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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제국> 서평 - 고병권

아우또노미아총서 조회 수 2633 추천 수 0 2003.11.25 12:40:30
한국에서 지구 제국을 이야기한다는 것  


한국에서 지구 제국을 이야기한다는 것  

진보평론  제12호  
고병권(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연구원)  


* 조정환, ꡔ지구제국ꡕ, 갈무리, 2002

1. 저자의 로두스

조정환의 ꡔ지구제국ꡕ은 작년에 번역 출간된 네그리(Negri)와 하트(Hardt)의 ꡔ제국ꡕ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제목만큼이나 적극적으로 ꡔ제국ꡕ의 문제의식을 한국 현실 속에서 승인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상의 국적을 문제삼는 사람들의 냉소처럼 ‘유행을 쫓아 서양 이론으로 한국 현실을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80년대 맑스주의를 독일제 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ꡔ제국ꡕ의 이론적 전거가 되는 자율주의 역시 이탈리아제 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제국은 충분히 한국적이다. “제국은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맸지만 결국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발견한 ‘현장’, 로두스 섬이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제국’에 이르게 된 자신의 오랜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1990년 ꡔ노동해방문학ꡕ을 펴낸 이후 긴 수배기간 동안 “걷고 묻는” 쉼 없는 반복의 과정에서, “사회주의 몰락과 걸프전, LA 봉기, 사빠띠스타 운동, 그리고 국내에서 일어난 생태운동, 정보통신운동, 주민운동, 동성애자운동, 여성운동 등의 발전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당건설 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문제들과 흡사한 상황을 68 혁명 속에서 접하면서” 다중(multitude)의 변화된 감성과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자율주의로 선회’했다. 우선 ‘민주집중제’를 골자로 하는 전위주의 모델을 기각하고, 다중의 욕망과 자치 능력에 기초한 코뮤니즘 모델을 받아들인다. 또 산업구조나 노동형태, 사회운동 등을 볼 때, 서구와 마찬가지로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도 새로운 계급구성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급구성은 지구적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재편 과정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그에게 지구화는 미국 못지 않게 한국의 문제이다.

2. 현실적 ‘경향’으로서의 제국

지구화로 표현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ꡔ제국ꡕ의 저자들인 네그리와 하트에 동의한다. 그들은 이 새로운 질서를 ‘제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에 따르면 세계의 제국화 경향은 68혁명 이후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됐으며 외형상으로는 1989년 사회주의 멸망 이후 본격화되었다. 그들은 세계 질서가 국민국가들 사이의 헤게모니보다는 초국가적인 계약이나 협정, 조약, 그리고 지구적 수준에서 요구되는 규범들에 의해 유지된다고 본다.
언뜻 보면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세계 상황과 맞지 않는 듯 하다. 고전적인 제국주의론이나 종속이론이 더 설득력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저자는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을 착취를 위해 ‘외부 세계’를 침탈하고 병합하는 고전적 제국주의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걸프만이나 소말리아, 그리고 코소보에 들어갈 때 미국은 항상 국제연합군을 대동하며, 그 명분을 정의와 평화,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서 찾고 있다(윤리전쟁!). 미국의 군대는 식민지를 찾아 떠나는 군대라기보다는 세계 치안을 유지하려 하는 경찰을 닮았으며(“전쟁과 치안이 상호접근하며 통합된다”), 전쟁은 ‘제국주의간의 전쟁’보다는 ‘지구 수준의 내전’에 가깝다.
주권이 국민국가적 형태에서 제국적 형태로 이행한 것은 자본 축적양식의 변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1917년 이전 자본주의는 외부를 착취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국주의는 외부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국가 행동이었고, 생산도 외면적인 강제와 노동시간의 확대를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17년 이후 급진화된 민족해방운동과 노동운동의 영향 때문에 자본은 외면적이기보다는 내포적인 축적을 택한다. 생산기술의 발전과 과학적 훈육 시스템(테일러주의), 생산-소비의 연결 및 노동과의 협약(포드주의), 경제 계획에 깊숙이 관여하는 국가(케인즈주의) 등이 내포적 축적의 지형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은 68혁명으로 다시 한 번 파열된다. 산업노동자들의 증폭된 힘으로 복지 재정에 위기가 왔을 뿐 아니라 자본-노동의 협약 바깥에 위치했던 실업자, 학생, 여성, 난민, 동성애자 등의 항거가 시작된 것이다.
자본은 이러한 항거에 대해 자본의 금융화(생산 현장에서 도주해 국경을 넘나들며 이윤을 얻고자 하는 초국적 금융자본), 소유와 명령의 유연화(노동자를 직접 훈육하기보다 시장에 내맡김, 자주관리나 팀제, 우리 사주 등), 생산의 정보화(생산과정을 점차 과학기술의 운동으로 만들어 노동력 자체에 대한 수요를 줄임) 등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노동형태도 달라졌다. 노동은 점차 공장의 벽을 넘어 ‘사회적 노동’으로 전화되고, 비물질화(지성화 및 서비스화) 되었다. 과거의 노동은 육체와 기계, 노동대상의 상호교류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 통합되어 공장벽을 넘는 사회적 착취조차 가능케 되었다(가령 야후는 인류의 공동 지적 성과물들을 단순한 검색툴을 이용해서 제 것인 양 서비스한다). 점차 노동자의 지식과 감성에 대한 착취가 노동시간에 대한 착취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설명이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을 법하다. 아주 ‘일부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아직은 현실과 거리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점에서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경향’과 ‘구성’이라는 말에 주목한다(네그리는 ꡔ맑스를 넘어선 맑스ꡕ에서 이것들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맑스의 주요 방법들로 제시한 바 있다.). ‘경향’이란 “가장 발전한 사회 상황 속에서”, 다시 말해 “미래의 기획을 위해 미래적 관점에서 현재를 독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제국은 ‘비현실적인’ 공상이 아니라 미래의 관점에서 본 ‘현실적 경향’인 셈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새로운 적대, 새로운 “분리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개입하는 것이 ‘구성’이다. 따라서 저자에게는 1917, 1968이라는 숫자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변화를 추동해 온 다중의 자율성을 확인하면서, 바로 지금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새로운 주체성은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3. 한국에서의 제국적 경향

