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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 신승철

1. 시지프스의 노동에서 디오니소스의 노동으로!


텔레비젼속 대선후보의 움직임은 여론조사와 득표수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대선시뮬레이션 머드게임을 연상케 한다. 선거의 결과를 놓고 여론을 가공하는 것, 개혁과 반동을 절충하고 합종연횡하는 부르조아선거전의 움직임은 하나의 게임이나 마찬가지이며, 대의제정치의 추악한 실체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정객들은 선거의 재현된 형식들에 대한 일반적 합의속에서 가공의 시민들에 기반하여, 정권재창출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제 선거는 텔레비젼 시청자와 대중을 동일시하며 표찍는 수동적 행위로 대중의 자율성을 질식시키는 의회민주주의의 절차적 합리화과정에 불과하다. 역자는 대중의 '자율성'을 역사 저편으로 퇴장시킨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함으로서,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지반인 '산노동'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 탈근대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의 단초를 풍부히 제시하고 있다. 역자의 총론; [오늘날의 계급구성과 '자율성' 개념의 발전]은 기간 논의의 쟁점들과 의문점, 곡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명료하게 대답하고 있다. 자본은 산노동의 삶의 양식을 죽은 노동 - 정량화된 시간이라는 형태로 전화시켜 관계하므로 그 자신의 흡혈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삶의 영토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실질적 포섭국면'으로의 이행이라는 범주는 자본이 '산노동'의 영토를 단지 '죽은 노동'으로 재구조화하였을때 비로소 가치창출과 착취행위를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자본이 산노동의 자율성을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으며, '사회적 노동자'라는 불가역적인 자율성의 확장된 영토를 의미한다. 역자의 주장은 시지프스의 노동에서 출발하는 정치경제학의 객관주의적인 분석에 더 익숙한 독자들이 가졌던 역저{디오니소스의 노동}에 대한 오해와 왜곡들에 관련하여 반드시 요구되었던 주체적인 답변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비판으로서의 꼬뮈니즘의 전통; 맑스가 꼬뮌의 예감속에서 서술했던 {요강}의 '산노동의 자율성'이라는 디딤돌을 힘차게 딛고 설때, 정치적 도구들을 움켜쥘 살아있는 육체들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을 열어재낄 수 있는 것이다.

[총론]에 입각하여 나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실질적인 포섭에 대한 욕구가 현시기의 특징이라 할 때, 자본의 약탈적 속성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대중의 노예화 현상을 도출하고, 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집단을 외재적으로 도출해내면서 시민사회의 새로운 복권을 주장하는 정박의 정치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실존하는 두가지 유형의 운동들 ; 자본과 비대칭적인 산노동의 존재론적 지평을 구체화하고 절대적이고 무진무한한 자율성의 잠재력을 실재화하는 유영의 정치를 주체의 내재적인 실천의 동학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었다. 기간 좌파의 정치이론에서 전개되어온 '산노동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는 계급의 의식성과 자발성의 구별인 이원론에 기초하여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존재론적인 실체의 역능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간 '산노동'의 현존하는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 계급구성변화에 대한 연구와 정치구성적 실천의 논의 - 이 수행되지 못한 채 선결정적 이론의 자율성에 좌파정치가 경도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영토를 협소화하고 있음이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론의 유효성; '무기의 비판이 비판이라는 무기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로 대표되는 레닌의 역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의와 더불어 한계를 평가하고 이원론적 설정의 모순이 응집되었던 당-국가로의 후퇴라는 스탈린주의의 맥락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이제 당-국가는 [소련공산당사]와 같이 계급의 외부에 독자적인 계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노동운동의 실재적이거나 잠재적인 지평들 중 하나의 기능이자, 역사적 무기로서만 사고된다. 그리고 기간 실존사회주의 몰락과정에서 진행된 '국가형태비판'이라는 논쟁들속에서 간과되었던 산노동의 역사를 객관주의적/자유의지론적 묘사를 넘어 서서 무한한 잠재성과 다양한 실재성의 역사로서 전부면적으로 분석함으로서 산노동의 정치적 욕구에 불꽃을 당기게 된다.



