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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이야기

『9․11의 희생양』, 마이클 웰치 저, 박진우 역, 갈무리, 2011

김준연

나는 『9․11의 희생양』(마이클 웰치 저, 박진우 역, 갈무리, 2011)이 다루고 있는 가해자(부시 행정부) 및 피해자(아랍인, 중동인, 남아시아인)의 이야기가 결코 그들만의 슬픈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언젠가 한 번쯤 외국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9․11의 희생양』이 제시하고 있는 희생양들처럼 아찔한 삶의 경험을 할지 모른다.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조차도, 당시 운이 나빴더라면, 이 책의 한 희생양 사례 속에서 다루어질 뻔 했다.



성냥 두 개, 테러리스트를 만드는 충분조건

몇 년 전, 내가 애틀랜타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의 일이다. 내 주머니 속에 굴러다니던 성냥개비 “두 개”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그 성냥개비는 나를 지극히 평범한 동양인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향한 항공기 테러를 계획하고 있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둔갑시켰다. 한 미국 교통안전국 보안요원은 내 수하물은 물론이고 내 양손을 시료를 묻힌 하얀 거즈로 문질러가며 화학물질을 찾느라 분주했다. 그들에게 나는 폭탄을 가슴 속에 숨겨놓은 테러리스트였다. 나를 언제라도 제압할 수 있도록 덩치 큰 두 명의 보안요원이 등 뒤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정말 무서웠다. 전등 하나 켜져 있는 취조실로 끌려가 배후가 누구냐고 소리치는 CIA(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관타나모 수용소로 끌려가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어야 한다면 꼭대기에 올라갈 행운이 생길까? 지금이야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지만, 당시의 상황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당시에 공포를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내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발화물질”을 소유하고 있던 나는 9․11 테러의 공포를 잊지 못한 피해자들, 공항 보안요원은 물론이고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테러주모자로 지목된 사람들과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줄 만한 “테러용의자”로 비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이러한 공포를 지니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포를 계기로 그들은 무엇보다 국가안보를 중시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헌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리들마저 포기할 수 있었다. 그만큼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이었다.



9․11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신화 혹은 발명품

『9․11의 희생양』은 대중의 (테러리즘) 공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람들과 그 공포의 등장으로 이용당하고 고통 받은 사람들, 그리고 이 공포의 행진 앞에서 침묵하고 만 사람들에 관한 보고서이다. 또한 이 책은 미국 사회에 “어떻게” 이 같은 비극이 연출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웰치가 주목한 것은 바로 신화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사회적 신화의 힘이 컸다. 사람들은 사회적 신화에 따라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있었던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배 권력이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빌리지>에 등장하는 한 마을은 주변세계로부터 수십 년 동안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마을의 주민들은 외부세계로 발을 뻗을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다. 마을의 주민들을 외부 세계로 손이 닿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을을 둘러싼 숲속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신화”였다. 숲으로 들어가면 미지의 괴물로부터 목숨을 잃는다는 전설은 마을 전체 주민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나아가 “평화로운 목가적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9․11의 희생양』은 영화 <빌리지> 속, 마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공포정치와 그 궤를 함께한다. 『9․11의 희생양』은 9․11 테러사건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양상으로 전이되는가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무엇보다 이성과 과학, 자유와 주지주의로 대변되는 서구의 문화와 정치가 “공포”라는 장치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붕괴되고 변질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9․11 테러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인권과 시민권, 그리고 법치주의가 대테러정책의 집행과정에서 어떻게 유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 문화, 사회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저자는 “희생양”이라는 명제를 잊지 않고 중심을 지킨다. 각종 보도자료, 수사자료, 인터뷰 등을 이용해 저자는 희생양들이 겪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들을 공개한다.



우리가 몰랐던 9․11의 이야기, 『9․11의 희생양』

사실 9․11 테러만큼 많은 지적 결과물들을 발생시킨 역사적 사건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9․11 음모론을 시작으로, 빈라덴의 죽음에 관한 의혹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의해 분석된 9․11은 이제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국에 우리가 『9․11의 희생양』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2011년, 우리가 9․11 테러를 다시 고찰하고 분석해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9․11 테러사건과 그 주변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의 종언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정작 아무 것도 별반 좋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난 날 동안 더욱 교묘히, 우스꽝스러워진 법과 규율 앞에서 축소된 미국인들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시기이다.

