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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 
 
“깡길렘(캉길렘)인지, 킹크랩인지.” – 얼마 전 우연히 듣게 된 농담의 한 토막이다. ‘깡길렘’이라는 이름이 너무 낯설었던 나머지, 영미철학을 공부한 어느 노학자가 깡길렘 연구자의 발표에 이어 이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화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조르주 깡길렘(George Canguilhem)이나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과 같은 학자들이 속해 있는, 생성의 관점으로 생명을 사유하려는 프랑스 생명철학의 계보가 상당히 낯설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생명철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학자이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인 『창조적 진화』의 역자로 알려져 있는 황수영의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갈무리, 2014)는 깡길렘과 시몽동을 비롯한 낯선 이름의 학자들을 베르그손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베르그손 연구서들 사이에서 매우 독특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깡길렘, 시몽동, 들뢰즈와의 대화’이다. 즉, 프랑스에서 거의 처음으로 생명 철학의 체계적인 정립을 시도한 베르그손을 중심으로, 생명 철학과 생성 철학이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를 놓고 각자 독창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한 깡길렘, 시몽동, 들뢰즈 철학의 구도를 그려보려는 낯선 기획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베르그손의 텍스트는 『창조적 진화』이다. 베르그손은 애초에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과학의 소관인 것으로만 간주되어 온 진화론을 형이상학의 문제로 재구성한다. 당시에 제기되고 있던 여러 진화 이론들을 숙고한 결과물인 『창조적 진화』를 기초로 하였을 때 주목하게 되는 베르그손의 주요 개념은 ‘생명의 약동(élan vital)’이다. 이 개념은 당대의 기계론적 과학이 신봉하던 인과 법칙에 따라 계산과 추측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생명의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우발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베르그손 철학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그의 입장을 고생물학이나 다윈주의 이론가들의 견해와 비교한다. 이때 저자가 취하는 자세는 어느 일방에 치우친 것이 아니며, 과학과 철학 사이에서 생성되는 의미 있는 교차점들을 조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철학(醫哲學)의 문제를 고민하며 생기론적 철학을 전개한 조르주 깡길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유기체나 인간에게서 발생하는 정상성과 병리의 문제이다. 베르그손이 생명계를 시간적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깡길렘은 개체들의 구체적 생명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흥미로운 개념은 바로 깡길렘의 ‘건강’ 개념이다. ‘건강’을 “일시적으로 정상이라고 정의되는 규범을 넘어설 가능성이며, 일상적 규범의 위반을 견디고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규범을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밝힌 깡길렘의 생명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무수한 반응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건강을 남용할 가능성도 건강의 일부를 이룬다.”라는 그의 말은 생명 현상의 우발성이나 과잉 현상으로부터 규범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역동적 세계관을 구상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보통 ‘건강’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해야만 하는 것’, 비정상적인 것들로부터 지켜내야 할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깡길렘의 견해에 비추어보면, 건강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과 전복가능성이 새롭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프랑스 생명철학의 계보에서 생명이라는 개념은 질병이나 노화, 죽음과 연관되어 온 통속적인 주제나 보건 산업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통해 재발견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한편,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를 시작으로 후에 과학철학과 형이상학의 문제에 관심을 쏟은 과학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은 ‘생성의 철학’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베르그손과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시몽동에게서 중요한 개념은 ‘개체화’이다. 베르그손에게 진화가 생명의 수다한 잠재적 경향들이 종과 개체로 분화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면, 시몽동에게서 전개체적 과정은 긴장된 힘들이 공존하는 상태이며, 개체화과정은 하나의 싹을 중심으로 동일한 요소들을 응집시키는 ‘분극작용’이다. 이러한 베르그손과 시몽동의 구상에 의지해 들뢰즈는 차이의 철학을 기획하게 된다. 그는 베르그손에게서 잠재태의 현실화라는 장치를 참조하고 지속(durée)의 개념을 자기 자신과 달라지면서 반복하는 동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들뢰즈는 자신의 생성 철학의 핵심 모형을 베르그손에게서 구하면서도, 발생이 동시에 개체화의 장이라는 특정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시몽동의 개체화이론을 조회하고 있다. 이로써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에서는 생명의 무궁무진한 폭발과 개체화라는 안정화과정이 서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직접 과학 지식을 분석하고 참고하면서 자신들의 개념을 정립해 온 베르그손, 깡길렘, 시몽동의 선행작업을 마침내 들뢰즈가 철학사적인 관점에서 종합하고 이로부터 다시금 독창적인 개념을 발명해내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과 달라지는 운동으로서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을 받아들인 들뢰즈가 차이를 자기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삼았을 때, 서양철학의 주류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플라톤주의가 전복되고, 차이, 이미지, 우발성, 일회성과 같은, 여태 철학의 뒷자리로 밀려나 있었던 개념들이 전면적으로 대두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황수영의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는 베르그손의 철학과 그것이 프랑스 철학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상세한 보고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우리에게 다분히 낯선 철학의 경향들을 소개하고 있는 어떤 잠재성의 표현이자, 베르그손을 중심으로 생성철학의 계보를 엮은 분극작용, 즉 응집을 통한 개체화의 한 양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책이 생성의 철학에 대한 개인적 연구의 집대성인 동시에, 베르그손에서 깡길렘, 시몽동, 그리고 들뢰즈로 자리를 옮겨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유의 발생과 생성의 흐름 자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활달한 독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강물이 흘러가는 가운데, 읽는 사람 스스로 그 광경을 목도하며 홀로 정지해 있는 듯한 숭고를 느끼게 한다.

 
2014년 11월 6일
e-시대와 철학
찬초 (다중지성정원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ephilosophy.kr/han/?p=46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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