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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물결이 휩쓸던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로 규정했던 사람들은 지독한 교조주의자가 아니라면 소비에트 정통 맑스-레닌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혁명은 가능한가?”======== 메인페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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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의 매혹과 저항의 현실성 사이에서

- 조정환 지음,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에 대한 서평 -
황해문화 2003년 겨울호에


1. 지금 한국의 사회운동에 [아우또노미아] 출간이 갖는 의미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물결이 휩쓸던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좌파로 규정했던 사람들은 지독한 교조주의자가 아니라면 소비에트 정통 맑스-레닌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혁명은 가능한가?”
이 물음은 사회주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혁명이 어려울 것 같다는 비관에 그치지 않았다. 어려울 것 같다는 비관이라면 열심히 실천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혁명이 새로운 지배 체제로 귀결되는 것을 목도한 사람들에게 그 물음은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혁명이 과연 지배 없는 해방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근본적 해방이란 가능한가?”
이 물음에 도달한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혁명을 포기한 개혁주의 노선과 자족적인 아나키즘적 저항 노선 밖에 없는 듯했다.
개혁주의와 아나키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혁명 노선의 후예들, 두더지처럼 저항의 땅굴을 파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어느 날 충격적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을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보자”, “코뮤니즘은 지금까지 존재해 온 집단적 야만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선언이었다. 생소한 이탈리아 맑스주의자의 선언적 문구들은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번역 출간된 95년 이후 여러 차례 학생회 선거, 대중 집회, 정치적 문화제 등에서 활용되곤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의 새로운 공간”, “자율과 연대” 등.
하지만 네그리 사상은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천적 차원에서 보면, 90년대 중반까지 혁명적 사회주의를 향하건, 개혁적 사회민주주의를 향하건, 노동조합과 정당을 양 날개로 하는 전통적 좌파 운동의 조직 형태조차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당과 노조에 집중된 운동이 내부의 활력을 억압하는 사태, 여성, 비정규직, 이주자 등이 남성 정규직 중심의 운동에 항의하는 일, 그리고 탈권위주의적 운동들이 자족성을 넘어 급진적 실천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90년대 말 이후에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율’은 상당 기간 진보정당과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좌파 운동에서 젊은 양념 정도로 사용되었다.
이론적 차원에서 보면, 오랫동안 혁명 노선과 개혁 노선을 가르는 경계로 사용되었던 [코뮤니스트 선언] 이래의 명제들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국민적 계급으로의 고양’, 또는 ‘권력 쟁취’를 기각하는 것과 계획 경제 없는 ‘사적 소유 철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다. 맑스는 [선언]에서 코뮤니즘을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 즉 자율 사회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행의 과학성 또는 현실성은 ‘지배를 폐지할 지배’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집권의 프로젝트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었다.
아우또노미아로 가는 길은 코뮤니즘을 우리의 삶과 행위로 즉각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길이었지만, 장시간 노동과 국가의 폭력 앞에 짓눌린 삶 속에서 그런 활력이 솟구칠 것이라 말하는 건 공허한 낙관처럼 들렸다. 오히려 기성의 권위적 운동 질서를 통해 지켜온 급진적 저항성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 해체시키기 쉬운 길로 보였다. 자율의 매혹과 저항의 현실성 사이에서 광주 봉기의 후예들은 집단적 인내를 택했다.
2002-2003년은 한국의 좌파에게 네그리 사상이 양념이나 공허한 매력에 머물지 않고 절박한 실천적 무기로 느끼게 한 시기였다. 미군의 두 청소년 살해에 맞서 일어난 촛불 시위와 미-영-호주 연합군에 의한 이라크 침공에 맞선 반전 운동에서 네티즌, 아나키스트, 청소년,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무슬림, 병역거부자, 평화주의자, 국제주의자, 노동자, 노점상 등 수많은 이름들을 가진 다중은 각각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반전평화’라는 공통의 이름으로 행동했다.
민중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으로 대표되는 제도적 운동들은 이들의 자율적 저항에 질서를 부과하려 했고 여전히 동원의 양에 있어 우위를 과시했다. 하지만 사회운동 지도부와 명망가들의 동원력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도, 천원, 이천원을 내는 6,000여 명의 자발적 조직위원들에 의해 성사된 927 점령반대 국제공동행동에서 보듯, 자율의 운동은 질서의 운동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론적으로도 네그리 사상은 2001년 말 [제국]의 한국어판 출간과 쟁점 토론을 계기로 개혁주의나 아나키즘과 구분되는 지구화 시대의 혁명 노선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제국]에서 네그리는 매개 권력인 국민국가의 주권이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지구적 자본의 주권 형태인 제국의 위계를 그려냄으로써, 권력을 외면하는 소극적 자율이 아니라 새로운 지구적 권력 질서를 직시하고 그에 맞서 대항-지구화(counter-globalization), 대항-제국(counter-Empire)을 구성해나가는 적극적 자율을 제시했다. 나처럼 맑스의 저작에 기초해 혁명적 사회주의 맥락에서 코뮤니즘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 담고 있던 혁명적 열정을 세계 혁명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최근 우리는 WTO 반대 시위와 반전 운동 과정에서 매개 또는 대의 권력인 한국 정부나 국회에 대한 투쟁 못지않게 제국의 명령이 집행되고 폭력이 관철되는 현장에서의 직접 행동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 WTO 대회장으로 진격하는 농민 투쟁, 전쟁과 학살의 현장에서 저지 행동을 벌인 이라크 반전평화팀과 팔레스타인 해방 연대 등에서 제국의 심장부를 흔들고 다중 저항을 촉발하는 탈근대적 투사들이 출현했다.
조정환이 쓴 네그리 사상 안내서 [아우또노미아]는 이렇게 한국의 사회운동에 새로운 주체성이 출현하는 시점에 출간되었다. 과거의 혁명적 좌파 중 상당수가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민족주의와 개혁주의가 주도하는 사회운동 주류에 무기력하게 편입되었고, 그에 맞서 반전 운동, 국제연대 운동, 비정규직 운동 등에서 한국 사회운동의 오랜 관성인 일국적 시야, 질서에의 집착, 대공장 중심, 명망가 의존 등을 타파하는 새로운 운동 주체들이 형성되는 시점에.
탈권위주의적 주체성의 형성은 저항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칫 공통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개인주의, 분리주의를 낳을 수도 있다.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나약함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난해할 뿐만 아니라 그 번역이 더 어렵게 만든 네그리의 저작들과 탈근대적 맑스주의의 여러 저작들에서 나온 ‘자율’, ‘잡종성’, ‘가상성’, ‘유목주의’, ‘횡단의 정치’, ‘되기’ 등의 문구들이 자칫 그러한 자족과 나약함의 정당화로 기능할 수 있는 시점에 네그리의 삶과 사상을 전면적으로 소개한 책이 나온 것이다.


