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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시지프의 신화일기』 - 고통 속의 인간, 고통 너머의 인간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뒤통수를 맞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조리’를 초극하는 시지프의 실존적 삶에 까뮈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석제연은 그 초극에의 의지에서 나타나는 사유의 무거움조차도 전복시키며 신화와 삶의 지평을 함께 재구성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는, 신화의 캐릭터들을 다양하게 넘나들며, 우리의 굳어진 관념들을 동요시키려 하는 듯하다. 신화의 캐릭터들로의 다양한 ‘되기’가 이 에세이들을 수놓고 있기에, 집중을 하더라도 읽는 동안은 꽤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시지프, 아테네, 아담과 이브, 그리고 가니메데 등으로 변신하며 인간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고통’과 ‘그리움’ 등에 대해 말한다.
‘고통’과 ‘그리움’은 제우스라는 “신”인지 “게다짝”(84쪽)인지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원래 하나였던 나의 몸은 제우스의 칼질에 의해 둘로 분할되고, 하나였던 마음은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가지로 분할되고 만다. 아담은 두 동강난 나의 다른 모습이다. 제우스의 무력에 의해 분할된 우리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또 다른 우리이기에 서로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고통’과 ‘그리움’은 이제 인간이 자신의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 이루어야 할 분리의 과정으로부터 수반되는 것이기에,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에게 있어서 이 고통은 분할된 우리에 대한 사랑에의 의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또한 견딜 수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제우스의 무시무시한 힘은 우리에게 고통이라는 것을 준 듯하다. 그놈의 제우스만, 그리고 그의 분할통치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서로를 미친 듯이 그리워해야 하겠는가? 신이 시지프에게 형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시지프는 영원히 바위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서 바위에 밀려 내려오는 시지프의 얼굴에서 까뮈는 운명을 초극한 웃음을 보지 않았던가?
저자 역시도 운명의 이 슬픔만을 보는 것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항상 일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기에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있을 만큼만 아팠어도, 기억할 수 있을 만큼만 아팠어도, 이별은 없었을 것이다. 이별은 기억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아픔만 남겨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탄생은 어기차게 아픈 축복이다. 이별이다.”(117쪽)

고통이 없다면 과연 인간이 있을 수 있었을까? 저자의 말들을 되새기며 아마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 있지만, 항상 그것을 초극하고 또 그 너머로 일어서는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낙관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 속에서 삶을 (재)구성하고 (재)생산하지만, 이 생산의 과정은 너무 많은 것을 또한 잃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요리하고 뜨개질하고, 삶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었던 지혜로운 삶 - 이 삶은 여신 ‘아테네’가 신화의 이면에서 일구어왔던 삶이다(170쪽 참조) -은, 이제 수학의 공리계에, 경제학의 착취논리에 억압되어 버린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일구어져 왔던 사랑의 실천 대신, 이제 우리의 몸에는 “타이레놀”같은 약이, “씨실 날실이 얽힌 전깃줄 같은 기계들”(172쪽)이 침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통 불능의 사회에 정착하게 된다. 삶의 실존적 열망으로 목이 쉬게 불렀던 노래는 어딜 갔는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삶은 항상 이렇게 이미 목이 쉬어 있는데도 말이다. 쉰 목을 달래기 위해 찾아갔던 병원에서 의사가 던졌던 “노래방을 무척 좋아하나봐요”라는 말, 이 말처럼 소통의 극단적 단절을 드러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는, 이제 트로이의 미소년 ‘가니메데’*가 된다. 가니메데는 독수리에 붙잡혀갈 때, 아마 아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무덤과 같은 병원의 의자에 눕혀져서, 그리고 독수리에 납치되어 가며, 우리는 소리조차 낼 수 없게 하는 고통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아픔은 그 스스로의 모순에 직면하여 하늘을 열게 하는 또 다른 힘으로 전화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오히려, 인간의 실존적 지향성은 그 슬픔의 사각(死角)에서 더욱 강렬하게 일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무덤 같은 병원의 의자에 누워서 “노래 가득한 하늘 열려 있어 날아가고 싶었다”(211쪽)라고 말한다. 노래는 어둠과 침묵에 저항하며, 또한 그것들을 열린 하늘의 공간으로 밀어젖히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다르는 그 열린 하늘은 어떤 유토피아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과 고통의 모순이 격전하며 해체되는 곳, 즉 “기침하는 목소리” 바로 “그 속”이기 때문이다(같은 곳). 우리가 쉰 목소리로도 여전히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목소리로도 계속 누군가를 미친 듯이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살아 꿈틀대는 저 실존적 지향성 때문일 것이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미소년. 인간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여러 신들이 제우스의 시동(侍童)으로 삼기 위하여 하늘로 채갔다고도 하고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하여 납치해 갔다고도 한다.(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신들의 출석부」를 참조)


태경

2003.11.21 23:02:43
*.245.23.167

책에 대해 '평'을 해야 할 건데, 간단한 내용에 제 생각만 서술하는 데에 만족했습니다. '평'을 하려고 하면, 내용이 너무 딱딱해질 것 같고, 그런 게 싫어서요. 지적을 부탁합니다. 파일도 첨부합니다.

조정환

2003.11.23 01:33:11
*.73.90.189

우선 글이 재미있고 저자의 적극적 측면을 잘 포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정체성, 소외, 아픔, 분열이 무기이자 삶의 방법인 시대....

조정환

2003.11.23 01:33:57
*.73.90.189

파편화로서의 분열이 아니라 스키조라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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