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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사상의 진화> 옮긴이 후기

조회 수 5335 추천 수 0 2004.06.28 11:25:19

□ 옮긴이 후기






이 책은 주로 들뢰즈의 초기 사상을 다루고 있는 『들뢰즈의 철학사상』(Michael Hardt, Gilles Deleuze:An Apprenticeship in Philosophy, Minnesota, 1993;한국어판, 이성민-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6)을 원문과의 대조를 통해 재번역 또는 재교정하여 1부로 배치하고, 거기에 들뢰즈와 가따리의 중-후기 작품인 『안티-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에 관한 마이클 하트의 독해를 2부로 배치하여, 하트의 들뢰즈 독해를 좀 더 총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들뢰즈의 철학사상』이 처음 번역되어 소개된 때에는 이정우가 번역한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가따리』(새길, 1995)가 이들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소개한 유일무이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들의 주저인 『앙띠 오이디푸스』(최명관 옮김, 민음사, 1994)가 출간되기는 했지만 예나 제나 오역으로 점철되어 제대로 이해되기는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로널드 보그의 책은 지금도 여전히 훌륭한 책이긴 하지만, 저자가 문화에 대한 관심에 경사된 나머지 들뢰즈의 핵심적 사유에 접근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그런 점에서 1996년에 『들뢰즈의 철학사상』이 번역 출간된 것은 한국에서 들뢰즈와 가따리에 관한 논의의 지평을 변화시킨 일종의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들뢰즈-가따리에 관한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던 사람들도, 비록 들뢰즈에게 국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들의 사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들뢰즈의 철학사상』이 번역 출간된 지 이제 거의 8년이 되어가고, 또 그때와는 달리 들뢰즈의 책이 거의 대부분 번역되거나 번역 준비 중에 있는 상황이므로, 앞선 두 역자가 고심하여 선택한 역어들이 현재적 맥락에서 소통되는 용어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등 수정의 필요가 발생하여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다른 한편 이 책을 지금 다시 읽을 경우,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소개되던 당시 지은이인 마이클 하트는 대개 들뢰즈에 대한 한 명의 독자 정도로 이해되었을 뿐, (이 책의 1부 3장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아우또노미즘(또는 자율주의)에서 들뢰즈를 어떻게 전유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고, 그저 들뢰즈의 스피노자 독해에 관한 하나의 친절한 해명서 또는 입문서 정도로만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시에는 쉽게 지나쳤던 측면들, 소위 아우또노미아나 자율주의적 경향이라고 불리는 관점에서 들뢰즈를 어떻게 전유하는가 하는 문제, 또는 더 넓게 말해서 들뢰즈와 맑스의 관계 문제가 지금에 와서야 새삼 중요한 것으로 다시 떠올랐다는 것도 이 책을 『들뢰즈 사상의 진화』라는 새로운 이름과 체제로 출간하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이클 하트는, 이후 안또니오 네그리와 공동으로 집필한 두 권의 역서인 『디오니소스의 노동:국가형태 비판』(조정환 옮김, 갈무리, 1996)과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에서 보여주듯이, 아우또노미아와의 마주침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풍부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독자들은 이러한 경향의 단초를 들뢰즈의 초기 저작에 관한 독해인 바로 이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1

이 책의 1부 ‘들뢰즈의 철학사상’이 철학적인 관점에서 정치적인 관점으로 나아가는 독해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즉 철학의 정치적 함의를 추적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면, 이 책의 2부 ‘들뢰즈의 사회사상’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함의의 문제로 곧장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2부가 정치학적 주제를 다룬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들뢰즈와 맑스(주의)가 어떻게 마주칠 수 있는지, 서로 어떤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고찰하고 살펴야 하며, 이를 위해 들뢰즈-가따리의 주요한 두 개의 저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심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 책과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하트의 다른 책들을 같이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들뢰즈와 정치 혹은 들뢰즈와 맑스주의 등등의 무한하게 접속될 수 있는 계열들(페미니즘, 생태주의 등)에 관한 작업들에 대해서도 함께 독해할 것을 권하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들뢰즈의 몇몇 초기 논문과 글들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번역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독서를 진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이중의 방향을 띤다. 하나는 들뢰즈 자신으로 파고 들어가 이를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다. 여기에는 들뢰즈-가따리의 책만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로날드 보그를 비롯해 『천 개의 고원』의 영역자로 더 잘 알려진 브라이언 마수미의 책들,2 베르그송과 들뢰즈를 생명이라는 문제틀을 중심으로 엮어내는 피어슨(Keith Ansell Pearson)의 책들,3 그리고 푸코에 대한 훌륭한 글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라슈만(John Rajchman)The Deleuze Connections(Cambridge, MA:MIT Press, 2000)를 비롯해 카우프만(Kaufman, E.)과 헬러(Heller, K.J.)가 편집한 Deleuze and Guattari:New Mappings in Politics, Philosophy and Culture (Minneapolis:Minnesota University Press, 1998), 들뢰즈의 철학 전체를 정치이론과 관련하여 풍부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폴 패튼(Paul Patton)Deleuze and the Political(London:Routledge, 2000) 등을 읽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진경의 『노마디즘1․2』(휴머니스트, 2002)나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푸른숲, 1997), 이정우의 『시뮬라르크의 시대:들뢰즈와 사건의 철학』(거름, 1999), 박성수의 『들뢰즈와 영화』(문화과학사, 1998) 등이 빠질 수는 없다.