2. 아우또노미아, 혁명과 반혁명사이에 서서


1980년초 이탈리아 대중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불확정적인 대규모 해고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심한 우울증과 방향상실에 직면하게 된다. 정치적 패배와 대규모 해고라는 비극은 200여명의 피아뜨노동자를 자살로 몰아넣었으며, 위기는 노동자문화와 문명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더 결정적으로 다가왔다. 대중노동자문화의 구성적 지반은 직업별/직능별위계를 배치하는 기술적 구성과 노동자계급의 불복종의 자율적이고 의식적인 행동방식과 결부된 정치적 구성을 내용으로 하는 계급구성을 재현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노동사회에 대한 기술적 구성의 변형과정은 노동자운동을 압도하려는 자본의 공세적 행동을 의미한다. 오늘날, 탈근대자본주의의 기술적 구성의 변형과정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구성을 압도함으로서 일부 전문직노동자와 시간제노동자의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노동사회에 대한 노동자의 희망을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본론이 제기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특이한 지형에 관철된 일반적 내용을 개괄하자면, 대중노동자의 역사적 출현은 숙련노동자운동을 공격하기 위한 자본의 자동기계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대 당시 자본은 포드주의등의 포스트테일러리즘의 도입을 통해 강력한 숙련노동자조직을 공장으로부터 배제하고 탈숙련노동자들을 채용하였다. 그리고 숙련노동자들은 '전유'의 기쁨을 나누던 정든 일터가 자동기계소리로 가득찬 사막화된 공장으로 변형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휴일 방문객들에게 역사의 산 현장이 되어 버린 공장에 갓 채용된 탈숙련노동자들은 일종의 침묵시위인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야 했다. 우리는 1940∼50년대 대중노동운동의 역사속에서 자본이 산노동의 힘의 역사적인 실재라고 할 수있는 숙련노동자조직을 분쇄하기 위해 기술적 구성의 변형과정을 통해 탈숙련대중노동자를 창출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혁명적 역전을 창출할 집합적이고 대중적인 노동운동의 영토를 마련했다는 점에주목할 수 있겠다. 구성적 실천에 기반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무덤파는 자여 그대가 묻일 때니라.' 이러한 역사를 되집어 볼때, 반혁명시대의 연장인 탈근대자본주의 또한 자본이 강력한 대중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서둘러 폐막시키려는 자본주의 변형과정을 의미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본론이 제기하고 있는 이탈리아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이행과정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은 이탈리아의 자본의 동학과 이에 적대적인 노동운동의 실천적 지평속에서 특이한 정치지형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1. 노동운동의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지난한 조직화는 68~9년 이탈리아 '뜨거운 가을' 총파업과 프랑스68년혁명의 시기에 이르러 지상에 산노동의 잠재력을 실재화할 수 있었다. 대중적인 투쟁은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단숨에 열어제꼈다. 