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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정치 | 윤인로 지음 | 갈무리 (2017)


기사 전문 보기 : http://jabo.co.kr/sub_read.html?uid=36532


Theos(신) Logos(학)은 비참하며 위대하다. 비참함은 결코 신은 학으로 육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위대하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것이다. 애초 불가능했고 육화되지 않는 신학이라면 모든 신학들의 내용은 부차적이다. 우선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비참함과 위대함, 그 양 지평의 정감(affection)이다.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 모든 신학은 서식한다.

『신정-정치』는 신학책이다. Theos(신)와 정치(Cracy)라는 Logos(학)를 대상으로 삼는 한 이미 신학책이다. 비록 그것을 넘어, 즉 축적의 법과 국법의 이위일체 너머를 현현하려 하지만 신의 그림자는 반대 쪽에도 비친다. 그가 인용한 레비나스의 ‘신성한 것’과 ‘성스러운 것’의 차이는 그 격렬한 적대적 관계(441)만큼이나 서로가 신적이다. 이 책 역시도 그 내용은 이차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어떤 비참함과 위대함을 가지고 그 사이를 종횡무진 횡단하는가이다. 만연체 문장들 안에 여러 개의 쉼표들을 심고 반복해서 거듭 반복해서 말하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그 무엇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모든 게발트들 사이에서 그의 게발트는 내용으로가 아니라 먼저 의지인 것이다. 의지, 그것은 그의 신앙이다. 그의 의지는 어떤 구원을 향한 간절한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구원론에 다름 아니다.

“12월 12일 눈 오는 밤 쌍용차 이창근, 김정욱 두 노동자가 선택했던 곳은 평택공장 70미터 높이의 굴뚝이었다.”(184), “‘내가 죽었는데 아빠는 그렇게 밖에 못해?’라는 딸의 목소리(162)”, “‘세월호’라는 현장, 왜 그들은 여기에 없는가?”(463),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떤 상황에서 퍼진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오늘 우리는 또 힘겨운 결단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 상황은 말 그대로의 폭력적 상황이다. 우리의 희망 없음 거기서 구원은 요청되는 것이다.

“오직 희망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희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526) 이 희망의 내용이 구원이리라. 이 구원은 우리에게 어떤 힘으로 나타난다.

1) 절단하는 힘

“축적의 일반공식을 절단하는 힘으로(527)” 구원은 먼저 경험된다. “절멸만이 구원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489)” 여기서 발생하는 혼돈은 “절멸과 구원의 동시성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다.”(489) 이 힘이 단절하는 곳은 벤야민의 신화적 폭력이라 명명했던 지점이다. 그 지점이란 “법정립적이고 정립되는 그 법은 유혈적”인 곳이다. 여기서 이 폭력은 “그 피 흘림이 법의 안과 밖을 ― 부와 빈곤, 국민과 비국민, 인간과 짐승, 사외와 자연, 줄여 말해 노모스와 아노모스를 ― 분할하는 경계의 재생산에서 기인하는 것인 한, 신화적 폭력은 합법적인 부와 국민과 인간과 사호를 언제든 어디서든 그것들의 바깥으로, 빈곤으로, 비국민으로, 짐승으로, 자연으로 추방시킬 위협 앞에 내놓이게 한다.”(574)

‘카테콘 Katechon’ 이란 슈미트의 수사가 등장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이다. 카테콘은 그리스어로 ‘제지하는 자’라는 의미인데, 슈미트는 <대지의 노모스>에서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카테콘’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기대됐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악의 힘이 세계를 뒤덮지 않도록 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카테콘을 벤야민과 관련해서 재조명한다. “카테콘은 벤야민이 말하는 법정립적/법유지적 폭력, 유령적 수치의 권력·권리근원이다.... 신성과 일체화된 힘으로, 그러니까 자본-교의 신-G'이라는 아노모스적 힘과 나이가 같고 한 몸이 된 힘으로 스스로를 정립하고 유지한다.”(551). 따라서 절단하는 힘은 신화적 폭력-카테콘의 억지를 비판하는 구원의 게발트이다.

2) 임재하는 힘

마가 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일성을 이렇게 소개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당시 식민지 유대인들은 로마 권력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율법학자들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였다. 예수는 바로 유대 백성에게 지금-여기에 도래하는 신적 질서를 선포했다. 희망없는 이들에게 선포된 하나님 나라는 벤야민에게는 신화적 폭력 질서와의 단절과 동시적이다. “...신화적 폭력이 위협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내리치는 폭력이고, 신화적 폭력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온다.”(574) 그 신적 폭력은 죄/빚의 대지에, 세월호와 고공 위의 노동자들, 세계의 99%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임재하고 결속한다.