다른 하나의 독해는 마주침 또는 계속적인 접속의 관계에서의 독해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들뢰즈에 대한 비판적 독해도 포함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미 번역 출간된 알랭 바디우의 『들뢰즈:존재의 함성』(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1)과 슬라보예 지젝의 Organs Without Bodies - on Deleuze and Consequences(London:Routledge, 2004)이다. 또한 여기에는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문학과 지성사, 2002)가 빠질 수 없으며, 『안티-오이디푸스』만을 주제로 삼아 분석하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갈래와 접속을 (시도)하는 홀랜드(Eugene W. Holland)Deleuze and Guattari’s Anti-Oedipus:An Intorduction to Schizoanalysis(London:Routledge, 1999)들뢰즈가 죽음으로 인해 다 완성하지 못했던 소위 “맑스의 유산”이라는 글을 중심 모티브로 삼아 들뢰즈와 맑스, 그리고 아우또노미아와의 관계를 탁월하게 설명하는 니콜라스 쏘번의 『들뢰즈, 맑스, 그리고 정치학』(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4 근간 예정) 등을 필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네스코(Gery Genesko)가 편집한 Deleuze and Guattari 1․2․3 (London:Routledge, 2001)은 분량의 방대함만이 아니라 모아 놓은 글들의 깊이와 다양함으로 인해 들뢰즈-가따리와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에, 새롭고 다양한 삶들을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 두 번째의 독해에는 도대체 “어떤 들뢰즈(와 가따리)”를 읽을 것인가 하는 방향의 문제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 이를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하트와 관련해서 보다 깊이 있게 천착하려면, 안또니오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정남영 옮김, 갈무리, 2004)을 병행하여 독해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우리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용어법과 관련해서 아직 정착되거나 합의되지 않은 역어들에 대해 새로운 역어를 시도하고 때로는 그 이유를 각주에 상세하게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지나친 각주의 개입으로 인해 독자들의 눈의 피로를 더할까봐 중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에는 [  ] 표시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독자들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power’라는 말 많은 용어를 여기에서는 거의 대부분 ‘역량’으로 옮겼다. 때로는 ‘역능’이나 ‘권력’으로 옮겨지곤 하는 이 용어를 이렇게 옮긴 것은 힘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따라서 접근의 용이성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밝혀둔다. 그러나 지배권력이나 국가권력 등의 의미가 강할 때에는 권력으로 옮기기도 했다. 맥락과 내용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했다.

또한 ‘virtual’과 ‘potential’을 각각 ‘잠재’, ‘잠재적인 것’과 ‘잠재력이 있는’ 등의 의미로 옮겼으나, 본문에서 보듯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로 ‘potentiality’가 사용되었을 때에는 ‘가능성’으로 옮겼다. 실제로 콘티탄틴 V. 바운다스의 경우는 이 때문에 마이클 하트가 ‘잠재’/‘현실’, ‘가능’/‘실재’의 구별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있기는 하나, 때로는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 접근시킨다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4

여기에서 우리는 ‘singnalarity’를 ‘단독성’으로 옮겼다. ‘특이성’이라는 번역어는 수학적인 표현에는 적합하지만, 철학적․정치적 맥락에는 적합하지 않다. ‘singalar’는 ‘다수’(plural)에 대립되는 ‘개체적인’(individual) 대상이나 인물과 관련된다. 그런데 ‘개별’이나 ‘특수’가 ‘일반’에 포섭되는 ‘일반’의 한 사례라고 한다면 ‘singalar’는 ‘개별적’이지만 ‘일반’에 포섭되지 않는 예외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단독성’이 존재의 생산과 관련되는 발생원리의 하나이며, 이것은 ‘개체원리’나 ‘특개성’으로 옮겨지는 ‘haecceities’나 ‘개체화 원리’에 의해 해명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특이성’(特異性)이라는 단어는 ‘異’만 강조하기에 무엇의 다름인지가 애매하고 ‘개체’와 관련되면서도 달라지는 것을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용어인 ‘affectus’와 ‘affectio’를 각각 영어로 옮긴 단어인 ‘affect’와 ‘affection’은 ‘정서’/‘변용태’와 ‘변용’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affect’를 활용한 동사의 변화형이 사용될 경우에는 ‘변용’과 ‘촉발’을 병기해서 사용했다. 유한 양태에 관한 언급에서는 ‘촉발’이라는 번역어가 때로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영어와 불어의 어감차이가 크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불어나 원어를 우선시하여 번역해 두었고, 그 이유를 각주에서 설명했다.

