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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ublic.nodong.org/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9&no=908&PHPSESSID=cbb98fdb642c875b2b3dc185fb94f753지도와 교과서
- 안토니오 그람시,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김현우·장석준 옮김, 갈무리, 2001.

<공공연맹 기관지>  제37호  
장석준(민주노동당 기획조정실 기획부장)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 당사는 기자들로 북적댄다. 그런데 이 기자들이 처음 민주노동당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묻는 게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 중에서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사회와 가장 닮은 곳은 어디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난감함을 느낀다. 답을 안 할 수는 없어서 보통,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서는 북유럽, 특히 스웨덴이 그나마 민주노동당의 이상과 가장 가깝다고 말하거나 덧붙여 브라질 노동자당의 사례를 들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은 불편하기만 하다. 나 자신 스웨덴과 브라질을 무슨 완벽한 모범으로, 혹은 우리의 교과서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문장을 넘지 않는 답변을 원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복잡한 생각은 별로 흥미가 없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민주노동당이 ‘스웨덴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브라질 노동자당을 모범으로 삼는 당’이 되고 만다.

기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원들 중에서도, 조합원들 가운데에서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민주노동당의 ‘교과서’는 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마다 필자는 ‘민주노동당에는 검인정 교과서가 없다”고 답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실망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걔 중에는 사회민주주의 교과서의 채택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혹은 자기 기만적이다. 지금도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도의 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앞으로도 그 노선으로 발전하게 될텐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레닌주의 혹은 코민테른 교과서를 추종하는 분들도 또 그 나름대로 민주노동당의 ‘회색’을 개탄한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가 스웨덴 사회민주당이냐 브라질 노동자당이냐 혹은 다른 어떤 나라의 좌파정당이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사회민주주의냐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이냐도 아니다. 차라리 계속 교과서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런 미망 자체를 극복할 것인가가 제대로 된 선택지다.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역사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 - 그람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안토니오 그람시 흔히 맑스, 엥겔스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트로츠키로 이어지는 고전 맑스주의 사상의 마지막 거목으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그람시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공산당(한때 당원이 200만에 육박했던 세계 최대의 급진좌파정당)의 이념적 기둥이었고, 이탈리아 밖의 많은 나라에서도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운동이 취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사상가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는 변변한 저작 하나 없다.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단행본 한 권 내본 적이 없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져 있는 {옥중수고}는 사실 그가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재 아래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공책에 끄적거린 내용들을 그가 결국 옥중에서 숨지고 나서 동지들이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래서 {옥중수고}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정돈해서 쓴 것도 아니고 생각의 조각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토해낸 것이기 때문에 마치 암호 짜맞추기와 같은 독서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당과 노동조합의 동지들이 반드시 한 번은 그람시의 사상을 학습해야 한다고 확신하지만, {옥중수고}를 곧바로 읽기보다는 칼 보그의 {다시 그람시에게로}(한울 刊)와 같은 잘 된 개설서를 통해 그 사상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여기에 그람시 전기의 결정판인 주세페 피오리의 {그람시}(두레 刊)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람시가 감옥에 갇히기 전에 쓴 글들을 모아놓은 {옥중수고 이전}이라는 책을 주로 소개하려 한다. 굳이 {옥중수고 이전}을 소개하는 것은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을 만드는 데 필자가 힘을 보탰으니 한 번 사서 읽어보라는 식의 사심(私心) 때문만은 아니다. {옥중수고}의 경우 그람시가 일단 실천 과정에서 크게 낭패를 겪고 나서 실천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진 상황에서 과거의 운동을 돌아보며 추상적인 사고를 전개한 것이라면, {옥중수고 이전}은 저자가 사회당 지역조직 사무장 시절부터 공산당 서기장이자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까지 실천의 현장에서 토해낸 구상들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주로 사회당과 공산당 기관지에 투고한 몇 쪽 분량의 논설들이다. 그래서 비록 그람시의 문체가 읽기에 그렇게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당대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신문에 실린 그람시의 글들을 과연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사뭇 박진감을 느끼며 청년 그람시와 대화할 수 있다.

{옥중수고 이전}의 첫 장을 펼쳐들면 우선 그람시가 그의 나이 23살 때인 1914년에 쓴 글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을 접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참전 반대 입장을 밝힌 사회당 방침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관조적인 중립 정책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적극적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첫 포문을 열면서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탈리아 역사의 현재 국면에서 이탈리아 사회당의 역할(나는 프롤레타리아트나 사회주의 일반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에너지를 바치고 있는 사회당은 이탈리아의 사회당, 즉 인터내셔널을 위해 이탈리아 국가를 장악해야 할 과제를 떠맡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그 지부이기 때문이다. 이 직접적 과제, 이 일상적 과제는 당에게 특수한, 국민적 성격들을 부여하며 이탈리아의 생활 속에서 특수한 역할, 독특한 책임을 떠맡도록 한다. (중략) 당은 단지 그 궁극적 목적에 대해서만, 그리고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그 투쟁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서만 인터내셔널에 의존한다.” ({옥중수고 이전} 63-64쪽)