이들의 전진은 국가기계들의 분쇄와 대항권력을 선언하면서 '붉은 시절'들을 창조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프랑스공산당이 대중의 전진을 매도하면서 자신의 지도력이라는 치맛폭으로 혁명의 불꽃을 꺼뜨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양날개전술, 반파쇼 개혁을 위한 '무장투쟁전술/선거참여'라는 '역사적 타협'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의회외적 좌파는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강제되었다. 70년초 라인노동자의 생산통제가 약화되고 대결의 공간은 '공장에서 사회로' 이전되었다. 이 시기 노동자운동이 대안적 관리기획을 일반적으로 거부하고,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여 이를 축소시키려는 운동으로 나아감으로서 좌파운동은 가족앨범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의 쟁점은 대의제적 메커니즘 일반에 대한 거부속에서 '사회적 보장소득'과 '전유', '자율인하'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었으며 자율조직들의 극적인 등장이 있었다. 70년대 중반 노동조합은 기술적 구성의 변형을 통한 자본의 재구조화를 노동운동의 패배와 동일시하여, 공장보존을 위해 노동조건을 거듭 양보하였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제조치들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붉은 여단'이라는 테러리즘적 정치를 구성하였다. 그 시기 '역사적 타협'의 정부는 억압의 그물을 강화함으로서 보편적인 정치투쟁의 상황으로 몰아갔으며,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한 자율조직들에게 게토로 유폐될 것인가 국가권력과 정면대치할 것인가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자율조직은 테러주의의 자기정당화 논리인 "정치투쟁은 무장투쟁이다"라는 식의 획일적 복무구조의 원심력속에 국가에 대항함으로서 오히려 자신의 구성적 잠재력을 미분화시켜 고립되고 말 것인가, 반테러리즘이라는 보편적인 마녀사냥이라는 공격아래 테러/반테러의 상호복수에 기초로 하여 절멸할 것인가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2. 반혁명은 혁명과 동일한 지반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강화라는 다른 대답을 돌출한다. 이탈리아 반혁명은 '비타협적 적대'라는 집단적인 경향을 직업적 전제와 생산요소로 변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본은 정치적 구성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기술적 구성의 변형을 추진하였다. 1979년 7월 피아뜨공장의 별난 노동자들은 스스로 생산시간에 대해 유연화를 주장하며 파업을 수행했는데, 공산당과 노조는 이들의 태도를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이듬해 가을 피아뜨공장주는 61명의 노동자를 테러리즘의 연루혐의로 해고하였는데, 공산당과 노조도 이에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한 것이었다. 이듬해 1980년 피아뜨는 기다렸다는 듯이 3만명의 노동자를 해고계획을 발표했다. 공산당과 노조가 총력을 기우려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84~89년 이탈리아 산업부흥은 노동계급의 재구조화에 성공한 자본이 과잉인구라는 잠재적인 실업집단의 형성과 단기적이고 파편적인 노동에 대한 변형과정의 효과를 영유하는 것이었다. 포스트 프드주의시대속에 노동자계급은 정치적인 재현의 논리 ; 사회당. 공산당 등의 집단적인 복화술을 증오와 주저속에 읽게 되었다. 동시에 이들에게 대의제 정치일반은 불가역적인 위기와 동일한 의미로 독해되고 있다. 정치적 대의를 벗어나는 집단적 실천들인 대중적인 지성과 노동의 권능을 인정하면서 그 요소를 자기화하고 철저히 왜곡하려는 신우익의 등장은 그것이다.


