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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로서의 생명』을 읽고


잉여로서의 생명 Life As Surplus | 멜린다 쿠퍼 지음, 안성우 옮김 | 갈무리 (2016)


이수영 (미술작가)


서평 전문 보기 : http://jabo.co.kr/sub_read.html?uid=36375&section=sc4&section2=




쿠퍼(Melinda Cooper)는 오늘날의 생명기술이 신자유주의의 자본 축적에 부속 되어있다고 말한다. 생화학적 지구 한계를 돌파하는 무한히 창발적인 생명과 석유 화학적 산업의 한계를 돌파하는 무한히 창발적인 투자 자본의 자기 증식이 만난다는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생명기술은 공생진화론, 가이아 이론, 소산구조론 등의 혁신적인 사유에 기대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사유들이 신자유주의의 방식이라니 충격적이다.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생명개체들이 바깥과의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수직적으로 그 고유한 유전정보를 전달하여 선형적이고 안정적인 시간을 구성한다는 전통적인 생물 화용론에 비해 공진화론 등은 분명 충격적이고 매력적인 이론이다. 이런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유들이 금융자본의 축적 방식과 궤를 같이 해 오고 있다는 쿠퍼의 분석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인민의 노동으로 이룬 생산양식을 전유해 온 것이 자본주의 자체의 생리이니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1. 이 책은 눈앞이 훤해지는 신선하고 명징한 분석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얘기해 보자면, 재난에 대한 분석이 강렬했다. 린 마굴리스의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산소대재앙 부분이었다. 푸른 지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산소가 20억 년 전에는 광합성 미생물에 의해 생겨난 유독한 기체로서 전 세계적인 환경오염 대재난의 원흉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들은 이 새롭고 독한 환경에 적응하여 광합성만이 아니라 호흡도 할 수 있는 새로운 미생물로 자기 변신을 이루었다. 이렇게 지구는 생물의 창조적 자가보전적 과정에 의해 진화를 계속했다. 진화는 적응이 아니라 자기 생산이었다. 이 멋진 이론이 쿠퍼에 의하며; 지금 석유 화학 기반 산업들에 의한 지구 오염은 지구 역사에 있었던 다른 재난들에 비하면 쨉도 되지 않는 것이고 우리 지구 생물권은 창발적인 진화를 할 것이기 때문에 쓰레기 오염은 지구 자연사의 자연스런 일일 뿐이라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설득적이지만, 쿠퍼는 정확하게 지적한다. 창조적 미래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단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약속 자체에 대한 투자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생명이론과 투자 자본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쓰레기 쯤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는 막강한 기술에 대한 약속 자체가 부를 창출하는 반면 현실 세계에 계속 쓰레기를 쏟아 붓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 또 다른 매력적인 분석은 위생과 안보에 대한 것이다. 유전정보를 수직적으로 부모에서 자녀로 전달하지 않고, 박테리아처럼 다른 개체들과 수평적으로 유전자를 교환하는 재조합 DNA는 이제 병리적인 감염이 아니라 유연하고 창조적인 생명 진화이다. 이 아이디어는 부계적 종 구성이라는 혈연 가계적 시간을 허물어서 내가 좋아했다. 그러나 감염이었던 것이 진화가 되면, 표준화 될 수 없는, 끝없이 자기 증식적인 적에 대한 공포가 생기고 위생이 테러에 대한 공안정치와 연결된다. 동시에 생명의 자기 조직능력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자기 조절능력이 있으니 국가의 시장 개입은 거부된다. ‘생명의 자기 조직화’와 한계 없는 ‘자본의 자기조직화’라는 동일한 동력 구조를 안보, 공중보건, 군사, 환경정치, 혁신 경제로 전이해가며 융합적 제도로 파악하는 그의 논증은 신선하고 강렬했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재난이 일어나는 어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최초 바이러스 전파자는 노동시장을 찾아 국경을 넘어 온 제3세계 밀입국자였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부자의 신체는 이제 테러와 안보, 질병과 위생, 자본과 새로운 ‘생체 내’ 노동이 한 점에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위생과 시장 안보를 위해 이주자의 신체를 막는 국민국가의 국경과, 동시에 국경을 해체하고 유연한 노동력과 재생산 신체의 유입을 유도하는 신자유주의의는 서로 겹친다. 이 겹침은 한편으로 계속되는 공포확산과 다른 한편으로 그 공포에서 구제해 주겠다는 약속의 상품화라는 콜라보인 것이다. 그러나 면역체계는 낯선 타자에 반응하기 위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를 인식하는 것(해러웨이 Haraway)이기 때문에, 타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관계 속에서의 자기를 생성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병적인 것이라고 쿠퍼는 말한다. 무한한 자기 증식만을 하는 癌인 것이다.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면 감염(진화)은 일어나지 않는다(해러웨이). 

