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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jpg
(기사 전문)

우리나라에서 대표적 자율주의 이론가로 꼽히는 조정환씨의 책 <인지자본주의>는 지난해 학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인지자본주의론은 정보화, 탈산업화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기존과 달리 노동자가 보고 듣고 말하는 인지능력까지도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노동이 가치를 만들어내며 이를 시간 단위로 측정 가능하다고 본 전통적인 노동가치론을 이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등 마르크스주의의 ‘재전유’를 주장했다.

조정환씨는 이 책으로 일곡 유인호 학술상을 받는 등 큰 주목을 받았으나, 학계 일각에서는 노동가치론이 지금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고 본 그의 주장에 비판을 제기했다. 인지자본주의론이 오래된 ‘노동가치론 논쟁’을 또다시 불러낸 셈이다.

계간 <마르크스주의 연구> 봄호는 ‘인지자본주의론의 쟁점’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마련하고, 조정환씨의 원고와 이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입장에서 비판하는 세 편의 원고를 함께 실었다.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스쿨(SOA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희상씨와 김공회씨,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현웅씨 등 세 신예 연구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 비판에 나섰다.

조씨는 논문에서 비물질노동, 곧 인지노동이 지배적이 된 지금 시대에서는 노동시간을 척도로 하는 전통적 노동가치론이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을 재확인했다. 물질노동을 중심으로 생산과 교환 관계를 표준으로 삼았던 산업자본주의 때와는 달리 인지자본주의 시대에는 비물질적인 인지노동이 생산적 노동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삶 자체가 착취 대상이 됐다는 것.

따라서 그는 노동가치론에 매몰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집착하지 말고, 마르크스가 산업자본주의 당시 노동가치론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것처럼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마르크스의 비판을 “자본내재적이 아닌 삶내재적”, 곧 산업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매몰되지 않은 어느 시대에나 공통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젊은 연구자들은 조씨가 노동가치론을 물질노동, 육체노동 등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등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총체적인 모습을 단순화하거나 불충분하게만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희상씨는 노동가치론에 대한 조씨의 인식에 대해 △물질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주장해 노동가치론의 적용범위를 협소화했고 △육체노동을 수행하는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주장해 노동가치의 생산을 역사적으로 특수한 분업형태에 종속시켰으며 △마르크스의 내재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도덕적·외부적 비판으로 환원시켰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원리에 기초해 그것의 불안정성과 자기파괴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유효한데, 조씨의 논의는 이를 뛰어넘은 초월적인 외부적 비판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현웅씨는 조정환씨를 비롯해 네그리와 하트, 데 안젤리스, 무리니와 무마겔리 등 노동가치론에 대한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비판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하겠다며 노동가치론을 배격하려 했던 이론가들이 보이고 있는 이분법적인 접근방식을 지적했다. 경제와 정치, 물질과 비물질, 육체와 정신, 산업자본주의와 인지자본주의 등의 이분법을 통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느 한쪽만 강조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시도는 현실에 대해 종합적인 접근을 펼쳤던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어, 노동가치론을 기각해야 할 이유가 오히려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김공회씨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가치이론의 기반이 ‘측정 가능성’이라기보단 상이한 상품들의 끊임없는 비교와 동등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사회적 평균’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물질노동이라고 해서 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들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동등화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곧 비물질노동의 증대라는 현상은 오히려 더욱 세심하게 가치를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론의 폐기와 옹호로 나뉜 두 입장은 그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기본소득’ 등의 논의를 매개로 삼아 서로 만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논문과 함께 실린 안현효 대구대 교수의 논문은 사람들의 삶과 사회 전체가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고 보는 인지자본주의론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두 입장의 끊임없는 논쟁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한겨레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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