4. 포스트 포드주의에 맞서


맑스는 {요강}에서 구전신화시대의 종말은 문자사용에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기술의 발전이 신화의 영역을 정복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의 과학기술은 인간의 창조적인 시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노동에 전쟁무기로서 기능해 왔다. 붕괴론자들의 생각처럼 기술의 발전과 사용의 합리성의 모순이 대붕괴로 현상되지 않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불가역적인 기술발전이 자본을 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기술적 구성작용이라는 변형의 가장 직접적인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컴퓨터사용은 자본이 장기적으로 추잔하는 인간-기계라는 사이보그전략의 매개가 되고 있다. 컴퓨터는 '시간', '의미', '기억'이라는 근대적 진리의 인식론적 기반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는데, 컴퓨터의 정보순환이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떠나 순수현상학적인 공간에 사물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실천은 부차화되며, 존재자의 잠재적인 해방의 가능성은 하나의 언어게임을 경유하면서 역능과 분리되어 비속화된다. 오로지 자본이 요구하는 사이버공간은 현재의 시간에 사용자가 요구하는 정보를 전달하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할 뿐, 현실의 구성적 실천의 실재적이고, 잠재적인 의미는 철저히 사상(死傷)된다. 이제 인간의 시간은 경험할 수 있는 실재적인 시간이 아니라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동화되고, 동시성의 형태로 나타나므로 '시간은 소멸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전문적인 지식은 정보축척의 의미가 아니라 '사용자의 기능'으로 변형되므로 사유의 특권적 의미로서 지성은 사라지게 함으로서 기존의 학문체계를 공격한다. 자본은 컴퓨터를 통하여 대중적인 지성을 정보로 전화시킴으로서 삶의 영토를 자본의 영토로 종속시키려는 약탈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며, 이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미래근육인 유통조직으로 구성하려 한다. 현재, 이러한 컴퓨터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원동력은 더이상 머무를 수 없는 포드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탈근대자본주의로 나아가려는 - 삶의 영토로까지 자본의 영토로 전화시키려는 - 기술적 변형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일 뿐이다. 먼저 자본의 가치창출이 죽은 노동-시간으로 정량화될 수 있는 노동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점은 노동사회의 훈육적 기초이다. 그러나 자본은 이로부터 발생된 집합적이고 대중적인 노동운동의 강력한 힘은 배제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영토속에서 가치창출을 도모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영토속에서 자본의 가치구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우연적일 수 밖에 없으며, 자본의 불확정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탈근대자본주의하의 자본이 사회적 우연성으로 접속하려는 노동이 가치로 실현가능한 정량화되고 통제된 죽은노동일때 분절결합의 메커니즘은 '전쟁', '공황', '분규'라는 억압적이고 강제적이고 방식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모순적이며 이것은 자본의 영토가 여전히 '노예제'와 '군주제'의 '전쟁기계들의 영토'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의 '탈산업화사회'라는 담론은 컴퓨터를 통해 이러한 우연성을 필연적인 것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장미빛 환상을 유포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한손에는 경쟁의 논리'와 '한손에는 억압의 칼'을 들고 러시안 룰렛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자본이 노동의 영토와 완전한 접속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의 실체는 대중의 반파쇼/반핵/반테러라는 일반적 지성의 수준에서 거부되어 질 수 밖에 것들이다. 이는 탈근대자본주의의 자본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붕괴론의 서술과 정반대의 적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데 비물질적인 노동들은 가치화될 수 있는 임노동 - 죽은 노동에 대한 강제 -과 사회를 우연적으로 접속함으로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실현된다. 기존 정신/육체노동의 구분의 경계를 뛰어넘은 비물질적인 노동과 물질적 노동의 분절결합의 복잡한 양상들에도 불구하고, 특권적 지위에서 벗어난 사회구성원의 '대중적/일반적 지성'은 산노동의 자율성의 공간인 '삶의 형태'속에서 실존하며 물신화된 노동에 대해 적대적이다. 적대의 치열한 공간은 이러한 결합의 오류라는 논리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전개되며 지식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논쟁을 산노동의 정치구성적 실천이라는 지상논쟁으로 끌어내린다.

자본이야말로 생산양식과 주체화양식간의 분절결합을 통해 노동자에게 포괄적인 삶을 양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산노동의 자율성은 물신적 노동의 경제학적 공간외부에 있다. 그리고 자본의 재구조화의 과정은 자본이 통칭 '대중적/일반적 지성'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다가성에 기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산노동의 자기가치생산은 삶을 자본의 재생산공산으로 변형하기를 끊임없이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자율성'의 잠재적 권능은 삶의 시간을 재생산의 시간으로 양도하기를 거부하고 정치적 시간으로 구성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실재적 역능으로 실현된다. 우리는 산노동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은 자본에 적대적인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산노동'만이 이러한 과학기술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사용과 전유의 진정한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이미 네트워크 공간에 유출된 산노동의 창조적 역능이 자본의 유통조직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절대적 민주주의로 향하는 커뮤니티를 발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5. 대탈주인가? 구성권력인가?