말하자면 청년 시절부터 그람시의 주된 고민 중 하나는 독일의 노동계급운동사도 아니고 프랑스의 그것도 아닌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투쟁사를 열어 가는 것이었다. 당시는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의 제2인터내셔널 교과서(이후 사회민주주의 교과서의 원류가 되는)가 정전(正典)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는데, 그람시는 바로 이 교과서들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은 이후 그람시의 모든 사상적 탐구의 주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와, 노동자보다 더 가난한 농민의 동맹을 향해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성공했을 때 그람시는 서유럽 좌파정당 1세대의 기회주의에 실망한 다른 많은 청년 좌파들과 마찬가지로 레닌과 볼셰비키의 노선을 구원의 복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레닌이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자들’이라고 부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람시는 새로운 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의 노선을 또 다른 교과서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혁명을 고민하면서도 그는 이탈리아의 사회 상황, 서유럽의 사회 조건 속에서 그것을 고민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한 게 바로 공장평의회였다. 그람시는 1919년 톨리아티, 테라치니 등 몇몇 젊은 벗들과 함께 창간한 잡지 {오르디네 누오보(신질서)}의 지면을 통해서, 기존 노동조합의 좁은 틀을 넘어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현장 대의기구로서 공장평의회를 활성화시켜 이를 노동자 권력의 맹아로 발전시키자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 자체는 이탈리아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가 활동하던 북부의 산업도시 토리노를 중심으로 금속노동자들의 혁명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탈리아 전국에 걸친 연대를 이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닌의 일부 저작이나 러시아 혁명의 단편적 경험들을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토양(서유럽 사회)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한 코민테른 내의 다른 젊은 혁명가들과는 분명 구분되는 창조적 시도임에 분명했다.

이 때부터 그람시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 사회의 변화를 이뤄낼 ‘다수자 연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산업이 발전한 북부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노동해방 세상을 열려면 과연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 그람시가 주목한 것은 북부의 노동자들보다 더 빈곤한 남부 농업지대의 빈농들이었다.

그 동안 이탈리아 사회주의운동 지도자들은 주로 북부 노동자들의 단기적 이해를 충족시키는 활동만 벌였다. 그 때문에 북부 노동자들의 삶이 일부 향상되기는 했지만, 북부 노동계급과 남부 농민 사이에는 간극이 벌어졌다. 남부의 빈농들은 북부 노동자들을 자신의 벗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상전 중의 하나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남부 민중의 왜곡된 계급의식은 파시스트들을 비롯한 수구세력이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간극과 긴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람시가 지금 이 땅에 살아 있다면 이 문제가 그의 고민의 중심에 놓였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럼 그람시가 생각한 이탈리아 변혁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노동계급의 장기적(단기적이 아닌) 이해에 기반한 노동자와 빈농 사이의 연대였다.

“개량주의자들은 레지오 에밀리아(사회당의 개혁 정책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입은 이탈리아 중북부의 주-인용자주)의 사회주의를 ‘모범’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탈리아 전체와 전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레지오 에밀리아가 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들 것이다. 혁명적 노동계급은 이런 류의 어떠한 기만적 사회주의 형태도 거부한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특권의 확보를 통해서는, 프롤레타리아 귀족주의를 통해서는, 의회적 타협과 행정적 협박을 통해서는 보장될 수 없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오직 북부의 산업 노동자들과 남부의 빈민화된 농민 사이의 연합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이 연합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할 것이며,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고, 농업의 요구에 기반하며 이탈리아의 후진적 농업을 산업화함으로써 노동 대중의 이익을 위해 국가 생산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산업 생산의 새로운 기구를 건설할 것이다.” ({옥중수고 이전} 258∼259쪽)

이탈리아 공산당이라는, 사회당으로부터 분리한 신생 좌파정당을 이끌다가 파시스트의 감옥에 갇힐 때까지 그람시의 고민은 바로 이 노농동맹의 실현에 집중됐다. 오늘날 그람시 사상의 핵심이라고 일컫는 ‘시민사회’, ‘헤게모니’, ‘진지전’ 등의 추상적 개념들은 모두 노농동맹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들일 뿐이다. (반면 그람시의 이름과 그의 개념들을 들먹이는 교수님네들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가린다.)

이렇게 {옥중수고 이전}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무슨 제3의 교과서도 아니고, 특정 교과서에 대한 참고학습서도 아니다. 앞선 경험들을 단지 지금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한 ‘지도(地圖)’로 보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어나갔던 한 인간과, 한 세대 운동의 피와 땀과 눈물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교과서’를 물어오는 수많은 동지들에게 필자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간절히 전달하고 싶었던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2004-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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