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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와 제국  

http://www.bookers.co.kr/bookers/bookers_list_view.asp?section_id=02&category_id=05&article_no=89

경제적 공포와 제국
이성문(mongkeys@yahoo.co.kr)

경제적 공포에 대한 한 여성 소설가의 분노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자신의 책 《경제적 공포》(김주경 옮김, 동문선)의 서두를 랭보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랭보의 저 시는 우리에게는 흔히 착색판화집이라고 번역되는 시편 중 〈역사의 황혼〉이다. 《경제적 공포》라는 제목은 이 시에서 따왔다. 경제적 공포란 말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경제에 대한 공포이며, 구체적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프랑스에서 《자본론》만큼이나 충격을 일으키며 팔렸다는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녀는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서 복잡한 통계와 도표를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 그녀의 묘사는 실업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경제 시스템의 방식을 샅샅이 해부할 정도로 자세하다. 이 책을 읽는 그 어떤 사람도 그녀가 제시하는 현실에 밀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초국적 자본은 상대적으로 값싸고 저항 할 수 없는 온순하고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을 이용하여, 그리고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여 지속적으로 노동을 회피하고 노동을 배제하고 있다. 국가는 이것을 승인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그 다이어트란 무더기 해고였다. 즉,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방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눈치를 보고 핑계를 대던 국가와 기업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노동 부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 세계는 엄청나게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국가와 기업,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은 이 잉여인간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 조금만 참으면, 국민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고용될 수 있을 거라고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백날 발전해봤자 고용은 이루어지지 않게끔 되어있다. 이 현실에 대해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분노한다.

  실업자들은 국가와 기업의 거짓말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믿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보다 덜 괴롭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용되는 노동이 환상일지라도 실업자들은 그 환상에 집착하며 한없이 기다린다. 침묵과 좌절 속에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에 실업자가 할 일은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소비자라는 지위뿐이며, 그는 알량한 복지기금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굴욕적인 노동조건을 받아들여 받은 최저 생계비를 밑도는 임금을 쥐고 소비자가 된다. 그 복지기금마저 자꾸만 깎여나간다. 해고, 실업. 이것이 경제적 공포이며 국가와 기업들은 이 공포를 이용한다.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고용되는 노동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침묵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이상은 《경제적 공포》의 내용을 대충 스케치한 것에 불과하다. 비비안느 포레스테의 묘사는 랭보의 시처럼 읽는 사람의 내부와 외부를 한꺼번에 파고 들어와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를 아름답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녀가 묘사하는 현실은 잔혹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공포는 우리시대의 현실이다. 그녀는 그 어느 시대에도 이런 경제적 공포는 없었다고 말한다. 국가와 기업들은 이런 공포를 이용하여 전쟁과 국익을 정당화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돌아오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만 계산에 넣어도 12.3% 로 OECD국가 중 프랑스 다음으로 높다.  

제국의 ‘공포와 충격’요법에 맞서는 촛불
  초국적 자본이 전 지구를 지배하고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각성과 저항을 촉구하는 것이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이다.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조정환, 갈무리)은 안토니오 네그리를 비롯한 자율적 맑스주의를 연구해온 저자의 시사평론집이다. ‘제국의 석양’이란 제국이 위기의 부침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고, ‘촛불의 시간’이란 제국에 저항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운동의 시작을 의미한다. 촛불은 물론 2002년 광화문을 메웠던 촛불시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전 촛불행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저자가 단순히 반미주의를 외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제국은 여기 한국에도 있으며,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 차원에도 있다. 국가와 기업들은 짐짓 딴청을 피우며 자신들도 제국의 희생자인 것처럼 하고 있지만, 그들도 이미 제국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국은 전쟁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입한다. 그리고 이 공포는 물론 《경제적 공포》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저자는 국가의 장벽을 넘어 비자본, 비국가적 대안의 길을 모색할 것을 권한다. 그것은 자본의 가치법칙에 의해 그리고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훈육된 가치가 아니라, 자율적 가치를 옹호하는 자치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은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다중(多衆)이라는 말을 쓴다. 그 다중은 복수적이며, 단순히 노동자라는 일자(一者)로 환원될 수 없는 피지배계급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존재양태 그 자체이다. 다중은 여성이며, 동성애자이며, 생태주의자이며, 장애인이며, 이주 노동자이며, 실업자 등의 복수적 이름이다. 또한 그것은 이 사회를 바꾸어 가는 힘들의 다양성과 활력을 표현한다. 《경제적 공포》와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은 우리 사회가 애써 가리고 있는,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오늘날 이런 문제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찾아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사물, 인간, 자연간의 관계를 바꾸는 문제일 터이다. 서로간 관계의 교환에 대해 새롭게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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