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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문)


2013년 12월 11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 낯익은 광경이 반복된다. 정부안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출입은 제한되고, 형식적인 공청회가 끝나고 나면 결정권이 정부로 넘어간다. 물론 공청회 이전에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각각 추천한 전문가들이 모여 계획을 수립하는 테이블이 마련되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하나 시민사회 측 전문가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시계를 조금 더 돌려보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계획 수립 과정에의 참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을 볼 수 있다. 가깝게는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부터 조금 길게 거슬러올라가면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까지, 낯익어서 서글픈 풍경이다.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이 문제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없다. 그러나 참여절차가 조금 더 보장되었다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었을까? 정부와 산업계가 펼쳐놓은 각종 자료와 보고서, 연구결과의 장벽 앞에 결국 무릎 꿇게 되지는 않았을까?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가 던지는 질문도 여기서 시작된다.



왜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가? 왜 어떤 집단은 유용한 지식을 바로 얻을 수 없는가? 


온갖 비리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원전은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저선량 방사능 피폭이나 송전탑 전자파는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탓에 결정적인 근거 부족으로 아직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 상황과 정면으로 대면하고자 한다. 즉 과학(기술)지식이 만들어지는 방식, 그리고 이것이 야기하는 정치적 효과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한다. 특히 이 책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과학지식 생산과 활용 과정에서 발견되는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이다. 과학연구로 인한 직간접적인 비용편익의 배분, 과학연구와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을 지배하는 공식적/비공식적 규칙 등을 파헤쳐 지식생산이 편향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과 그것의 문제점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바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


이를 위해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와 방법을 말하기에 앞서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부터 살펴보자. 도대체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과학지식의 생산을 실험실과 같은 미시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질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바라보는 연구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책은 1980-90년대를 거치며 과학사회학의 중심 축으로 부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류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미시적 사례연구, 행위자 중심적 접근법이 정치적 문제에 무감각하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실험실 중심의 미시적 연구들이 과학정책과 과학지식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처방은커녕 제대로 된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알다시피, 1970년대 이래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가 급격하게 변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 구조적 불평등이 확산되면서 과학 장(scientific field) 역시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과학과 정치의 상호작용이 거대한 변동을 겪은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과학사회학은 미시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는 것이 이 책의 (편집자들의) 진단이다.(이 책의 저자들이 기존 연구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과학지식을 분석했던 맑스주의적 접근법 역시 거부한다. 초기 과학정치사회학의 (경제)결정론적 시각을 비판하며 이 책은 베버적인 시각에서 사회적 관계를 폭넓게 확장해서 분석에 적용시키고자 한다. 이 책이 스스로를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이라 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식, 권력, 제도, 연결망: 신과학정치사회학 프로젝트의 키워드


과학-정치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한 도구로 제시되는 개념은 다름 아닌 권력과 제도, 연결망이다. 권력의 불균등한 배분은 과학지식 생산의 편향성을 파헤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이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는 만큼 권력의 형태와 배분, 작동 범위와 강도 등은 가장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제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실험실에 대한 미시 연구가 지식생산의 우연성과 맥락성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 행위를 제약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과학정치사회학은 법률이나 정책과 같은 사회적 규칙과 규칙의 제정 과정을 권력이 행사된 결과이자 정치적 경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바라보며 제도분석의 기초로 삼는다. 조직과 조직적 연결망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연결망의 변화가 제도, 나아가 권력 작동의 형태를 변형시켜 지식생산을 틀 지우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불균등하게 배열된 조직적 연결망이 변동하면서 제도가 형성/변형되고,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장기지속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구조와 함께 과학지식이 생산-활용되기 때문에 단지 우연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경향성이 존재하게 된다. 신과학정치사회학은 이러한 경향성을 발견함으로써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그로 인한 지식생산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고자 한다.



