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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2010/12/16 06:17 꺄르르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시대입니다. 불안이 너울대며 사람들을 집어삼키려 하니까요. 언제 무슨 일이 ‘또’ 터질지, 어떤 용가리가 ‘또’ 들이닥쳐 쑥대밭을 만들지 한치 앞도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진 21세기입니다. 인류사를 통틀어 이렇게 넉넉하고 덜퍽진 때가 없지만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쓰러져 죽습니다. 더구나 2008년, 세계경제는 무너지면서 그동안 잘못 굴러갔다는 걸 스스로 까발렸죠. IT기술에 들떠하며 탈근대라든지 정보화라며 손뼉만 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렸더라면 지금 다른 모습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이 확고한 증거와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한 것들인지 따져봐야 한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16쪽. (부키. 2010)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장하준 교수조차 지금 경제짜임새를 땜질하듯 고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줍니다. 그는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는 세계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재건하는 것이다”(327쪽)라며, 지금과 딴판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부르짖습니다. 그냥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고을이 작살나는 일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때, 정치철학자 네그리의 연구는 훌륭한 지팡이가 되어줍니다. 모조리 시장에 떠맡기자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지구마을이 휩쓸린 가운데, 근대 내내, 그리고 요즘 들어 더 또렷하게, 온누리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네그리는『제국』과『다중』에서 읽어내었죠. 이젠 미국과 몇 나라들이 으스댈 수 없는 제국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제국주의와는 달리 제국은 결코 영토상의 권력 중심을 만들지 않고, 고정된 경계나 장벽들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제국은 개방적이고 팽창하는 자신의 경계 안에 지구의 영역 전체를 점차 통합하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되는 지배 장치이다. 제국은 명령 네트워크를 조율함으로써 잡종적 정체성, 유연한 위계, 그리고 다원적 교환을 관리한다.『제국』17쪽. (이학사. 2001)



 

제국주의시대처럼 힘 센 나라들이 약한 나라를 쳐들어가 식민지를 삼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란 그물망이 온 지구를 뒤덮었으며, 사람들 위에서 지배하기보다는 사람들 그 자체를 지배하려고 한다며, 수많은 자료들을 끌어들여 커다랗게 바뀐 대목들을 파헤칩니다. 하지만 네그리가 일컫는 ‘다중들’이 정작『제국』을 읽어내기 수월치 않다는 점은 좀 찝찝하죠. 책 내용이 여간내기가 아니거든요. 마침 그가 지구동네를 돌아다니며 강연한 알맹이들을 묶은『네그리의 제국 강의』(갈무리. 2010)이 나와, 보다 더 쉽게 수다보따리를 푸네요.

자신의 책을 갈림길 삼아 제국이 맞느냐, 제국주의가 맞지 않느냐, 말씨름이 거세게 일어났던지라 네그리는 그러한 물음들에 하나하나 답을 하며 보다 더 친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꺼냅니다. 제국주의란 틀에 갇혀있으면 변한 오늘날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한다면서, 지구의 얼개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넘어갔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제국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조합입니다. 달리 말해, 제국은 이 세 정점들 주위에 구성되고 있는 힘들의 구조 속에 존재합니다. 제국의 위계적 구조화는 권력의 세 수준들의 분절에 의해 작동합니다. 첫째는 미국의 군주적 수준으로서, 이 수준에서 군사적, 화폐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유지됩니다. [둘째로] 모순들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전 세계 생산의 모든 공간들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는 귀족정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이미 어떠한 국민적 색깔도 띠지 않는 금융 체계들에 기초하고 있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다국적기업들입니다. 30쪽


이렇게 제국이란 안경으로 지구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고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지난 20세기와 달리 여러 나라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고 ‘치안 관리’에 힘쓰는 까닭도 자신의 손아귀를 뻗어 움켜쥐어야 할 바깥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자본주의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요. 맑스가 얘기하는 ‘실질포섭’이 끝난 셈이죠.

그렇다면 미국이 벌이는 아프가니스탄를 쳐들어간 일이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이 아니란 말일까요? 네그리는 ‘쿠데타’라고 설명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뒤로 미국이 제국에 ‘쿠데타’를 일으켜 세계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쳐들어갔다가 수렁에 빠진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듯 제국시대엔 어떠한 ‘군주’ 혼자 팔뚝질을 해대도 제국권력을 다 가질 순 없다고 네그리는 얘기합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무기가 있다며 이라크에 쳐들어간 미국. 그 결과는? 영화 <그린존>

 
제국이라 말을 들으면 당나라나 로마가 떠올라 답답하고 어두컴컴할 수 있지만, 도리어 네그리는 절대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마당이 열렸다고 여깁니다. 제국은 다중들의 움직임을 잡아매고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얼개이고, 제국을 만들어낸 다중이 이 제국마저 넘어설 거라고 내다봅니다. 그렇다면 다중은 누구일까요?

다중은 우선 먼저 계급 개념입니다. 더 잘 표현하자면 다중은 하나의 계급적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확장된 계급 개념, 달리 말해 노동계급이라는 낡은 개념보다 더 폭넓고, 더 광범위하며 더 포괄적인 계급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중은 그 안에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농업 노동자들, 학생들, 연구자들 등등을 포함합니다. 198쪽


다중은 한마디로, 백성(百姓)들입니다. 말 그대로 지배권력의 말과 글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그저 대중이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노동의 지식화가 이뤄지고 사회의 공장화가 퍼져간 오늘날에 새롭게 나타난 뭇사람들의 엮임입니다. 여태껏 정통 맑스주의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그 바깥의 언저리에 있던 이들까지 아우르는 널찍한 개념입니다.
 
다중은 끝없이 자본주의와 지배세력에 대들고 맞서는데, 이미 지구 골골샅샅에서 다중들의 저항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8년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네그리가 내놓은 생각과 꽤 잘 맞아떨어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힘은 대학생이나 노동자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셈이죠.

배불뚝이들이야 콧노래를 부르며 흥청망청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이며 날마다 괴롭게 버티는 지경입니다. 오랜 세월, 줄기차게 솟구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바람을 일으키고, 지금 여기에서 이뤄내자고 네그리는 외치네요.

혁명이라는 주제가 다시 의제로 복귀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가 낳은 억압적 힘들의 위기)는 새로운 개혁적 시각들을 열지도 못할뿐더러,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를 수 있는 장대한 지평들을 제공해주지도 못합니다. 이 위기 이후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신자유주의의 패배가 다시 한 번 드러내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라는 확신 속에서,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겠다는 결의를 갖춘, 가난의 절박함과 사랑의 긴장입니다. 12쪽



* 전체서평 링크 : http://blog.ohmynews.com/specia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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