결국 논란이 벌어질 ‘로두스’는 한국일 터인데, 저자는 한국에서도 지구 제국의 경향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80년대까지 한국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외연적 축적 체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대중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80년대부터 축적과 성장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산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외연적 축적은 기계화와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한 내포적 축적으로의 전환된다. 그리고 87년 투쟁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산업에 대한 응용이 가속화되고 초현대적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한다. 90년대에는 “산업의 첨단화와 정보화, 노동의 지식화와 비물질화 등이 나타났고” 결국 IMF를 거치면서 제국으로의 재편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수용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장애는 실질적으로 해제되었고, 대중노동자의 정치적 구성을 와해시키는 유연화 정책과 지식 정보 위주의 노동력 양성을 위한 각종 프로젝트(두뇌21, 신지식인 이데올로기, 교육에 시장 논리 도입 등)가 추진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 자체가 제국이 “지구적 현실이자 한국적 현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제국적 지형으로서의 한국’이라는 인식 위에서 기존의 사회구성체론들을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구성체론들 대부분은 1990년대 이후의 지구화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종속론적 관점과 국민국가적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자연스럽게 국가중심적인 변혁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국민국가를 통해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들 역시 지구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이들은 국가의 포획장치로서의 성격―당이 그것을 대신해도 마찬가지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는 학생운동이나 통일운동 역시 제국적 지형 위에서 다시 고민되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계급 구성의 시각에서 그는 ‘학생’을 새로운 능력을 갖춘 노동력으로 자신을 생산하는 ‘사회적 노동자’로, 그리고 ‘민족’을 신자유주의 흐름 안에서 한반도 전체를 확대재생산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선 ‘민중투쟁의 총체적 코뮨’으로 규정한다.

4. 걸어가며 묻고 생각하기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제국의 질서에 공감하는 편이다. 또한 “지금까지 ‘제국주의와 종속’으로 세계 사회를 해석해온 좌파의 민족해방적, 국가사회주의적 정치학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다”며 “이 조건을 한국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전환하고자”하는 저자의 ‘야심’에도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아직 이 책에 대해 묻고 싶은 것,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선 지구 제국을 승인한다 하더라도 제국의 마디들로서 각 국민국가들 사이의 동학이 설명되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제국 안에서 한국과 미국을 아무런 차이 없이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들 각각의 역할과 함께 서로의 관계도 해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이전 이론들의 설명을 다른 수준(가령 제국 안에서의 기능이나 역할 수준)에서 반복할 우려는 없을까? 둘째, 한국에서의 자본 축적 방식의 변화와 계급의 재구성 과정을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떤 점에서는 서구적 단계를 그대로 재확인하려 한다는 인상도 든다. 80년대 중반까지 외연적 축적 체제였다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내포적 축적의 단계를 지나 새로운 제국의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을 한국노동계급의 투쟁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느낌이다. 셋째, 통일 문제를 제국적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해도 현재 구도가 자본의 전략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끝으로 ‘외부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싶다. 제국이 ‘지구적 규모’로, ‘무의식적 수준’까지 관철된다는 점에서 그 외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수긍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라진 외부는 ‘외재하는 외부’, ‘내부와 변증법적 관계를 갖는 외부’가 아닐까? 왜냐하면 대항제국을 건설하는 다중의 능력 역시 자본의 포획 이전에, 그리고 포획을 넘어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외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적 생산자들의 협력은 자본의 조직 역량과 책략의 외부에 있다.” 247쪽). 이것을 ‘내재하는 외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외부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척도 이전에 존재하는 ‘척도 자체의 외부’로서 내부와 변증법적 관계를 갖지 않는 순수 차이의 영역이다. 제국의 위기를 ‘부패’라는 소극적 느낌을 주는 개념―물론 ꡔ제국ꡕ의 저자들은 그 의미를 새로운 생성으로 규정하고 있다―으로 설명하는 것은 ‘외부가 없다’는 주장 때문인 듯 한데, 새로운 외부 개념을 통해 다중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을 개념화할 수는 없을까?
어떻든 저자의 문제제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한 지구 제국이나 새로운 계급구성이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책이 우리 시대 진보를 고민하는 그 어떤 책보다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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