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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역설과 다중(Multitude)의 자율적 삶  

서평 : 『지구제국』·『21세기 스파르타쿠스』(조정환, 도서출판 갈무리, 2002)
제목 : 현대의 역설과 다중(Multitude)의 자율적 삶

현대 사회의 역설과 대안 모색

인류 전체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의 짐들이 좀체 떨쳐지지 않은 채 우리의 어깨를 더욱 힘겹게 짓누르고 있다. 21세기를 갓 진입한 현재에도,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통한 첨단화와 더불어 빈곤과 궁핍함은 가일층 확산되고 있고, 모두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그 한가운데에서 전쟁의 위기감은 더욱 빠르게 고조되고 있으며,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 한 켠에서 감시와 억압은 교묘히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이 역설들에 진지하게 응답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삶을 냉철하게 모색하려는 노력을 조정환씨의 기획 ‘걸어가며 묻기’ 시리즈(총 5권을 발간할 예정)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기획의 1,2부에 해당하는 『지구제국』과 『21세기 스파르타쿠스』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사회의 상태를 깊이있게 진단하고, 그것에 맞서는 지구 곳곳의 저항적 움직임들을 탐색하는데 주된 초점을 맞춘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속적인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극복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재의 상황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다양한 반세계화 운동들과의 접속지점을 의미있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창의적이면서도 저항적인 지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의’의 옷을 입은 제국적 내전

그는 자신의 저술에 핵심 기반을 제공했던 『제국Empire』(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공저)을 인용하면서, 현대의 자본주의를 “생산방식과 주권형태 모두에서 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른 커다란 변형을 겪고 있는바 그것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으로 설정한다. 이 때 제국은 “영토적 권력중심이나 고정된 국경에 좌우되지 않으면서, 지구 전체를 자신의 확장하는 경계 속으로 통합”하며, 확장에 필요한 외부를 가상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기반을 유지하는 “새로운 지배질서”이다. ‘가상적 외부의 창출’은 적을 설정하고 그것과의 적대를 확산시킴으로써 권력기반을 마련하는 전쟁으로 가시화되는데, 그런 점에서 냉전 이후의 “전쟁은 ‘이미 있는’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내는 전쟁”이며, “새로운 ‘정의’를 통해 특정 개인들이나 집단들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하여 파편화시키며 외부화”하는 전쟁이다. 따라서 그에게 91년의 걸프전, 2001년 탈레반과의 전쟁, 최근 이라크에 대한 전쟁 선포(그리고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 등은 “금융폭탄을 앞장세운 경제적 지구화의 군사적 뒷모습”인데, 이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더 위협적이며, 우리 인간 삶을 “지옥으로 변형”시키는 조작된 폭력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중에 기생하는 새로운 착취 형태로서의 제국

제국의 형성과정과 특징에 대한 그의 묘사는 치밀하고 파격적인 언어로 가득차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제국은 68혁명으로 표출된 위기를 자본이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달리 말해, “전후(前後) 케인즈주의 하에서 배제당하던 실업자, 학생, 여성, 빈민, 이민, 난민, 흑인 등 노동계급의 비보장층을 중심으로 자주관리와 노동거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연대가 제기되면서 케인즈주의 및 사민주의적 국가 통치는 결정적 위기”를 맞게 되었고, “자본 재구조화 정책(통화주의,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기초한 자본의 반혁명적 모색의 산물”이 바로 이 제국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동질적이었던 노동계급을 “축적에 연결되는 존재로, 혼성적이고 복수적인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 다중(Multitude)으로 전환”시켜, 그들의 “유연성을 증폭시킨 상태에서 그 힘을 흡혈하는 기계장치”로 작동한다. 인간들의 상호협동적 관계를 자본 관계로 환원하는 이러한 제국적 질서는 “다중의 삶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통해, 그리고 그들간의 소통행위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자본 중심적 변형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의 소통이 자본을 매개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 다중의 삶이 자율적으로 구축되지 못하게 저지하는 것이 착취의 존재조건”인 것이다.

