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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는 것

[새책] 마이너리티 코뮌 (신지영, 2016, 갈무리)

 

고봉준 (문학평론가)

 

 

* 이 글은 2016년 4월 10일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0738



마이너리티 코뮌. ‘동아시아 이방인이 듣고 쓰는 마을의 시공간’이라는 친절한 부제(副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리티(minority)와 코뮌(commune)이라는 낯선 개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제목은 독자에게 선뜻 그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 신지영이 2009년 가을부터 2015년 초까지 도쿄-서울-뉴욕의 길 위에서 만난 소수자 마을(minority commune)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한 한국문학 연구자이며, 한때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곳에서 나와 함께 활동한 옛 동료이다. 그녀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고 일본에 건너가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을 계속 공부했고,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마이너리티’와 ‘코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국문학에서 시작된 그녀의 공부가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맥락과 결합하면서, 일본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 속에 놓임으로써, 나아가 지구 전체로 확산된 신자유주의 하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다양한 대중의 봉기와 저항과 마주침으로써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으니, ‘마이너리티’와 ‘코뮌’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되는 ‘소수자 마을’ 이야기는 그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알다시피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인류가 추구해온 수많은 가치들을 일순간 뒤흔들어 놓았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특히 자본과 노동의 지구적 이동은 이 새로운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나라의 운명에 동시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인류는 ‘동시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한국 경제에 직격탄으로 작용하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지금 인류는 한 국가에서 발생한 문제와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가 종종 구별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현상은 지구상 곳곳에서 빈자(貧者)에 대한 부자들의 폭력, 즉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부자와 빈자의 양극화가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경제적 보수화와 반동화를 정책적 기조로 채택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해야 할 장면이다. 이러한 역사적 국면은 지구 곳곳에서 대중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거니와, 이 책의 저자가 ‘소수자 마을’이라고 이름붙인 코뮌의 절대다수도 이 저항과 투쟁의 산물이다. 


그런데 왜 민중, 대중, 또는 노동자계급 같은 익숙한 단어가 아니라 ‘마이너리티’와 ‘코뮌’이라는 생소한 단어일까? ‘마이너리티’는 최근 ‘소수자’라고 번역되어 자주 사용되는 현대적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일부에서는 이 개념을 ‘약소자’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마이너리티의 소수성은 물리적․상징적 힘(권력)의 결여에 달려있지 않다. 질 들뢰즈가 소수적 문학과 주변적(marginale) 문학을 구분한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소수성은 다수성(주류) 안에서 그것의 척도로부터 이탈하는 일종의 대안적 흐름에 부여된 이름이다. 마이너리티를 ‘약소자’라고 부를 때, 거기에는 그것이 지닌 척도에 반(反)하는 긍정적․능동적 역량이 드러나지 않는다. 소수자/소수성이라는 술어가 사용되는 용례를 살펴보라. 이 책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듯이 마이너리티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또는 자본주의의 가치법칙과 다른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개념에 대한 오해는 ‘코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공동체’의 동의어 내지 ‘공산주의’의 완곡한 표현 정도로 이해한다. 물론 ‘코뮌’이라는 개념이 그것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코뮌’은 공산주의적인 맥락과 일치하지 않으며, 흔히 ‘공동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동일성이나 공통성을 지닌 내부결속적인 집단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공동체’라는 익숙한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뮌’이라는 낯선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공산주의, 공동체와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마이너리티 코뮌』에 등장하는 수많은 코뮌들은 공통적인 모델도 아니고 심지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집단도 아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집회 현장에서 늘 경험하고 있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코뮌들에는 이질적이고 외부적인 요소가 많아서 그것을 하나의 단일한 이념이나 욕망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다양한 이념과 욕망이 접속하고 충돌하는 다소 일시적인 집합적 신체의 형상에 더 가깝다. 이진경은 『코뮨주의』에서 코뮌의 ‘공동(성)’을 여러 개체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한 성질이 아니라 “복수의 개체들이 함께 경험하는 어떤 촉발이나 행동에 의해 야기되는 공동의 감응(affect)을, 그리고 그 감응이 잠재화된 것”(308)이라고, “코뮨은 이런 공동성을 생산하며, 역으로 이 공동성에 의해 작동하고 발전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설명은 『마이너리티 꼬뮌』에 등장하는 ‘코뮌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코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지 않다. 오늘날 지구 전체가 신자유주의적 통치로 인해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만 몇몇 활동가나 일부 사회학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식인은 이 신음과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모든 고통은 극단적으로 개인이나 해당 집단의 불행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개인은 권력의 생산물이다.”라는 푸코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개인’이라는 강력한 칸막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너리티 코뮌』은 이처럼 개별화된 고통과 불행을 동일한 평면에 위치시킴으로써 그것들이 지구 전체가 공통적으로 또 동시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하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 대륙 저편의 어딘가에서 우리와 비슷한 문제로 고통 받고 저항하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책은 말한다. 아무나의 고통/저항이 우리의 평온한 일상과 무관한 예외적인 불행이 아니며, 정면으로 ‘응시’하기를 거부했던 태도를 벗어나면 실상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의 일부라고. 저자에게 ‘기록한다는 것’은 타자의 삶과 마주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소수자 마을’은 이러한 마주침을 통한 점령, 점령으로서의 마주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이너리티 코뮌』을 읽으면서 나는 ‘기록’과 ‘마주침’을 동일한 평면에 놓고 상상했다. 저자는 기록을 시작하게 만드는 힘에 대해 “이 갈등하며 솟아오르는 힘들을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는 이끌림이 글쓰기의 일차적 동력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끌림, ‘기록한다는 것’은 타자의 삶에서 촉발된다는 것이니 그것은 결국 나의 삶을 타자를 향해 개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에게 ‘기록’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것에 있다. ‘기록한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는 타자적 삶의 영향에 눈감지 않는 것, 그것에 촉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록’의 중요성은 기록할 ‘내용’이 아니라 ‘기록하는 행위’의 수행성에 있다.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멈추지 않는 지속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쩌면 ‘코뮌’이란 모든 마주침의 공간에 부여된 또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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