레비나스에게 신이란 다음과 같다. “신이 의미하는 것은 재현 불가능함, 무-시작, 아나키다. 대상화로 환원할 수 없는, 기억할 수 없는 과거다. ... 3자성인 신은 무-한이며 구조의 바깥에 있다”(442) 바로 임재란 존재-론의 구도 안으로 환수되지 않는. 제3자가 그 구도의 바깥에서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 제3자가 누구일까? 그들은 레비나스에게는 신인 동시에 배제된 자들이며, 신성의 기억으로는 사유할 수 없는 우리 이웃이다.

3) 에클레시아

본회퍼는 옥중서신에서 예수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명명했다. 이때 타자는 레비나스의 이웃에 다름 아니다. 본회퍼의 교회는 이들 타자와 더불어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곳이다. “이웃 혹은 타인의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의 에클레시아, ... 종교 없이, 비종교적으로 세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신의 말을 대신하는 이들의 현장,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혀로, 진정한 주-격으로 불러일으켜지는 윤리적 게발트의 현장, 그 ‘현장’이 에클레시아이다.”(462) 이 에클레시아는 지금-여기 우리의 삶의 현장에 신의 목소리 즉 배제된 타인, 고통받는 3인칭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그 목소리는 구원을 바라는 이들이 기도의 응답이며 우리 안에 임재한 하나님 나라이다.

바틸브의 저 유명한 상용구 “그러지 않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어떻게 이 평범한 문장이 우리에게까지 살아 있을까? “마침내 변호사 사업과 관련된 필요가 다른 모든 사정 위에 군림했다.” (343) 바로 이 상황 때문이다. 이 상황은 우리가 절감하고 있는 매일의 사정이다. 이 사정은 우리의 사정이 아니라, 바틸브에게는 그의 사정이 아니라, 변호사의 사정이었고,, 그 너머 성부-성자의 자기 증식(G-W-G')사회의 사정이다. 그의 상욕구는 이 사정을 절단하고 새로운 바틸브로 임재하며 우리와 수많은 바틸브를 연결시킨다. “ ...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라는 그리스도의 기도로 우리에게 회귀하고 있다.

이 책이 아쉬운 것을 두 가지로 지적하고 싶다. 먼저 변증법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책 대미를 장식하는 ‘다른 서문’의 후반부가 대표적이다. 신화적 폭력/ 신적 폭력 등으로 대표되는 대립하는 두 성질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헤겔을 뒤집어놓았다는 대학시절의 맑시즘을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오해일까?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에서 니체의 “『비극의 기원』에서 ... 위험스럽게도 헤겔주의 냄새가 풍긴다”고 지적하며 이 모순을 디오니소스에 지배되는 동맹, 즉 비극의 기초로서 디오니소스와 이 비극을 드라마로 발전시키는 아폴론의 세계로 재해석한다. 신화적 폭력/신적 폭력에서도 이 들뢰즈 주장의 어떤 유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램분자적인 세계로서 신화적 폭력(존재-신론의 드라마)은 죄를 부과한다. 그 죄의 극적 양상은 우리를 그 폭력아래 피 흘리게 한다.

신적 폭력은 바로 이 죄의 “경계에 대한 철폐이고 흐르는 피의 해결에 대한 피의 지혈”(574)이다. 경계와 그것의 파괴, 유혈과 지혈은 현실에서의 모순적인 대립이 아니라. 대립은 잠재된 것으로서의 신적인 것과 현실에서의 신화적 폭력에 있다. 생성한다는 것은 현실의 신화적 폭력에 신적 폭력의 개입이다. 우리는 그것을 마주침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 개입을 통해 신화적 폭력은 무력화되고 경계를 잃어버린다. 우린 그때야 그 폭력의 상흔을 확인하고 지혈하고 치료받을 수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신학적 성격이 낳는 부작용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순수 폭력, 신적 소망, 성령 등으로 표현되는 신적 폭력은 어떤 우려를 낳는다. 그것은 비록 아르케와 무-아르케의 구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무-아르케에게서 조차 형이상학적이고 불변하는 이데아적 원천을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때로는 생명으로 소망이나 바울의 주의 입김, 성령(567) 등으로 표현되는데 그것들은 신화적 폭력에 의해 ‘부정’ 당하거나 왜곡된 우리 삶의 기원처럼 비쳐진다. 염려되는 것은 우리 삶이 기원에 비추어 이해되고 또 스스로 생성하며 긍정하지 못하고, 부정의 그늘 아래서만 조명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긍정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주체는 기원도 없고 목적도 없다.

Gewalt! 문맥상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권력으로 다가온다. 절단은 폭력이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임재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이 개념은 책 전체의 모든 정감들에 내재된 어떤 힘 같다. 이 책의 독특한 만연체의 문장과 저자의 선명한 단어들은 그 힘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체온이리라. 그래서 비참함과 위대함을 넘나드는 신정-정치의 비판서는 ‘지금 여기서’ 우리를 달아오르게 한다.



2017년 5월 18일

대자보

이정섭(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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