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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2018.02.19] 막다른 길, 문학이 가야할 길 / 정기문 문학평론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s://goo.gl/WX3Bda


문학 비평은 문학에 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담론을 탐색해가며 정치적인 것을 벼려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문학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과 비판을 동시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학 작품에 관계된 설명과 비판은 비평가가 점하고 있는 視座에 의해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역사적인 맥락에서 재구성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문학장에서 써지는 비평은 비판적 기능은 상실한 채 문학작품에 대한 설명조의 해설만이 쏟아지고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꼼꼼한 해설로 일관하는 비평이 득세하는 데는, 오늘날 출판매체와 대학, 비평가가 처한 상황 등에 복잡하게 뒤얽혀 있지만, 역사의 종언과 문학의 종말에서 기인하는 절망적 시대 정황 때문으로 보인다. 근대 세계의 파국에 관한 수많은 철학, 역사, 미학, 정치에 관련된 담론들 속에서 어떤 이들은 문학의 장을 떠났거나, 또 어떤 이들은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 문학장에 안주한 채 구태의 것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나선형적으로 교호해야 하는 삶과 문학

최근 출간된 전성욱의 『문학의 역사(들)―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갈무리, 2017, 이하 『문학의 역사(들)』)은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오늘날의 문학이 처한 상황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비평이 견지해야 할 비판적 기능을 충실히 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바를 삶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실감을 잃지 않으며 비평가의 논지를 일관성 있게 전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비평서는 단순히 활자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문학의 역사(들)』 출간 이전 오월 광주를 테마로 한 연구서인 『남은 자들의 말』(오월의봄, 2017)의 결론에서 이러한 태도는 직접적으로 언술되고 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 불완전함에 가까스로 도달하는 것이고, 문학으로써 도달하지 못한 잉여의 공백을 우리는 삶으로써 채워야만 한다. 그러니까 문학으로 다 할 수 있다는 의욕은 가당찮은 오만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우리는 문학의 막다른 끝에서 생생한 지금의 삶으로써 그 한계를 돌파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막다른 끝은 윤리적인 삶이 개시되는 지점이다.” 『남은 자들의 말』의 이같은 언술은 『문학의 역사(들)』의 부제인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과 정확히 공명하고 있다. 문학이 언술의 공간을 뚫고 나가 삶과 관계해야 한다는 것, 단순히 삶을 반영하는 것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삶과 문학이 나선형적으로 서로 교호해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문학의 역사(들)』은 출간된 직후 각종 신문매체에 소개되면서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6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된 이 책에 관한 언론의 소개는 대부분이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다룬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에 집중됐다. 짧은 서평 형식의 이 글의 일부 문장은 기자들의 입맛에 따라 재배치돼 작성된 기사로 인해 일부 누리꾼들의 성찰 없는 비판을 야기시켰다. 가령, “이 소설을 읽고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오히려 성별의 이해에 대한 고루한 통념을 더 확고하게 할 뿐이라면 차라리 그 책장을 펼치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쓴 문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는 탈색되고 원색적인 비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글에서 소설을 평가하는 잣대는 사실 『남은 자들의 말』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의 역사(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상투화, 평이성, 계몽, 적분적, 이성의 언어, 독백의 발화, 통념화, 추상적 관념성 등의 어휘는 전성욱 비평가가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개념군이다. 이들 개념은 고대의 형이상학에서 기원해 헤겔의 철학에 이르러 완성된 동일성의 철학에 토대를 둔 인식을 일컫는다. 알다시피 직선적인 목적론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폭력적, 상투적, 폐쇄적으로 봉합해버리는 동일성에서 기인한 인식체제는 우발적이고 이질적인 사건과 존재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단순화하는 젠더 정치가 활용하는 경계선의 폭력성을 『82년생 김지영』이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의 논지를 단순한 이분법적 적대의 논리로 소비해버리는 것은, 저자가 줄곧 경계해마지 않은 것을 다시금 상투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효력을 다한 개념이라는 환상