우리는 ‘transcendent’와 ‘transcendental’을 각각 ‘초재적’, ‘초월적’이라고 옮겼다. 원래 전자는 거의 대개 ‘초월적’으로 옮겨지며 간혹 이를 ‘초재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후자의 경우는 전자와 구별하기 위해서 ‘초월론적’, ‘초험적’이라고 옮겨지기도 하나, 한국어로 사실상 이 두 용어를 제대로 짝짓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따라서 나름의 근거에 토대를 두고 새로운 번역어를 선택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조작적 번역어’이다.

또한 이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글귀의 경우 한국어 번역본이 있을 때에는 한국어 번역본을 각주에 병기해 두었다. 다만, 한국어 번역본과 옮긴이들의 해석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에는 책 제목과 쪽수를 표기했다.

한편, 용어에 대한 설명이 들뢰즈․가따리에 관한 다른 책에서 아주 훌륭하게 펼쳐져 있는 경우에는 염치불구하고 이들의 설명을 각주에 옮겨 놓기도 했다. 독자들의 이해편의를 위한 것이니 널리 용서와 양해를 구한다.

항상 그렇듯이, 책 한 권이 나오는 데는 많은 협력적(cooperative) 노동이 들어간다. 이성민과 서창현의 고된 노동의 결과이자 이 책의 초판본이 없었다면 이 작업은 더욱 더 지연되었을 것이다. 또한 2부의 초벌번역본을 『자율평론』에 게재하여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자율평론』 편집진들이 없었다면 수정하여 출판할 기회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 오역이 남아있다면 그 책임은 모두 역자의 것이다.

지구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도상의 공간에서 볼 때 머나먼 곳인 프랑스에서 같이 번역에 들어간 양창렬, 그의 인생과 지적 동지인 홍미숙에게 역자를 대표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삶의 물질적․지적 토대를 활성화하고 윤택하게 하는 데 늘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제정은을 비롯한 ‘민중의 땅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이 또한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와 ‘다른 방식의’ 삶과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무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04년 5월 31일

역자를 대표해 김상운


1. 가령 지오반나 보라도리(Giovanna Borradori)는 베르그송-니체-스피노자로의 진화에 관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하트의 것과 일치하지만, 들뢰즈의 니체에게 있어서 베르그송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다른 독해들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하트는 “베르그송의 가치전환에 관한 들뢰즈의 사용법을 존재론적 차원으로만 한정하며…존재론적 차원이 (그가 니체와 올바르게 연결시켰던) 정치-윤리적 차원을 통해서는 여과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Giovanna Borradori, “The temporalization of difference:Reflections on Deleuze’s interpretation of Bergson”, Continental Philosophy Review 34:1~20, 2001과 Giovanna Borradori, “The Presence of Bergson In Deleuze’s Nietzsche” 등을 보라.


2. 브라이언 마수미는 다양한 각도에서 들뢰즈-가따리에게 접근하고 있으나 우리는 널리 인정되듯이 A User’s Guide to Capitalism and Schizophrenia(New York:The MIT Press, 1992)와 그가 편집한 A Shock to Thought - Expression After Deleuze and Guattari(London:Routledge, 2002) 등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 두 권의 책 중에서 특히 전자는 『자본주의와 분열증』의 2권에 해당하는 『천 개의 고원』에 대한 독해에 상대적으로 치중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빼어나게 종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읽어야만 하는 훌륭한 책이다.


3. 특히 Germinal Life:The Difference and Repetition of Deleuze(London:Routledge, 1999)를 비롯해 그가 편집한 Deleuze and Philosophy:The Difference Engineer(London:Routledge, 1997)를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4. Constantin V. Boundas, “Deleuze-Bergson:an Ontology of the Virtual”, Paul Patton (eds.), Deleuze:a Critical Reader, Blackwell, 1996, 특히 주석 23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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