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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가져다준 조우(遭遇)
- 김현우

외신을 통해 치아파스 반군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곤 하던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는 이제 우리에게도 제법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지난 1994년 정월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파스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에 맞추어 봉기를 시작했으며, 스스로를 멕시코 민주혁명의 영웅이었던 에밀리오 사파타의 이름을 따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라 불렀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받던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었지만, 봉기의 배경에서도 감지되듯이 가중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를 선포하며 세계적 저항을 호소하는 보다 큰 차원의 것이기도 했다. EZLN의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최근 우리말로 소개된 기지 넘치는 에세이에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제 4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ZLN이 지리적 고립과 물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년여 넘게 저항투쟁을 지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 등 지구적 통신망을 이용한 '말과 이미지의 전쟁'에서의 우위 덕분이었다. 지난해 12월에 발생한 원주민 학살 사건에서도 이들은 몇시간만에 전 세계의 항의를 조직하여 세디요 대통령을 괴롭힐 수 있었다.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뉴스그룹들이 이들의 코뮤니케와 지원호소를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퍼트렸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해리 클리버 교수는 이 과정에 참여하여 자료들을 '치아파스95'라는 체계적인 문서고로 정리하는가 하면, 96년과 97년에 각각 치아파스와 스페인에서 이루어졌던 '인권의 옹호와 신자유주의 반대를 위한 대륙간 회합'을 후원하기도 했다. {사빠띠스따}는 이러한 작업들의 소산인 셈이다.

이 책은 클리버가 직접 선별한 차례로 묶여서 영어판 보다 한국어판이 먼저 출간되었다. 그의 '자율주의' 철학이라는 이론적 관심과 투쟁의 전지구적 전자적 직조구조(electronic fabric)의 역할에 대한 실천적 관심으로부터 비롯한 에세이, 서평, 심지어는 인터넷 자료 리스트들까지 담고 있는게 인상적이다. 용이하게 읽히는 개설서를 기대한 이들의 기대와는 어긋나겠지만 이 책은 어떤 운동의 자료집인 셈이다.

{사빠띠스타}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가지의 측면일 듯 하다. 우선, EZLN의 운동 자체가 갖는 성격이다. 이들은 여느 정치운동들과는 달리 국가권력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국제주의, 위계에 대한 반대, 소수자의 권리를 지향하는 탄력적인 운동이다. 이를 존 홀로웨이는 "새로운 권력개념"이라고 이야기하며, 또 혹자는 '포스트모던'한 반란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지구적 통신망이 새로운 운동공간으로서 갖는 특성과 가능성이다. 마르코스는 "정부가 진실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정보통신기술을 다루는 한 사람의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며, "만약 칼 마르크스나 체 게바라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궁금하다"라는 한 리포터의 말도 인용되고 있다. 끝으로 클리버가 취하는, EZLN에 대한 '자율주의'적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운동을 '계급의 자기가치화'로서 해석하는 그의 주장은 또 하나의 토론거리가 될 듯 하다.

그러나 클리버의 관점으로만 사파티스타를 이해한다면 멕시코 내의 계급관계와 EZLN의 조직력과 전술, 그리고 멕시코 노동운동의 역할 등이 지나치게 간과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사파티스타와 클리버 양자의 활동은 신자유주의의 공격, 야만의 지구화에 맞서는 지역적(동시에 지구적) 투쟁의 고무적인 본보기로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할 듯 하다.

정부와 언론들은 멕시코를 구제금융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선전하지만 그 이면의 사회의 피폐화와 민중의 투쟁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파티스타는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항변일 것이다. 이방인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사파티스타는 IMF 덕분에 우리와 이렇게 가까이 조우(close-encounter)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이 아직 적고, 그들과의 연대가 아직 빈약한 것을 생각한다면, 좀 더 관심을 가져도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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