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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9.11.16] <네트워크의 군주>. 새로운 형이상학의 탄생 / 손보미(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4888


인간과 말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인간은 말과 함께 보다 빨리 달리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또 신나게 놀 수 있었다. 책의 저자 그레이엄 하먼도 인간과 말의 관계를 무척 특별하게 생각한 듯하다. 서문에서 철학을 특히, 형이상학을 다름 아닌 말에 비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먼은 오늘날 우리가 좋은 말과 함께 짝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는 현대철학의 거장들을 비판하며 새로운 형이상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먼은 우리의 든든한 짝이 되어줄 새로운 말이 태어나려면 우선 치타와 켄타우루스가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 둘을 만나게 해 줄 중매쟁이를 자처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치타

좋은 종마, 즉 새로운 형이상학이 탄생하려면 우선 브뤼노 라투르를 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해야 한다. 하먼이 보기에는 라투르의 이론이 그 어떤 유명 철학자의 글보다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더 강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라투르도 오늘날 유명한 학자 중 하나다. 그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이미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고 강력한 치타가 이상하게도 철학계에만 들어서면 유독 기를 펴지 못하고 풀이 죽어 버린다. 왜일까?

라투르의 이론은 철학계의 대립적인 두 입장 모두로부터 엉뚱하게 공격받고 있다고 하먼은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현상이 라투르 이론의 새로움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특정 울타리 안에서 대립하던 양 진영이 갑자기 힘을 합쳐 어떤 이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울타리 자체를 수호하기 위함일 때가 많은데, 라투르가 바로 이런 경우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탄생시키려면 철학계에서 충분히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이 치타의 기운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철학계 내의 논쟁들도 소모적인 집안싸움에서 벗어나 활기찬 결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먼은 먼저 라투르의 치타가 처음 탄생했던 장소로 간다.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몇몇 철학자들은 중요한 첫 통찰의 순간을 자신의 저작에 기록했다. 이는 대체로 철학자 자신의 강렬한 체험과 함께 서술되곤 하는데 후에 이 기록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며 화려하게 색칠되고 하나의 흥미로운 전설이 된다. 그리고 이 전설은 철학자의 초상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생생하게 유지해 줄 뿐 아니라 그가 남긴 사유를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먼은 라투르의 초기 논문 <비환원>에서 이러한 전설이 될 만한 기록을 찾아내고 거기에 맨 먼저 색을 칠한다. 하먼이 찾아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라투르)는 일 년 동안 프랑스 지방의 그레이에서 가르쳤다. 1972년 겨울이 끝날 무렵에 디종에서 그레이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환원주의에 관한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25)"


모든 것을 특수한 실재로 환원하길 좋아하는 여러 사람의 목록을 떠올리던 라투르는 급기야 차를 멈추고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하먼은 라투르의 체험에 선명한 색을 입히면서 그가 첫 통찰의 순간에 느꼈을 생리적인 강렬함을 더욱 부각한다.


"도로변에 앉아서 어떤 새로운 철학 원리를 꿈꾸고 있던 청년 라투르는 마침내 이 모든 환원자에게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25)"


현기증, 메슥거림, 구토. 이런 반응들은 직면한 문제가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들이다. 환원이냐 비환원이냐의 문제가 이제 라투르에게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라투르는 비환원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 이리 생각해 보면, 그가 자신의 작업을 퇴마의식에 빗대 표현하는 것도 그리 과장된 비유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무언가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고, 아무것도 무언가 다른 것에서 비롯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여타의 것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이런 중얼거림은 악령들을 하나씩 차례로 패퇴시키는 퇴마의식과 같았다. (25,26)"


라투르는 철학의 가장 밑바탕에 '비환원의 원리'를 놓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환원의 원리가 존재를 설명하는 첫 번째 원리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존재를 탐구하고자 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사유의 제1원리이기도 하다. 즉, 존재에 관해 말할 때 결코 어떤 특정한 원리로도 환원하여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젊은 철학자의 사활을 건 선언이다.


"우리는 원초적인 제1원리들에서 철학을 할 수 없고 오히려 활동 중인 객체들을 쫓으면서 목격하는 것을 서술해야 한다. (27)"


비환원의 원리를 자신의 사유, 즉 철학함의 제1원리로 삼은 철학자가 취하게 되는 연구법은 바로 경험적 연구다. 모든 존재는 애당초 환원 가능한 것으로도 불가능한 것으로도 나지 않으므로 환원/비환원 문제에 있어서 이제 중요한 것은 실제로 활동 중인 존재자들을 쫓으며 그것이 언제 환원되는지(하는지) 혹은 언제 환원되지(하지) 않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철저한 비환원의 원리에서 사유하는 라투르 앞에 이제 세계는 평평해지고 모든 존재자는 '행위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존재자를 행위자(혹은 행위소)라 부르며 모든 것에 완전히 민주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라투르는 풀과 대문, 묘비, 라디오, 동급생, 법정을 한낱 존재자적 세부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들이 다시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될 수 있게 한다. (219)"


라투르의 평평한 세계 위에서 모든 존재자는 매개행위를 하는 행위자, 즉 객체들이 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모든 객체를 철학의 진지한 주제로 등장시키면서 세계를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던 기존 형이상학의 테두리를 가장 빠르게 뛰어넘는다.