2. 개념의 전복과 소통의 한계

노동 거부의 급진적 노동자주의 운동, 가사 노동 임금 쟁취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 사회당과 공산당의 역사적 타협에 대한 절망적 대안인 테러리즘 등 네그리가 그의 사상 형성 과정에서 참여하고 논쟁했던 이탈리아 운동의 역사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아우또노미아는 운동의 매 시기 비타협적이되 언제나 새로운 저항과 생산을 일구어내려 했던 코뮤니즘 운동의 실천 구호다.
2장에서 8장에 이르는 네그리 사상에 대한 소개는 가치론, 계급론, 제국주의론, 국가론, 변혁주체론 등 맑스-레닌주의의 고전적 개념들을 네그리가 전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 과정은 기각이나 폐기가 아니다. 네그리는 맑스와 엥겔스처럼 철두철미 물질론적으로 자본 운동의 경향을 추적했기에 잉여가치화의 게열과 자기가치화의 계열을 구분할 수 있었고, 레닌처럼 객관주의와 경제주의를 거부하는 능동적 정치철학의 태도로 계급구성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과학성이라는 이름 아래 멈추어버린 지점, 레닌이 일국 사회주의라는 주권적 조직화에서 멈추어버린 지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업이었다. 맑스적이며 레닌적이지만, 맑스-레닌주의의 고전적 개념을 모두 전복하는 과정.
조정환은 [맑스를 넘어선 맑스]에서 [야만적 아노말리]와 [디오니소스의 노동]을 거쳐 [제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룬 네그리의 급진적 개념 전복 과정을 매우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내는 맑스-레닌주의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친절함이다. 앞서 나는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아우또노미아] 출간이 갖는 의미에 관해 썼지만, 이는 정확히 말해 좌파 운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갖는 의미를 논한 것이다.
반전 운동과 대항-지구화 운동 속에서 출현하고 있는 한국의 새로운 급진적, 자율적 주체성은 좌파 운동의 맥락에서만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좌파 운동의 노동조합주의로 인해 개혁적 시민운동이나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으로 불리는 여러 영역의 운동에서 급진적 저항을 실천해온 사람들도 다중의 자율을 향한 항해에서 함께 공통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비운동권으로 분류되었던 서울대 총학생회가 반전 동맹휴업을 성사시키는 등 지금까지의 구분 짓기를 넘어 운동은 벌어지고 있다. [아우또노미아]는 이런 다양한 주체들이 소통하기엔 어려운 책이다. 이런 소통의 욕심을 한 권의 책에 다 담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할 것이며, 그 짐을 조정환 한 사람에게만 지워서도 안 된다. [아우또노미아]는 맑스-레닌주의 맥락에서 자율 운동을 촉발하는 하나의 소통 도구가 될 것이며, 수많은 맥락에서 쓰여지는 아우또노미아들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3. 더 넓은, 더 급진적인 아우또노미아를 위하여

