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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nilbo.com/read.php3?no=121333§ion=%EB%AC%B8%ED%99%94아나키스트의 초상/폴 애브리치 지음 하승우 옮김

 `아나키스트'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묘한 떨림' 또는 `낭만' 그 자체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미하일 바쿠닌,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 역사 속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을 꿈꾸며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갔건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아나키스트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멋있게 들리는 이유는 뭘까.

19세기 말~20세기 초를 풍미한 그들의 이상은 역사의 흐름에 빛이 바랜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오해 말라. 아나키즘은 그러나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회의 당시의 반세계화 시위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 제동을 거는 아나키즘의 분출이었다. 국가와 자본의 패권에 맞서는 반세계화·반전 같은 저항의 움직임에서 아나키즘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저자인 폴 애브리치는 “아나키즘은 더 이상 무덤에 갇혀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베트남전쟁 이후 1968년 5월의 파리를 비롯해 60년대, 70년대 서구의 저항운동은 아나키즘에 빚을 지고 있는 한편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아나키스트의 초상'(롤 애브리치 지음·하승우 옮김)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아나키스트 운동과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전세계를 휩쓸었던 반전운동은 서로 밀접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초상'이란 말이 대변해 주듯 `소멸'이나 `몰락'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이라는 괴물에 맞선 사람들에게 하나의 `유령'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혁명의 세기를 살았던 러시아와 미국, 유럽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짤막한 전기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 폴 애브리치는 무덤 속의 아나키스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되살려 냄으로써 사회 체제적 부조리와 전쟁에 맞선 오늘날 전 지구적 `반세계화' `전쟁반대' 시위로 분출되는 저항의 흐름을 새롭게 제시한다.

 미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운동사 연구자이자 뉴욕시립대학에서 러시아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에서 부터 호주의 제화공이자 급진적인 연설가였던 플레밍까지 알려지지 않은 운동가들까지의 생애를 새롭게 조망했다.

 책은 최근 반세계화 운동과 같이 기층에서 부터의 자발적 민중 운동이 증가함에 따라, 새삼 주목받고 있는 아나키즘을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빌어 균형있게 정리했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아나키스트들의 다양한 삶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흔히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개인주의자 등으로 정의되는 아나키즘이 실제로는 일체의 중앙집권적 권위에 대한 부정이었으며,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진 대안공동체를 모색하는 생산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음을 부각시켰다.

 유대인,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이 놀이와 기금모금을 겸해 즐겼던 `피크닉'(picnic)과 같은 독특한 생활 양식도 소개했으며, 아나키즘의 장점과 단점, 주목할 지점과 한계도 명확하게 분석했다. (갈무리 刊 1만6900원) / 박간재 기자 kjpark@jnilbo.com

2004. 08.30.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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