그 시간들 동안, 대한민국 속 우리들은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한 각종 제약들에 대해 눈을 감고 있지는 않았을까? 막연하고 실체가 모호했던 공포 앞에서 긴 시간 눈을 감아왔다면, 지금은 분명 그 눈을 뜰 시간이다. 특히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각이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 혹은 공격”이라는 주제 앞에만 서면 이성을 잃어버렸던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우리에게 『9․11의 희생양』은 분명 각성제로서의 효능이 있다. 소수민족과 약소국에 대한 타자화는 악의 축으로 분류된 중동 및 사회주의 국가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언제라도 타자로 둔갑되어 희생될 수 있는 공간, 바로 이 공간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생활세계이다. 나뿐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조국이 희생제의의 제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9․11의 희생양』은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희생양이 인류 보편적 주제라는 점에서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대판 아우슈비츠를 거부한다

위 사진:잔인한 고문의 현장, 아부 가립 수용소의 내부 모습


자신을 “선한 메시아”로 자청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 동기의 순수함과는 별개로 권력과 결탁되는 순간부터 수단이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개발된 고문도구들과 21세기에 벌어진 십자군전쟁에서의 인권탄압은 수세기가 지났음에도 인류가 변하지 않았다는 서글픈 진실을 보여준다. 21세기의 바그람, 관타나모만, 아부 그라이브에 현대판 “아우슈비츠”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9․11의 희생양』은 이 현대판 아우슈비츠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9․11의 희생양』은 미국이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자행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영화 <빌리지>에서 마을을 지키고 전통을 고수했던 아버지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딸에게 공포의 진실을 보여준다. 구시대의 허물은 구시대에서 끝나야 하듯이, 아버지는 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삶, 억압 없는 삶을 제시해준 위대한 선택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줘야 하는가. 『9․11의 희생양』을 덮을 때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9․11의 희생양』 목차

한국어판 서문:9․11 테러 10주기, 다시 만난 희생양 9
서문 15

1장 테러에 대하여 말하기
공포요인 22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담론 27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비판적 접근 37

2장 더 안전한 사회를 찾아서
도덕적 공황론과 위험사회론 49
테러와의 전쟁 속의 뜨거운 감자 55
조작된 공포와 불안 58
사회적 불안의 이동지점 63
국토안보 산업복합체 65
결론 70

3장 희생양 만들기와 사회적 불안
희생양 이론 74
사회적 불안과 배당된 비난 78
통제의 문화 80
테러와의 전쟁이 암시하는 사실 83
결론 87

4장 테러에 대항하는 십자군
종교가 된 국가 93
하나님의 백악관 100
이슬람교에 대항하기 위해 지속된 정치공작 108
결론 116

5장 반격폭력으로서의 증오범죄
종교적 적대감 조장하기 122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와 증오범죄 126
민족 증오의 사회적 맥락 133
결론 139

6장 9․11 이후 미국에서의 프로파일링과 억류조치
희생양 만들기와 민족 프로파일링 145
남용된 억류조치 159
2003년 감찰 보고서 170
억류된 망명신청자들 173
결론 178

7장 테러와의 전쟁과 국가범죄
이라크 전쟁에서 드러난 불법사실 183
아부 그라이브 학대 사건 195
아프가니스탄 죄수학대사건 201
불법적 적군 전투원과 관타나모만 204
테러와의 전쟁 기간에 자행된 고문 210
결론 217

8장 유효성을 주장하기
테러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실패 사례들 222
정부의 비밀주의 238
마약과의 전쟁이 남긴 교훈 247
결론 250

9장 시민권을 향한 공격
<애국자법>에 관한 논쟁 256
질식 직전의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1조와 정치적 반대 269
항공기 탑승 금지명단 277
결론 281

10장 부인의 문화
부인의 사회학 289
문화적 부인 303
반격 310
정책과 법률의 함의 314
최종 결론 321


지은이 인터뷰―빈라덴의 죽음, 테러와의 전쟁의 종언을 의미하는가? 324
용어해설 331
옮긴이 후기―희생양의 고통:『9․11의 희생양』과 우리의 희생양 이야기 344
본문에 등장하는 재판목록 358
참고문헌 359
인명 찾아보기 385
용어 찾아보기 388


덧붙이는 글
김준연 님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2011년 6월 21일

<인권운동사랑방> 소식지 『인권오름』 제 256호

김준연 서평자님


기사 원문 링크 : http://hr-oreum.net/article.php?id=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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