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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로지스틱스

데보라 코웬의 『로지스틱스』 (갈무리, 2017)

 

 

문유심 (방송PD/ 푸드TV 방송팀장)

 

 

* 이 서평은 <울산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usjournal.kr/News/88229

 

이 책을 접하고 ‘로지스틱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본래 출발은 ‘병참(兵站)’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는데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업의 유통 합리화 수단으로 채택되어 생산과 보관, 판매에 이르기까지 물적유통의 전 과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종합적 시스템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군대 경험도 없고 물류회사에 다닌 적도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과 죽음의 삶’이라는 책의 부제는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실은 물류시스템의 발달이 전쟁과 군사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일전에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 데이비드 하비의 비판적 공간이론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로지스틱스>에서도 몇차례 언급되는 ‘시공간의 압착’이라는 개념을 그때 처음 접했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순환 속도를 높이는 기술과 시스템의 발달이 시공간의 압착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당시 논문을 쓰기 위해 한참 공간 이론을 공부할 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이후 한참 동안 멍한 상태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논문을 쓰던 손도 잠시 놓았던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해상 재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해경의 대처 매뉴얼이 있긴 했는지, 배가 가라앉은 이유는 무엇이고 구조가 제대로 안된 이유는 무엇인지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다.  

<로지스틱스>의 옮긴이 후기에서도 세월호가 언급되어 그때의 일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 해경이, 또는 국가가 보호하고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숫자를 근간으로 하는 합리성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명은 ‘보상금’이라는 숫자로 계산되어 나왔다.

 

얼마 전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 내용의 일부를 본 적이 있다. 구조 활동 현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때 구조하러 온 해경들의 말과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경은 지옥에서 간신히 벗어나서 구조의 손길을 구하는 아이에게 끌어올리기 너무 무겁다고 욕을 하고, 구조선에서 떨어질까 봐 무섭다는 아이에게 욕을 하면서 밧줄을 놓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당시 해경은 조난 대처 시스템 속에서 이 아이들을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로지스틱스>에서 ‘공급 사슬 보안’이 자주 언급된다. 그중 아덴만 특별구역의 해상 유통에 대한 보안의 내용이 다뤄지고 있는데 이곳에는 소위 ‘소말리아 해적’과 이들로부터의 보안을 담당하는 ‘군사’가 있다. 이들을 다루는 4장의 제목이 ‘해적 행위의 지경학’이다. 해적과 군사의 행위,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정치가 아닌 경제적인 시각에서 해석한다는 것이다.

 

소말리아의 해적은 이미 악명이 높으며 해적에 의한 나포 사건은 수시로 전 세계에 기사화되고 영화로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져 보이는 것은 소말리아의 해적이 ‘시스템’의 순환을 교란시키면서도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악’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의 배후에는 유럽의 범죄조직이 있거나 소말리아의 내전 상황이 있다. 제국주의, 자본주의에서 소말리아 해적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은 제거된다. 

몇 해 전 한국의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에서 납치된 적이 있었다. 이때 한국의 해군특수부대가 일명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인질들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그 활약상을 인정받아 올해 초 또다시 ‘선박 보호’ 및 ‘군사외교’의 임무를 수행하러 아덴만 해역으로 출병했다.

 

<로지스틱스>에서는 해적 행위를 통치하려는 시도가 ‘오늘날 탈근대국가적 질서를 조형하는 데 있어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것은 ‘로지스틱스 공간을 놓고 벌어지는 관국가적 전쟁이자 “P3”기업의 제국적 전쟁’이라고 한다. 저자의 시각에서 볼 때 아덴만 여명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 해군 특수부대 대원들은 로지스틱스 공급사슬 보안을 위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고 지금도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지스틱스>에서 저자가 현대의 자본주의 순환구조를 분석할 때 <자본론>에서의 ‘상품’을 ‘컨테이너’로 바꾸어 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전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 화물연대의 파업이 되면서 순환구조의 약한 고리를 끊을 수 있는(또는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물류 노동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내용에서, 저자는 이동성의 시대에 대안적 미래, 대안적 경제의 단초를 여기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성을 모티프로 현대 사회를 해석하는 틀을 제시하는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로지스틱스> 역시 십여년 간 모아온 현장 자료들과 저자의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또 하나 중요하게 읽혀지는 것으로, 저자는 현실에 대한 이론적 해석을 넘어서 ‘교란’이라는 실천적 대안을 던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로지스틱스>에서 지리학, 철학, 정치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게 지적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로지스틱스>는 현대 자본주의 순환의 구조에서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보이지 않게 도사리고 있는 폭력성을 ‘물류’를 통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폭력을 은폐하고 있는 (또는 그 자체가 폭력적인) 로지스틱스의 ‘표준’에 대항해서 ‘퀴어하기’를 제안한다. <로지스틱스>는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던져주는 문제의식과 실천적 대안의 아이디어들을 숙고하며 토론할 만한 내용들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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