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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문)


주지하듯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과학기술의 비중은 압도적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 과정에 사회는 어떻게 개입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과학기술은 다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학문 중의 하나가 바로 과학사회학이다.

 

현재의 주류 과학사회학은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과 상대주의 과학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1970년대에 들어와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된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과학 지식에 부여되었던 특권적 인식론적 지위, 즉 과학 지식은 여타의 지식과는 달리 사회와는 무관하게 발전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과학 지식도 여타의 지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산물임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전통적 실증주의적 과학관과는 달리 자연 법칙의 충실한 재현을 보증해 주는 합리성의 보편적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 지식의 선택 과정에 과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이해관계나 가치가 개입된다고 본다. 즉, 순수하고 사회로부터 자율적인 과학이란 일종의 신화이며, 모든 과학 지식은 그 지위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동등한 사회학적 설명이 가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성주의 과학사회학에 따르면, 참된 지식과 그릇된 지식에 대한 기존의 구분방식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종래의 지식은 하나의 지식 주장(knowledge-claim)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지식 주장이 어떠한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참된 지식으로 간주되게 되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 과학사회학의 과제가 된다. 이처럼 상대주의적 과학관에 근거하여 과학 지식의 내용 자체를 사회적 구성의 결과로 보는 새로운 과학 지식의 사회학은 "강한 프로그램"을 필두로 하여 "상대주의의 경험적 프로그램", "실험실 연구", 그리고 "행위자 연결망 이론" 등으로 확장, 발전되었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스콧 프리켈·켈리 무어 엮음, 김동광·김명진·김병윤 옮김, 갈무리 펴냄, 이하 <향하여>)는 현재의 주류 과학사회학의 연구 경향에 대한 다소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향하여>가 볼 때 현재의 주류 과학사회학은 과학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인류학적, 철학적 측면에서의 분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과학의 사회적 성격을 밝혀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방법론적으로는 행위자 지향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띄게 된 결과 과도하게 서술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에 치우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향하여>는 과학 지식에 대한 사회적 연구의 규모를 확장시켜 정부와 시장 같은 제도적 시스템까지를 포괄하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신과학정치사회학(new political sociology of science)이라고 부른다. 신과학정치사회학은 미시적인 행위자 중심의 설명을 넘어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기존 제도와 연결망들이 어떻게 과학기술의 구성 요소, 과학기술이 생산되는 방식, 또 과학기술이 권력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형성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예컨대 과학의 연구비 조달, 관리 그리고 그 실천을 형성하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동역학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과학 지식의 생산과 전파 과정에서 권력을 얻고 배분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와 연결망에 대한 분석을 핵심으로 하는 신과학정치사회학은 법, 정치, 사회운동의 사회학을 기반으로 제도와 연결망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 그리고 그에 뒤이은 사회적 저항과 적응의 동역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방법론적 확장에 기반을 둔 <향하여>는 과학이 경제, 시민 사회 그리고 국가와 맺는 복잡한 상호 작용을 밝히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과학과 경제의 상호 작용을 과학의 상업화 측면에서 다루는 1부는 현재 날로 심화되는 대학의 상업화가 과학 지식의 생산과정과 내용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우드하우스는 특정 종류의 과학 지식 생산을 유도하는 산업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나노 기술에 대해서는 남아돌 만큼 풍부한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지만 극도로 유해한 분자 생산에 대한 환경 친화적인 대안인 녹색 화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비는 나노 기술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과연 과학 연구에 있어 이러한 비대칭성이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신과학정치사회학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과 시민 사회의 상호 작용을 사회 운동 측면에서 다루는 2부에는 앞에서 언급한 신과학정치사회학의 진수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시민들이 과학에 관여하게 되고 과학자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관심사를 함께 할 경우 거둘 수 있는 성과를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저자들이 "체화된 보건 운동(embodied health movements)"이라고 부르는 사회 운동들을 들 수 있다. 이 사회 운동들은 천식, 걸프전 신드롬, 그리고 환경 관련 유방암 문제에 내재된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쟁점들이 논쟁의 과학화로 인해 과학적 물음으로 바뀌게 됨에 따라 비과학자들이 정책 결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비과학자 활동가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과학자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기존의 과학 연구 문제, 방법 그리고 치료 선택지 등에 도전을 야기하면서 과학의 정치화를 드러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과학과 국가의 상호 작용을 정부 규제 측면에서 다루는 3부에서는 규제 제도적 수준에서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소개된다. 예컨대 최근 미국에서는 대학의 연구자들과 제약 회사들이 미국 국립보건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연구비 지원과 인가를 얻으려면 여성, 인종 및 민족 소수자, 어린이 그리고 노인을 피시험자로 반드시 연구에 포함시켜야 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변이가 갖는 중요한 차이를 인식하고 그러한 차이를 연구 설계와 임상 요법 개발 과정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생의학 모형에 의해 기존의 "표준적 인간" 모형이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 변화는 관련 행위자들이 과학, 국가 그리고 사회 운동을 오가는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소개한, 신과학정치사회학에 기반을 둔 <향하여>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행동들을 구조적 조건 및 세력들과 확실히 연결 짓지 않는 한 과학의 사회적 연구는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쟁점들 중 일부를 틀 짓고 그에 대응하는 과학의 역할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런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 저자들의 주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수행된 <향하여>의 연구들은 기존의 과학사회학 연구들이 지나치게 미시적인 행위 중심 설명에 매몰되었던 것에 대한 반성에 기반을 두고, 과학을 틀 짓는 보다 거시적인 제도적, 구조적 변수들에 주목하는 방법론적 전환을 스스로 학문적으로 실천한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향하여>가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새롭게 제시하는 연구 방향에 크게 공감한다. 나 역시 대체로 지금까지의 과학사회학 연구들, 더 나아가 과학기술학 연구들이 행위자 중심의 미시적인 설명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는 데 대해 비판적인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위자 중심의 미시적 연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과학사회학 연구가 보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분석들을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현대 사회의 과학에 대한 이해에 있어 심각한 결손을 낳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어떻게 유지되고 실행되며, 변화되는가에 대한 보다 구조적인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과학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나 실천적인 노력, 그 어느 것이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향하여>의 문제의식에 공명하면서 나는 한국 사회에서의 과학사회학 연구도 향후에는 제도와 연결망 그리고 권력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보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한국사회에서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과학사회학의 연구 주제는 과학기술과 노동, 과학기술의 군사화 그리고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에 대한 보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이다. 각각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과학기술과 노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주지하듯이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를 막론하고 노동 현장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노동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과학기술 설계의 방향은 무엇인지 등의 연구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과학사회학은 좀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동 관계법 체계와 같은 제도적 요인들이나 자본과 노동 운동의 대립적 상호 작용과 같은 보다 구조적인 요인들이 연구 과정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군사화라는 주제는 특히 전쟁을 겪은 바 있고, 여전히 군사적 긴장도도 높은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서구 과학기술학계의 일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기술과 전쟁이나 과학기술의 군사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의 군사화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당연히 한국의 국방 연구 개발 시스템과 군사적 세계 체제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라는 주제 역시 그간 한국의 과학사회학으로부터 외면 받아온 주제이지만 향후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할 분야이다. 그간 한국의 과학사회학 연구자들도 과학기술에 대한 자본주의적 전유나 포섭과 같은 보다 거시적인 사회 구조나 권력 관계 등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원리라는 점을 생각해 보더라도 자본주의라는 보다 거시 구조적인 힘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틀 지우고 있으며, 다시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적 시장관계를 어떻게 변모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1월 24일

프레시안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 원문 링크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3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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