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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선호] 유체도시를 구축하라.

조회 수 780 추천 수 0 2012.04.07 17: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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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도시를 구축하라. 

탁선호 ( <네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저자)

 뉴욕의 맨해튼 섬은 하늘로 치솟은 마천루들과 격자화된 거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본다면 맨해튼 섬만큼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섬도 없을 것이다. 가령 허드슨 리버나 이스트 리버 너머에서 하늘과 각을 이루며 당당하게 서 있는 마천루들의 고혹적인 자태를 바라볼 때, 혹은 록펠러 센터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질서정연하면서도 어지러운 도심의 모습을 내려다 볼 때의 아찔함 같은 것들은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한 공간적 경험이다.  

  이 매혹적인 섬을 수직과 수평으로 분할하는 마천루와 그리드 사이사이에는 금융자본의 심장을 상징하는 월스트리트, 온갖 상업문화의 전시장과 같은 타임스퀘어, 거대한 규모의 박물관,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작품이 전시된 아트 스튜디오, 최신 유행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등이 흩어져 있다. 맨해튼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 공원 중 하나인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크고 작은 공원과 광장도 제법 많다. 또한 마치 인류학적 전시장과도 같은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들이 섞여 있거나 때론 섞이기를 거부한 채 존재한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불과한 이 섬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듯 세상의 모든 시선과 욕망을 불러 모은다.   

  도시공간은 물질적, 지리적 형태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상을 통해서도 생산된다. 사회적 상상은 책, 영화, 텔레비전, 신문, 잡지, 예술작품, 건축물 따위를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는 담론과 이미지, 상징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거주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집합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런 사회적 상상은 하나가 아니다. 복수의 사회적 상상 중 시대마다 지배적인 것이 있다. 우리가 뉴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이미지는 근래 뉴욕이라는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상상의 일종이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저자 이와사부로 코소는 전작 <뉴욕열전>에 이어 뉴욕이라는 도시공간의 생산과 관계된 사회적 상상 중 지배적인 것, 즉 이윤창출과 사회적 통제를 위한 공간 생산과 관계된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를 비판한다. 그는 책의 전반부에서 마천루와 그리드와 같은 맨해튼의 건축학적 공간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가 어떻게 실현되어 왔는지 보여준다. 그의 관점을 따른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월스트리트,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박물관, 아트 스튜디오, 쇼핑 지역 등으로 대변되는 뉴욕의 경제와 문화는 이러한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가 실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코소는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를 추적하면서 도시공간에 남아 있는 민중의 삶의 흔적과 도시 곳곳에 자신의 신체를 개입시키며 도시공간을 생산해 나가는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뉴욕이 도시의 하층민들과 노동자 계급을 공간적으로 격리하고 배제하여 비가시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강력한 경찰력을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는 도시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도시공간을 생산하는 민중의 자율적 삶과 운동성에 천착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코소가 강조하는 ‘사회적 과정의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코소의 표현대로 하자면 도시의 민중들이 자율적인 삶의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가는 몽상vision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동적인 과정이므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우리는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실현된 공간에서의 일상에 익숙해져있기 떼문에‘사회적 과정의 유토피아’라는 것은 막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온 화려한 뉴욕의 거리의 모습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 같은 느낌인데, 도시 공간을 생산하는 민중의 자율적인 신체와 삶의 모습은 비일상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코소는 자신이 살고 있는 거리의 구체적인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며 제인 제이콥스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묘사한 1950년대 뉴욕의 작은 블록의 모습을 언급한다. 제이콥스가 그리는 작은 블록엔 골드스타인 씨가 운영하는 철물점, 슬러베 씨의 담배 가게, 또 누군가의 세탁소와 델리와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고, 창문을 통해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거나 집밖 계단에 나와 앉아 있는 주민들과 쉴 새 없이 거리를 이동하는 행인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시선들로 구성된다. 제이콥스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신체와 시선이 서로 뒤얽혀 만들어내는 작고 친밀하고 안전하고 상호신뢰에 바탕한 거리의 모습과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대도시 공동체의 모습을 옹호한다. 

  그러나 코소가 말하듯 뉴욕의 거리에서 ‘제이콥스적인 풍경’은 사라졌다. 제인 제이콥스가 이끈 커뮤니티 운동과 그녀가 내놓은 도시의 거리와 공동체에 대한 상은 로버트 모제스로 대변되는 대규모 도시 개발 방식을 바꾸어 놓았지만, 뉴욕은 금융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전략적 공간이자 초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입지하는 ‘글로벌 시티’로 부상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도심의 고급화)이 급격히 진행되었다. 

  문제는 ‘제이콥스적인 풍경’이 대안적인 도시 공간의 일상적 모습을 그려 보여주기는 하지만 도시공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운동 속으로 흡수되거나, 나아가 중간계급의 욕망과 심미적 취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소품의 역할을 하는데 그쳤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샤론 주킨이 1980년대 <로프트 리빙>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소호, 이스트빌리지 등 뉴욕의 도시 공간은 문화 또는 예술과 자본의 접합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주킨의 지적을 확장하자면 사회적 다양성과 자율적인 관계, 또는 반자본주의적인 전망을 내세우는 예술가, 비평가 또는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일상 속에서 그들의 예리하고 투철한 감수성을 표현하고 실천하기에 좋은 캔버스일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포스트모던한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문화적 자본의 축적과 전시의 장소가 되어버린 도시 공간에서 중간 계급의 불온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불온하지 않은’퍼포먼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차분하면서도 흥미롭게 ‘공간적 과정의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도시 이민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1부와 3부에 비해, 반자본주의적인 예술적 실천에 대한 과잉된 낙관이 보이는 2부는 다소 아쉬웠다. 지금 필요한 것은 1960, 70년대 자본 운동의 위기시절에 도시공간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급진적인 상상력과 실천이 새로운 도시공간의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확장을 가져온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이 우리 시대 도시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상상의 실체를 드러내고 도시 민중의 신체와 노동, 자율성의 힘에 기반한 도시 공간의 생산 가능성에 천착하는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미덕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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