  

3. 쿠퍼는 맑스의 자본주의적 망상에 대해 언급한다. 자본은 자기 자신을,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자기 재생력이라는 특징을 지닌 생명력으로-상상하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에서 임산부 전용 좌석을 보며 이 대목이 떠올랐다. 셋만 낳아 잘 기르자,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에 대한 익숙한 경험이 있지만, 지하철의 핑크 카펫 임산부 전용 좌석은 여전히 섬뜩(uncanny)하다. 여성의 신체가 아기 낳는 기계, 인구 파워 재생산 기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기를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없어 항상 피곤한 지하철 승객들에게 그 핑크 좌석은 섬뜩한 것이다. 월남으로 독일로, 중동으로 파견되었던 군인, 광부, 간호사, 건설 노동자들이라는 노동 재생력을 가진 국가의 신체 확장과 다를 게 없다. 국가를 위해 재생산 노동력을 갖춘 신체들. 

  

4. 쿠퍼가 분석하는 부채의 시간성도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부채에 대한 시간성은 이런 것이었다. 학자금, 주택자금, 결혼자금, 교육보험, 노후 연금 등 금융적 방식에 따른 부채는 끝없이 계속 미래에 대해 투자하라고 한다. 부채 상환 스케줄이라는 생애 시간은 문자 그대로 미래가 부채상환 의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미-쓰인 미래로 이미 그 속에 세워진 시간성이라는 경계 지어진 개념을 갖는다. 쿠퍼는 이 감금된 시간성의 작동 원리를 아이러니하게도 창발적이고 무한히 자기 생산적인 부채논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생산적인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 같지만 결코 상환되지 않는 채무에 갇히게 되는 이상한 자유인 것이다. 주체의 무한한 잠재성이었던 시간은 사라진다. 미래의 자유가 현재에 감금이 되는 것이다. 생명공학에서도 이 이상한 시간성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종합검진이 미래의 건강을 약속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대형병원과 제약회사가 계획한 질병들을 생애 주기로 맞이하여야 한다. 첨단 의학이 약속한 미래 때문에 어느 때 보다도 첨단 질병에 많이 걸린다. 아이러니 한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유전학이라는 미래의 약속이 오히려 우리의 시간을 감금하는 것이다. 변화된 조건과 타자 앞에서 서로의 존재를 기반으로 창발적 자기 변형을 이루는 ‘생명’이 아니라, 증식 자체를 목적하는 자기 증식이라는 ‘생명 그 자체’의 물신화이다. 

  

5. 마지막으로, 쿠퍼가 말하는 생명기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대안을 옮겨 본다. 첫째, 합법적인 국가의 안보적 개입을 요구하지 말자. 군사 안보와 생명정치,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투기적 자본화 사이의 연계를 끊어내자. 둘째, 투기적 자본축적 양식을 선호하는 정치에 맞서 요청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창조적 방해 활동이다. 재산권의 치안 경계선의 외부에서 미래를 현실화할 수 있는 선제적 저항이 필요하다. 셋째. 모든 노력을 다해 이미 정해진 결론을 흔들고, 다른 모든 방법으로도 안 되다면, 재해가 이전과 다른 결말을 끌어낼 수 있도록 경로를 바꾸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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