탈근대자본주의는 사회를 하나의 공장으로 조직함으로서 직접적인 생산의 임금외의 사회적인 보장임금을 둘러싼 투쟁의 쟁점을 형성했다. 일할 능력이외에 가진 것없는 노동자에게 있어서 사회적 임금은 더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위한 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단축의 슬로건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 대한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단축과 절대적인 사회보장임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68년 프랑스혁명시기, 재생산과정의 미래노동자인 학생에게 임금을 요구하는 강력한 슬로건이 그것의 예이며, 동시기 이탈리아 '뜨거운 가을' 총파업시기에 여성운동가들이 외쳤던 '가사노동에 임금지급을'운동은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사회적 노동자에 대한 논쟁들은 '노동해방'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해야 한다는 네그리의 주장으로부터 지상의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임노동자체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며, 경쟁이라는 노동물신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이러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공간이 자본주의에 실존하는 노동시간에 대당되는 비노동, 자유시간에 실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에 대하여 헤리 클리버의 지적은 자유시간을 정치적 시간으로 구성하였을 때 비로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수 있다고 대답한다. 탈근대자본주의에 임노동자로 자유로운 사회적 노동자의 대탈주의 공간을 사고하는 들뢰조-가따리시안등의 사고에 대해 바르도의 논평은 '도주보다 보다 덜 수동적인 것이 없다'는 냉정한 입장이다. 즉, 유럽프롤레타리아의 신대륙의 대탈주와 동부노동자의 서부로의 대탈출은 반자본주의적인데 식민지 피지배민족을 자본주의로 재구조화함으로서 자본으로부터 탈주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대탈출을 옹호하면서도 '생산적 대탈출'과 '(기존에)구성된 권력의 절멸과정'사이의 괴리를 현대자본주의 일반적 특징으로 사고하고 새롭게 구성될 권력은 그 자신과 인간성이 파괴되기 전에 국가와 대결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네그리는 들뢰조가따리안의 지평; 고도로 조직된 자본주의의 노동물신주의에 탈주하려는 욕구들와 '탈주'를 긍정한다. 그리고 게토로부터 중심으로 탈주하는 사회적 노동자의 구성적 실천, 자본의 냉혹한 충동과 이에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저항과 적대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착취와 억압기계들과 절대적으로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조직되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중의 힘을 통제하려는 거대화되어가는 자본주의라는 전쟁기계들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이 책의 묵시록적인 경고는 탈근대자본주의하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숙명적 대결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동시에 오늘날 자본주의 구획과 경계를 가로지르며 사회적/전지구적 노동자의 영토로 나아가는 '산노동의 자율성'과 노동운동의 구성적 실천이 꼬뮌의 예감으로 가득함을...


6. 결론에 대신하여 : 필사의 도약


나는 [이탈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에 대해 먼저 원문에 대한 직접적인 독해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역자가 비판한 탈근대론자들의 황혼녁의 철학자연한 태도로부터 벗어나 '역사적인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솔직하게 서술하고자 했다. 여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실재적인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평가는 뒤로 미루고, 오히려 글의 배치와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개괄하였다. 오늘날 화폐공황은 산노동의 정치적 시간을 회수하고, 생존을 위해 끝도 갓도 없는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최근 국제노동운동의 새로운 국면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한국의 노동법저지투쟁과 미국노동운동의 신지평을 마련한 UPS파업에서 비롯된다. 탈근대자본주의의 완성이 - 자본의 사회적 제조직화라는 측면에서 - 지체되고 있는 자본은 이제 국제적인 화폐순환을 통한 통제의 가속화와 패권주의를 복원하려고 한다. 국제자본이 이라크와 지역블럭들에 대해 호시탐탐 전쟁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동아시아를 내전의 재현가능성으로 위협하며, 전쟁기계들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는 더이상 자본의 현란한 유혹과 위협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자본의 민첩한 대응은 '산노동의 자율성'이 전사회를 가로질러 지상에 자신의 실체를 도도히 나타내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여명의 철학자, 들뢰즈가 경쟁의 논리에 맞서 존재자들, 연접적 신체들- 주위에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삶과 사랑의 논리를 긍정하며 전쟁기계와 억압기계들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선 이러한 탈주선을 따라 산노동의 잠재적 지평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거부의 거대한 물결을 실재화할 적대를 돌파할 구성적 실천, 진정한 자율성의 영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반문들 : 꼬뮌의 비극적인 패배에도 "꼬뮌만세!"를 외치는 맑스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이 메타철학논쟁 같은 것이었는가? 오히려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비판의 무기도 정치의 무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의식은 아니었는가? 더군다나 무기의 비판이 정치의 무기를 대신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인터네셔널의 강력한 세계정당으로 성장을 동시대에 요구하며, 숨아 멈추기 전까지 고전분투하며 서술한 [자본론]과 미완의 기획들을 통해 구천을 떠도는 맑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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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우또노미아총서 [re] [서평]『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권력 쟁탈 없이 세계를 변혁하라!! 이택진 2003-11-10 1746
1 아우또노미아총서 [서평]『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권력 쟁탈 없이 세계를 변혁하라!! [1] 冬童 2003-11-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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