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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세미나를 통해서 <캘리번과 마녀>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시초축적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여성들을 탄압해왔는지를 마녀사냥을 통해 밝힌 이 작품은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이름을 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켜 놓기에 충분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이름이 내 생활 속에서 퇴색될 때쯤, 그녀의 새로운 저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엄청난 기대감과 흥분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의 프리뷰를 하면서도 그녀의 흡입력 있는 설명에 한 문장씩 꼼꼼히 체크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난 본격적인 서평을 하기 전에,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그렇게 이 책을 기다렸고,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나는 정작 서평 의뢰를 맡았을 때 왠지 모를 부담감을 느꼈다. 프리뷰어로써 한 번 읽어보기도 하였고, 세미나를 통해서 실비아 페데리치의 다른 서적을 읽었던 나로썬 이번에 나온 책에 대한 서평도 편하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외적인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내 자신이 가사노동의 수혜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부불노동으로서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 가사노동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전적으로 집안의 남성 개인과의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무거운 마음이 이 책의 서평을 계속해서 미뤄오게 한 것 같다. 다시금 어렵게 이 책이 내게 지닌 무게를 느끼며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런 나의 생각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혁명이 아닌, 거리에서의 혁명이 아닌, 식탁에서의 혁명. 그것이 바로 혁명의 영점이며, 이 책의 겉표지에 등장하는 조쉬 맥피(Josh Macphee)의 그림처럼 식탁에서의 혁명은 고요한 물에 파동을 일으키는 하나의 물방울로서 작용할 것이다. 재생산 영역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공장의 변화는, 그리고 거리의 변화는 다시 자본주의로 편입되어 버릴 뿐이다. 재생산 영역에서 착취는 언제나 여성의 몫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많은 이익을 자신의 기름 진 뱃속에 집어넣었다. 시초축적은 여성이라는 부불임금노동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노동력 비용의 억제를 통한 잉여가치 창출을 위해 부불재생산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더 이상 “여성의 노동”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노동력생산에 기여하고 자본을 생산하며,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이 일어날 수 있게 만드는 노동임을 인정하는 데 있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실천과 사유의 과정 속에서 작성해 놓은 기존의 여러 논문들을 편집한 본 저서는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한 여성의 역사이자 자본주의 하에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어머니의 돌봄과 사랑을 기억하며 그녀가 태업을 한다거나, 가사노동을 거부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그녀에게 부과되는 희생과 착취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왔던 것 같다. 그녀의 딸도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며, 그녀의 아들은 임금에 구속되어 착취당하는 노동력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악순환을 깨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문제이다.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로만 치환되어서는 안 될, 자본주의가 은폐시킨 진실을 목도하게 만드는 것. 이 책은 영화 <매트리스>(matrix)에서 모피어스가 레오에게 쥐어준 빨간 약과도 같다. 자본이 주는 임금으로 자기 개발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이 책은 이미 자본주의가 개인의 삶마저도 착취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 동안 여성주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는 것을 가정에 안주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녀들 역시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못했고, 자본 외적인 것으로 치부해 여성의 사회 진출을 통한 투쟁이 여성해방의 전제조건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가정 내의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임금상태에 있는 전 세계 압도적 다수의 노동과 투쟁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오히려 사회진출에 성공한 그녀들이 실제로 가사노동에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밖에서는 임금노동으로, 가정에서는 부불노동으로 이중의 노동이 더해졌을 뿐이다. 이 책의 1부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함으로써 가사노동도 노동력이라는 상품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며 이 가사노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 여성해방은 다시 자본주의 안에서 머물러 있을 뿐임을 강조한다. 기존의 여성주의가 성취한 평등은 일터에서 죽을 동등할 권리일 뿐이다. 따라서 남녀 모두의 노동조건을 변화시켜야 함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 노동조건의 변화는 공장의 일터가 아닌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이야 말로 자본이 기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1부에서 가사노동의 임금요구에 대한 페데리치의 사유와 실천이 있었다면, 2부에서는 세계화와 관련 재생산노동의 전지구적 재구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축적은 더욱 더 폭력적으로 변화하였고, 그 피해의 중심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심각하게 착취당하고 심지어는 사지에 내몰리는 여성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IMF사태가 터졌을 때, 제일 먼저 국가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떠올리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의 실업으로 여성은 일터로 내몰리게 되었고, 그녀들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모든 일을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했다. 남성들은 자본의 무자비함을 탓하기 보단, 과중하게 부과된 일로 인해 가사노동에 소홀히 하게 된 여성들을 책망했다. 여성들은 매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계화는 여성들 사이에도 계급분화를 조장하여 여성과 남성노동자 연대는 고사하고, 여성연대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신들만의 대안을 찾아왔었고, 서로간의 적극적인 정보공유와 품앗이를 통해 자율적인 조직을 이루어나갔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그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3부에서 재생산/돌봄노동의 “공유지화”(commoning)를 설명한다. 

농업노동자의 다수를 구성하면서 자연자원의 비자본주의적인 사용을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오늘날 여성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투쟁의 관점에서 공유지 사용을 역설한다. 세계화로 인한 자급농업의 파괴와 토지 상업화의 촉진에 대항하여 여성들은 반“세계화” 자급투쟁을 이어왔다. 이 책의 3부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여성들의 세계화에 대항한 투쟁의 역사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기술한다. 그리고 공유지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을 통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공유재 정치를 설명한다. 우리 할머니의 또는 어머니의 도시텃밭은 그녀들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기 위한 그녀들의 노력이 대기업형 농업집단이 경작지를 줄이려는 흐름에 맞서고 작물의 유전자 조작과 농약중독에서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공유지에서 공유재로 이론을 확장하여 좀 더 넓은 영역에서 자본주의 시장에 맞서는 대안들을 모색한다. 공유재는 임금노동과 자본주의적 관계에 대한 종속에 저항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재생산형태들을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공유재 사용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은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실비아는 자신의 또 다른 저작 <캘리번과 마녀>를 인용하며 자신의 사유에 깊이를 더해간다. 여성들이 국가와 남성 개인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재생산노동을 집단화하는 노력은 이 책에서도 그 처절함이 반영되어 있다. <캘리번과 마녀>가 근대 이전 여성들의 상황을 통해 현재의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다면, <혁명의 영점>은 그녀가 살고 있는 현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공유재화”는 노예와 같은 삶에 맞설 수 있는 제1의 저항선이다. 공유재 창출은 임금을 둘러싼 투쟁의 보완물이자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 본질은 자본축적이 막대한 양의 부불노동을 자양분으로 삼고, 무엇보다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부문의 가치절하로 이어질 수 있는 재생산노동의 체계적인 가치절하를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그 자본의 교묘하고 복잡한 함정에 빠져 자신의 사랑과 돌봄을 가족에게 봉사해왔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타고난 “본성”으로 이해되는 한,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가사노동의 분담도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남녀가 서로의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 자신들의 가사노동이 자본에 의해서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불노동인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인종, 젠더, 나이, 지리적 위치에 따라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집합적인 재생산 형태와 같은 “공유”(commoning)의 실천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14년 1월 14일
참세상
한태준(영화연구자)

기사 원문 링크 : h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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