자본에 포섭된 전통적 좌파와 그것을 넘어서기

이러한 착취 상황이 인간의 삶을 점점 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다면, 새로운 대안은 그만큼 더 절박해진다. 그러나 조정환씨가 보기에 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배에 대한 저항과 대안 창출을 표상으로 갖는 오늘날의 좌파들이 자본에 포섭되었으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한층 더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자본이 국가 권력과 완전하게 연동되는 상황 속에서, 집권(執權)을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좌파는 “신자유주의에 영합하면서 그 속에서 복지 구조를 유지하려는 타협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른바 제 3의 길은 이러한 자본에 포섭된 좌파를 정확히 반영한다. 그렇다면, 그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가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은 국가를 매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자율적 주체성을 현실화시키는 “다중들의 코뮨주의적 운동”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연합의 노선”이다. 즉 제국적 질서에 편입되기를 부단히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가치를 자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것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역설을 그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치유하는 방식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복수적이고 구성적인 삶”이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준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그에게 가장 인상깊었던(그리고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사건은, 1994년 벽두에 피어오른 “멕시코 치아빠스 원주민들의 봉기”였다.
스스로를 사빠띠스따들이라고 부르는 멕시코의 이 원주민들은 “전통적 좌파와는 달리 국가권력 장악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자치를 주장했고 그것을 달성할 정치적 조건으로 민주주의, 정의, 자유를 제기”했는데, 그는 이들이 제기하는 새로움들을, 즉 “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시민사회’를 의미하는 민족(Nation), ‘분리주의를 거부하는 자치’에 대한 생각을 비롯하여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거부를 함축하는 네트워크적 조직론, 총보다 말을 더 중시하는 전술관, 국가 권력 장악을 거부하면서 삶의 운영을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공동체적 활력에 맡기려는 정치관, 리얼리즘과 버츄얼리즘이 혼재된 언어 구사” 등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촉발될 상상력의 구심점을 마련해준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권력 배치와 끊임없는 되물음

그렇다면 전지구적 망을 연결하는 하나의 국가인 한국 사회에 대해 그는 어떻게 보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은 2003년이 국민들의 폭발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새대통령 노무현의 당선으로 희망에 차있으며, 이제 6월 항쟁의 주역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무현의 당선으로 이제 ‘국민’은 ‘통치의 대상’에서 점차 ‘권력 구성의 주체’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군부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항거였던 6월 항쟁의 파급력이 ‘청와대를 접수’해서 새로운 권력 기반으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노사정을 통한 국민적 합의”로 “보장 노동자들과 점차 이들로부터 독립적으로 되고 있는 비보장노동자들의 분열을 지배의 핵심적 무기로 활용”했듯, ‘참여 민주주의’로서의 ‘개혁의 정치’가 항상 희망만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항하던 민주주의적 투쟁의 힘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적 재편 프로그램 내에 재배치, 재활용”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글이 2002년 초에 출판되어서 새정부를 직접 겨냥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글은 ‘권위주의 척결’ 속에서 정당화되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이 “지금 분열되어 있는 다중”들(보장노동자와 비보장노동자)의 연합 속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따라 진정 새로운 사회를 가능케 할 “다중의 새로운 연합”은 “다중의 보장층이 사용자 혹은 정부와의 합의를 추구하는 대신 다중의 비보장층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 전체에 대한 독립적 운영 능력을 구축하는 방향”에서 달성될 것이며, “다중이 조직화와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이성과 덕성에서 자신들의 자율적 활력을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하게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노무현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제시되는 그의 이러한 희망이 올 한해 그리고 21세기 전체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며, 또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보다 근본적으로 열망하는 다중의 함성 속에서 함께 울려퍼짐으로써, 즉 공명(共鳴)함으로써 끊임없이 연대의 활로를 열어젖힐 것으로 기대한다.

각주 : 복잡함과 낯설음

이러한 그의 글을 읽게 될 독자가 가장 먼저 접하는 문제는 그가 구사하는 개념이 너무 난해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글을 읽기가 너무 어려워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이 마주하는 난해함은 개념의 복잡함에서 기인한다. 실제로도 복잡하게 의도된 것인 ‘제국’, ‘다중’, ‘형식적 포섭’, ‘실질적 포섭’, ‘자본주의적 주권’, ‘계급 재구성’, ‘코뮨주의’ 등. 손쉬운 개념의 사용이, 그렇지 않았다면 통달하기 힘들고 의미조차 정확하지 못한 상투적인 언어로 연결되는 반면, 그가 구사하는 개념의 복잡함은 대상 자체가 갖는 복잡성에 기인하며 그만큼 집중력과 냉철함을 요구한다.
난해함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문제는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낯설음이다. 일반적으로 낯선 것은 익숙한 것에 비해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이 모국어보다 훨씬 힘든 것처럼 말이다. 이는 경험의 반복, 관계의 반복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외국인에게 우리말로 쓰라고 타박하기보다 그들이 쓴 글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들고 오랜 시간을 바쳐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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