조정환은 이 책의 9장에서 자율주의를 둘러싼 쟁점들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네그리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통해 제국주의론을 고수하는 레닌주의 진영의 문제제기에 답한다. 이어서 워너 본펠드, 존 홀러웨이, 조지 카펜치스, 영국 맑스주의 집단 아우프헤벤 등 비교적 네그리에 대해 우호적인 열린 맑스주의자들을 소개하면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 변증법에 대한 태도, 가치법칙에 대한 이해 등 세밀하지만 중요한 실천적 차이를 낳을 수 있는 쟁점들을 다룬다.
하지만 여기서 조정환이 택한 논쟁 대상자들은 협소하다. 슬라보예 지젝, 지오반니 아리기, 제임스 페트라스 등 [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평한 좌파 지성들을 다루지 않은 것은 지명도보다는 쟁점을 뚜렷이 드러내 네그리 사상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한 의도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론적 쟁점에만 치우쳐 현재의 지구적 저항 운동 과정에서 제기되는 실천적 논점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점은 아쉽다. 이는 10장에서 세계적인 자율 운동의 발전을 소개하면서도 WTO 반대 운동, 반전 국제 공동행동, 세계 사회포럼 등 지구적 저항 행동들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 한국에서의 네그리 수용을 출판을 비롯한 이론 소개 과정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앞에서 90년대 중반에 자율의 기치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에도 공허한 낙관으로 들리고 해체의 두려움에 빠지게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항의 현실성을 고민하는 사회운동가들에게 네그리는 아직 뚜렷한 실천적 대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율의 매혹과 저항의 현실성 사이를 맴도는 나에겐 다음과 같은 다니엘 벤사이드의 지적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네그리와 하트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자본 축적의 상보적이고도 모순적인 두 가지 문화 논리(한편에는 중앙집권화가 있고 다른 한편에 확산적인 용해 작용이, 한편에 물신들로의 경직화가 있고 다른 한편에 상품 유통의 유동성이 있는)로 보는 대신, 양자를 연속적 계열로 보는 일종의 연대기적 가상에 굴복하고 만다.”([저항] p.205)
벤사이드는 제국이 모던과 포스트모던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른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 양자의 관계는 이행이 아니라 자본 증식과 지배에 있어서의 두 가지 책략이다. 이는 19세기 말 이후 제국적 경향과 제국주의적 경향은 헤게모니 국가의 성쇠 과정에서 교체되어왔던 것으로 보는 아리기의 시각과도 비슷하다. 벤사이드는 네그리가 “제국, 제국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파국적 해석의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고하며, 아리기 또한 제국의 슈퍼파워인 미국 헤게모니가 벨 에포크를 지나 쇠퇴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아리기의 지적이 경제학적 시각에서의 비판이라면, 벤사이드의 비판은 비변증법적인 거부와 탈주의 길보다는 변증법 논리에 포섭된다 하더라도 부정과 저항의 길을 택했던 실천적 좌파 지성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가 속한 4차 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과 프랑스 혁명공산주의동맹은 네그리가 포기했던 당 형태의 운동을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전위당 노선을 유보하고 잡종적 사회운동의 일부로 당을 재규정하고 있으며, 대항-지구화 시위와 세계사회포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과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회의에 함께 하고 있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은 역사적 타협의 시기에 네그리가 외면했던 공산당 내부의 소수파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공산당이 그 이름마저 버리고 좌파민주당으로 변신한 1990년대에 10만에 이르는 당원을 가진 급진 좌파 정당으로 거듭난 재건공산당은 한 청년이 경찰의 총격으로 죽었던 2001년 G8정상회담 반대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재건공산당은 전위당 노선을 공식 폐기하고 스탈린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당의 위상을 사회운동의 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전통적 좌파의 조직 형식이나 저항 방식이 그 자체로 네그리의 자율 운동과 대립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네그리가 [제국]에서 제안한 지구적 시민권, 사회적 임금권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당 형태의 조직이나 지부를 거느린 국제 조직들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이는 사회당, 다함께, 노동자의힘, 사회진보연대 등 이념적으로 볼 때 자율 사상과 먼 거리에 있지만 반전 운동, 국제연대 운동을 통해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주체성들이 출현하고 있는 한국의 좌파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왔던 이들, 지금 자율의 매혹과 저항의 현실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조정환은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론과의 단절, 국가주의와의 단절, 당 형태와의 단절로 설명되는 소극적 자율 운동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의 운동이 권력화되고 억압이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당대의 지배에 맞서 저항하는 급진적 투사들의 자율 운동에 대해.

2003년 10월,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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