그렇다면 『문학의 역사(들)』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존재들의 삶과 인식지형을 급변시켰다. 유럽이라는 공간과 근대라는 시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거부하거나 난잡하게 혼종하는 형식으로 역사는 진행됐다. 아니, 구체적인 시공간의 영역에서 여전히 근대는 진행 중이다. 헌데 이 역사는 바야흐로 어떤 임계지점에 정박했거나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근대 국민국가가 자명해지자마자 이에 관계된 모든 것들이 의문에 붙여졌다. 지고불변의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의 기원을 탐색하는 중에 발견한 여타의 것들은 발견되자마자 소멸을 고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 고안된 개념은 그 자체로 실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때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개념이라는 환상은 바야흐로 그 효력을 다했다. 붕괴, 종말, 파국 등의 과격한 시대 진단이나 이행기, 문턱 혹은 이후 등의 어휘로 불리는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전성욱 비평가의 말을 빌린다면,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문학은 여전히 문턱을 넘는 중이다.” 이 문턱은 한계임과 동시에 가능성이다. 한계는 상정된 법칙이 계서화된 근대적 삶의 양태다. “경계를 세워 테두리의 안과 밖을 난폭하게 분할하고, 그 바깥을 배타적으로 규율하면서 내부의 완고한 통치 체계를 수립하는 근대의 정치적 패러다임, 그것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우악스런 이항대립의 분할지를 발생시키는 형이상학이다. 문학은 바로 그 형이상학의 일종이자, 그것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의 소임을 충실하게 맡아왔다.” 동일성의 철학에 입각한 진리, 이성, 계몽, 지배, 엄숙, 비극, 독백, 필연, 재현, 선조, 획일 등의 폭력적 구도는 지배체제를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전성욱 비평가가 『문학의 역사(들)』에서 푸코, 들뢰즈, 데리다, 벤야민, 아도르노, 손택 등의 논자들의 논의를 참조해 탈구축하려는 대상은 이러한 동일성의 원리에 천착한 철학, 미학적 담론이라 하겠다. 구체적 질감을 배제한 동일성의 형이상학은 추상적 구조이기에 문제적인데, 저자가 볼 때 한국문학의 맥락에서 공감을 문학의 원리로 내세우는 논자들인 김현, 신형철 등은 이에 공모하고 있다. ‘섬세한 해석의 행위’를 통해 가닿고자 하는 사랑의 행위, “‘불화’에 대한 감각의 결여, 저 순정한 사랑의 공동체는 가장 구체적인 세속의 느낌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성욱 비평가는 진짜 싸움을 지연시키거나 회피하는 알리바이로서의 사랑, 공감의 공동체는 내면이라는 형이상학을 지향하는 나르시시즘의 주체이기에 문제적이라 말한다. 이러한 공감과 사랑은 타자를 주체의 입맛대로 변형시켜 동일화해버릴 위험이 있기에 귀 기울일 만한 비판이라 하겠다.

그러면 『문학의 역사(들)』이 지향하는 문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채움이 아닌 적극적인 비움의 문학, 동일화가 아닌 비동일화의 문학, 타자의 타자성을 지우지 않고 불화를 내재한 상호교섭을 통해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는 극기의 문학, 즉 “타자와의 연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으로서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학이랄 때라야 나르시시즘적 충동을 극복하고 지난한 피로를 감내하면서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한 잣대로 전성욱 비평가는 내면이나 신으로 비약해버리는 문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감을 내장한 소설과 평문을 긍정하고 있다. “임박한 파국의 문턱에서 도래할 것을 사유하는 선지자가 되는 것보다, 당장의 현안 깊숙이에서 도착한 파괴를 견뎌나가는 것이 진짜 급진”이라거나 “도래를 말하기 전에 먼저 그 어떤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 기원도 종말도 아닌 오직 그 견딤의 시간이 역사의 유물론이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소설을 매개로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고 삶과 문학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려는 진지한 논의에 연대감을 느낀다.




문학의 역사(들) | 전성욱 지음 | 갈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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