서의 관용 file 오정민 2011-03-15 2075
47 카이로스총서 [펌|간이역]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누구에 의해 지배 받고 있는가 정성용 2011-02-16 2024
46 갈무리신서 [펌|앙겔부처]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file 오정민 2011-01-30 2104
45 아우또노미아총서 [펌|간이역] 뉴욕열전-공간에서의 외침 그리고 사회약자들을 위한 책 file 정성용 2011-01-11 2443
44 아우또노미아총서 [펌|꺄르르] "사회를 이루는 밑절미가 사랑이라는 생물학" - 『앎의 나무』 서평 오정민 2011-01-10 1681
43 아우또노미아총서 [펌|탁선호] 뉴욕 '민중'의 삶과 저항 오정민 2010-12-21 1846
42 아우또노미아총서 [펌|권범철] 뉴욕열전! 여기가 치마타다, 여기서 뛰어라 오정민 2010-12-21 1643
41 아우또노미아총서 [펌|김강기명] 아나키스트의 뉴욕 읽기/뉴욕 되기 오정민 2010-12-21 1509
40 아우또노미아총서 [펌|maringo] 뉴욕열전, 2010년 서울의 모습을 투사하다 오정민 2010-12-21 1520
39 아우또노미아총서 [펌|안티고네] “노동을 넘어 삶으로”-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오정민 2010-12-21 1581
38 아우또노미아총서 <겸손한 목격자@....> 범죄수준의 오역 - 제발 번역자 바꿔서 재출간 해주시길.(글수정) soso 2007-12-15 4051
37 피닉스문예 [펌]김정희 - <숭어의 꿈>(서평) [2] 태경 2004-03-19 5760
36 아우또노미아총서 [서평]: 『무엇을 할 것인가』(워너 본펠드, 쎄르지오 띠쉴러 편저,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4) file [3] 태경 2004-02-11 4185
» 아우또노미아총서 [무엇을 할 것인가?] 삶을 해방하는 목적과 수단을 다시 생각한다. 땅누비기 2004-02-07 3244
34 아우또노미아총서 안냐세여~ 땡글이 2004-01-06 3128
33 아우또노미아총서 홈페이지가 참 예쁘네요 나그네 2004-01-06 3069
32 피닉스문예 [서평]『시지프의 신화일기』 - 고통 속의 인간, 고통 너머의 인간 file [3] 태경 2003-11-25 3428
31 아우또노미아총서 [re] [서평]『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이택진 2003-11-25 3279
30 아우또노미아총서 [서평]『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冬童 2003-11-25 3273



▷ Tel 02) 325 - 1485 | Fax 02) 325 - 1407 |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우편번호:04030) | galmuri94@gmail.com | @daziwonM
▷ Galmuri Publishing Co. 9-13, Donggyo-ro 18-gil, Mapo-gu, Seoul, South Korea (04030)
▷ 계좌번호: 국민은행 762302-04-029172 [조정환(갈)]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