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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밖의 길> 시인의 말

조회 수 5049 추천 수 0 2004.06.02 10:59:28
시인의 말 - 『길 밖의 길』 후기

이십대를 거의 다 보낼 무렵까지도 문학은 나에게 상식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 무렵에 나는 우연히 한 시인을 만났는데, 그의 지독한 가난과 끔찍한 슬픔, 그리고 삶의 일탈과 순수를 향한 대책 없는 고집스러움에 적잖은 혼란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또 그 시대를 저항하는 눈물겨운 방법이었기에 내 삶을 기어코 흔들어 놓았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그 시인은 박영근이었다. 그와의 짧은 만남 이후 거의 소식도 모르고 살았으나, 그 인연으로 내딛기 시작한 우연한 발길이 20년을 이어왔다니 믿기지 않는다. 한 발은 늘 밖에 있었다고는 하나, 돌아보니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세월의 부피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요즘 들어 그 첫마음이 자꾸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의 탐욕과 권력의 구조화된 그물망이 점차 거대해지고, 조밀해지고, 일상화되고, 추악해져 왔다. 그럴수록 내가 꿈꾸지도 않았던 세계에 조금씩 빨려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속박을 늘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는 `안`(국가, 길, 나, 시)에 있으나 `밖`을 향하는 물건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내 `안`으로 붙들려고 하지 않았다. `밖`을 버릴 때면 어김없이 추한 권력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좋은 책을 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갈무리 출판사의 모든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정우영 시인은 고맙게도, 내가 `캄캄한 촌구석`에 산다고 이것저것 챙겨주어, 그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일 여럿을 하게 하였다. 작년에 낸 시집 `『초심』도 내가 쓰레기통에 처박은 원고를 그가 끄집어낸 것이었다.
아직 동은 트지 않았으나, 어둠 속에서 신발끈을 조이는데, 새들 우는 소리 마당에 가득하다.

                    ― 갑신년 오월에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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