하지만 라투르의 이론에도 한계가 있다. 라투르는 놀라운 이론을 전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존재자를 관계 맺는 행위로만 설명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 라투르에 의하면 모든 것은 행위자이고, 매게 행위를 통해 실재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행위를 멈추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하먼은 라투르가 존재자의 어느 한 측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측면을 삭제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말한다.

라투르의 치타는 빠르게 달리며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었지만, 앞만 바라보며 저 혼자 쌩 달려가 버린다. 우리는 함께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치타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와 짝이 맞는 켄타우루스가 있어야 한다. 책의 2부에서 하먼의 관심은 고전 형이상학으로 옮겨간다.

고전 형이상학이라는 켄타우루스

대대로 세계와 존재를 설명하는 훌륭한 형이상학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우리가 그 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과거의 말들은 이미 가장 적합한 인간들과 결합하여 켄타우루스가 되었다. 신화 속 켄타우루스와 우리가 결합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들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하먼 또한 과거의 여러 형이상학을 공부하며 그것들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켄타우루스를 발견한다.

하먼은 많은 고전 형이상학 중 치타의 짝으로 하이데거의 켄타우루스를 지목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라투르와 하이데거, 이 둘의 존재자 모델은 매우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이 더욱 결정적인데) 이 둘은 서로 정반대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 주는 훌륭한 배우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라투르에게 사물을 그것의 동맹자들에게서 빼내라고 요청한다면 하이데거에게는 실재적 나무와 우리 눈앞에 현시되는 나무의 관계를 설명하라고 요청해야 한다. (291)"


하이데거와 라투르는 서로가 서로를 요청하고 있었던 셈이다. 외로이 떨어져서 서로를 부르고 있는 둘을 보고도 맺어주지 못한다면 좋은 중매쟁이라 할 수 없다. 하먼은 흔쾌히 이 둘의 만남을 주선한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객체 모형을 전개하려면 브뤼노 라투르의 도움이 몹시 필요하다. 어떤 졸리오가 이 두 사상가를 서로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책이 이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 (294)"


라투르의 '행위자'는 끊임없이 연결하고 또 연결되는 객체다. 그에게는 오로지 이 연결만이 중요하고 심지어 더 많이, 잘 연결할수록 객체는 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하먼이 보기에는 단절된 채로 있을 수 있는 객체의 능력 또한 무척 중요하다. 이 후자의 능력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되려 관계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여기가 바로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객체의 연결을 잘 설명하는 라투르의 치타, 객체의 단절을 잘 설명하는 하이데거의 켄타우루스. 하먼은 이 둘을 데려와 그 사이에서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는 망아지를 탄생시킨다.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는 망아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막 태어난 이 망아지와 함께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하먼은 책의 마지막 장인 '7장 객체 지향 철학'에서 본격적으로 이 새롭게 태어난 형이상학에 관해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 흥미로운 분과학문 하나를 제안한다.


"모든 객체는 순수 상태에서 성질과 객체를 접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어떤 한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는 우유적인 것들이 소용돌이치는 통일된 객체를 접한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모든 종류의 존재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신의 우주적 층위들이 더 많이 규명될 수 있다. 심지어 지렁이, 먼지, 군대, 분필, 돌의 특정한 심리적 실재까지 캐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심리학의 새로운 분과학문, '사변적 심리학'을 제안한다. (463)"


지렁이, 분필, 심지어 돌의 심리적 실재를 캐낼 수 있다니! 이는 얼핏 보면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할 법한 신비로운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하지만 하먼은 본인이 제안하는 '사변적 심리학'이 범심론(혹은 물활론)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분과학문은 오히려 기존 범심론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넘어서는 것인데, 왜냐면 이 학문이 인간의 심리적 특질을 덧씌우지 않고도 사물, 더 넓게는 모든 객체의 심리를 아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사변적 심리학은 인간 심리와는 다른 다양한 객체들의 특정한 심리적 실재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분과학문이 우리 곁에 확고히 자리 잡을 때, 과연 어떤 구체적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무도 인간처럼 슬픔과 고통을 느낄까?'의 차원을 넘어 나무(뿐 아니라 다양한 자연적 객체)의 심리를 이야기하면서 환경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범죄자의 심리뿐만이 아니라 총과 최루탄, 학교와 가족, 신용카드나 주식등의 심리를 함께 연구하는 범죄 프로파일러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가진 문제들에 더욱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고, 더욱 다양한 해결책들을 구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재기발랄하고 의욕적인 중매쟁이 덕분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망아지가 태어났다. 귀엽고 똘망한 눈 속에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무한한 잠재력이 서린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질과 혈통을 타고난 말이라 해도 그것이 실제로 인간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을지는 함께하는 과정 중에 비로소 결정될 것이다. 이 망아지를 잘 키워가면서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만들어가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네트워크의 군주』 | 그레이엄 하먼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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