상업화, 참여, 국가 규제: 과학지식 정치의 동학


신과학정치사회학의 칼날이 구체적으로 향하고 있는 곳은 과학의 상업화(1부), 과학(기술)지식을 둘러싼 사회운동의 확대(2부), 국가 규제의 강화(3부)이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이후 과학장의 지각변동을 초래한 요인들로,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배경과 그것에 함축된 의미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만 간단히 살펴보자. 2장에서 클라인맨과 밸러스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대학과 산업의 상호작용이 확대된 과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대학의 기업화가 기업의 대학화를 압도하여 전체적으로 생명과학의 상업화를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비대칭적 수렴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공동생산/공동구성 개념으로는 이와 같은 비대칭성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책이 의도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5장에서 헤스는 이와 같은 과학의 상업화를 보다 긴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헤스는 혈관형성방지 연구가 자연물질/식품 기반 약물이 아닌 합성약물 중심으로 전개된 과정을 추적하며, 실험연구의 규모 확장, 조직적 분화, 분자/유전자/생화학 중심의 연구패러다임의 강화, 합성 중심의 생의학 체제로 인한 약물의 탈자연화와 같은 역사적 경향성을 찾아낸다. 연구의 비용과 규모가 증대되면서 사적 부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동시에 다양한 조직들이 등장하면서 연구의 통제권과 자율성을 둘러싼 문제들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국가의 규제정책으로 눈을 돌려보면, 12장에서 엡스틴은 생의료연구에서 (백인남성으로 가정된) 표준적 인간 모델이 국가 규제정책의 차원에서 해체되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이제 생의료 연구는 공식적으로 젠더, 인종, 연령 등의 차이를 반영하여 다양한 집단을 포함시켜야하는데, 엡스틴은 이와 같은 새로운 규제정책이 통치 행위가 생의료화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규제 정책이 확립되면서 통치 양식은 더욱 은밀해지는데, 13장에서 리어던은 <인간 게놈 다양성 프로젝트> 참여 확대 정책을 검토하며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흔히 시민 참여는 선험적으로 좋은 것으로 가정되나 권력 관계에 대한 고려없는 참여는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리어던은 연구절차뿐만 아니라 연구설계에 대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참여자들의 이해관계와 우려가 정당하게 반영될 수 있는 더 세밀한 참여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과학기술운동은 과학(기술)지식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인 만큼 이 책에서도 다양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 중 마틴이 쓴 10장 "대안과학의 전략들"은 대안과학의 전망과 전략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그의 결론은 곱씹어볼 만하다. 즉 대안과학의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 또한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인 비전에 기초해 대안적인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하며, 과학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것과 더불어 사회를 변화시켜 과학을 바꾸는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이밖에도 이 책에는 과학학의 논의에 제법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례들이 여럿 소개된다. 각 장이 독립된 사례연구인 만큼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별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도 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학-정치의 상호작용을 해부해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내세우는 신과학정치사회학은 하나의 이론체계라기보다는 아직 연구프로젝트에 가깝다. 서두에 제시한 목표에 비해 분석전략이나 개념, 방법론은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 조직사회학, 경제사회학, 사회운동론, 제도주의 등 여러 분야에서의 논의들을 끌어오고 있으나 일관성이 보이진 않는다. 사실 사례연구 중심의 편집서인 만큼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잘못일지 모르나 1장에서 제시된 신과학정치사회학 프로젝트를 꼼꼼하게 따져본 이들에게는 사례연구에서 다소 맥이 빠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과학의 상업화, 과학과 사회운동, 과학과 규제국가로 묶어놓기는 했으나 각각의 사례연구들을 연결해서 종합해주는 설명은 없고, 논의의 수준에 있어서도 장별 편차가 제법 크다. 따라서 책을 읽고 났을 때 갈증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신과학정치사회학을 체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을 목표로 한 만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 듯 싶다.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이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주로 농업, 생의학, 생명공학, 환경, 분자생물학 분야에 한정되어 있고 미국 밖의 사례에 대한 분석도 없다. 이러한 공백을 채우는 것은 앞으로 신과학정치사회학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많은 책이 그렇듯, 이 책 또한 질문에 대한 완결된 해답을 제시하기보단 새로운 질문과 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출발점이나 중간 경유지에 가깝다. 『과학 기술 민주주의』,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시민의 과학』 등 차례로 읽어가면 좋은 책들도 이미 제법 많이 나와 있다. 책을 읽으며, 4대강 사업, 삼성반도체, 핵발전 등 과학과 정치가 뒤얽혀 진행되고 있는 사회 현안들을 직접 정치적으로 해부해본다면 더할 나위없이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2014년 1월 9일

문화빵 31호

홍덕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기사 원문 링크 : http://www.culturalaction.org/xe/newsletter/57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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