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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 2019.5.31] 냉소 너머의 접속과 상상력의 힘 / 권혜린(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박사수료)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e_text&ps_boid=255


최근에 문학과 문화 연구의 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정동(affect) 개념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특정 진영에서 대중을 선동하는 정동이나 “국가-자본에 의해 횡령”(9)되는 정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살아 꿈틀거리는 생동감 있는 정동은 (의식하기 전에) 대중 스스로에게서 촉발된 촛불의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듯 긍정/부정,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양가적인 정동은 유의미하고도 흥미롭지만 막상 현실 또는 문학에 적용하기에는 명징하게 포착 불가능한 용어 자체의 난점이 장벽이 되기 쉽다.

이때 이 책은 정동을 구체적인 텍스트와 현실의 사건들에 적용한 풍부한 사례집이자 해석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특히 스피노자, 들뢰즈, 마수미로 이어지는 정동은 전개체적인 것이며, 신체와 신체의 접촉이자 영향을 주고받는 운동이므로 『움직이는 별자리들』이라는 제목에서 ‘움직이는’이라는 과정 중의 동사는 적절하다. 별자리 역시 시의성을 반영한 현실과 문학의 사건이 다채롭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단어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만들고, 오히려 별자리도 이동시키는 와중의 시대”(47)를 반영하는 단어인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을 관통하는 ‘이행’ 역시 한 군데에 정주하지 않고 유동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윤이형, 한강, 은희경, 조남주, 최윤, 배수아, 김유진 등 한국 소설에 관한 비평과 촛불, 세월호, 강남역, 미투 등 현실에 관한 비평과 루이제 린저(교양소설), 문예지 등 문학 장과 문예공론장에 관한 담론 비평까지 『움직이는 별자리들』에 실린 글들의 주제들은 분류하기 어려우며 다만 배치될 뿐이다. 그러니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방대한 책에 관한 서평을 쓰는 작업 역시 나름대로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것만 가능할 듯하다.

대표자의 불가능성과 당사자의 가능성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대표자가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대의 민주주의로서 정치를 위임하였으나 몰락의 사건 앞에서 촛불이 점화되었다. “대의되지 않겠다고 촛불을 들고 직접 자신을 드러낸 이들은 절대민주주의의 원리와 가능성을 상상케 하는 존재”(78)이듯이 문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학의 대표자로서 작가와 평론가 등의 전문 독자에게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독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읽고, 쓰고, 평하면서 직접 발화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포스트 대의제’의 시대인 것이다. “독자는 균질적이지도 않고 일관되지도 않은 존재”(76)이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작가, 독자, 평론가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문단과 문예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동들을 통해 독자와 매체와 시대에 대해 다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진단 자체로만 본다면 우려가 가득해 보이지만 저자의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역량들을 발견함으로써 잠재성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표자가 없다면, 즉 전문가라는 구심점이 없다면 모든 것은 별처럼 흩어져 버리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새로운 별자리들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기능부전’을 지적하되 당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또 다른 ‘회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표자에게 주권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잠재성들의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는 연결되고 접속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 작가와 독자와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접속에는 미디어도 포함된다.


공론장에서 주변적이거나 ‘관용’의 대상이었던 여성(퀴어)의 문제의식과 그 예술이 확연히 가시화되었고, 기존 언설체계 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기입하며 문학의 의미를 보충하고 조정해가고 있다. (…) 이것이 평론의 언어 혹은 이름 있는 기성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작가 지망생, 독자의 경험과 고발 등에서 시작된 것도 기억해야 한다. (…) 공론장 안팎의 네트워킹을 통해 가능했던 점도 함께 말이다. (…) 지금 여성, 퀴어의 목소리는 문단 안팎의 분산된 힘들과 다양하게 교차, 교류하며 역량을 발한다. (33-34)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마저 공론장에서 “여성성장, 여성형성, 여성교양소설”(359)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공론장에서 주변적이거나 ‘관용’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이러한 공론장 역시 움직이고 있다. “모두가 동등하게 공적 발화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상상적 믿음이자 이념”(356)을 주었던 불안정한 공론장이 그동안 대표자의 자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여성(퀴어), 작가 지망생, 독자들의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힘과 역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상상의 공동체인 공론장 너머의 ‘공통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공통장, 그리고 ‘나-우리’

신자유주의하에서 개인의 위기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되고, 공동체의 역할을 의문에 부치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포스트 개인(post individual)을 말하며, 또 다른 공통성을 사유하는 방식으로서 공통장(commons)과 ‘나-우리’를 이야기한다.

포스트 개인으로서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개인은 더 이상 ‘통합된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로 분할되는데 이때 정보의 범위 역시 확장된다. 나아가 동일성을 띤 공동체가 불가능해짐으로써 밀실/광장의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역동성이 펼쳐진다. 이렇게 주체도, 타자도, 개인도, 공동체도 동요하지만 이는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잠재성의 영역으로 등장한다.


‘공통장’을 만들어간다는 상상력은 (…) 주어진 정체성이나 주어진 공통성 너머를 지향한다. 이때 진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공유해온 어떤 특징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고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즉 ‘가능성으로서의 무언가’를 구축하려는 의지와 마주침이다. (…) ‘공통장’을 ‘창조’하려는 의향과 노력은, 우리가 각각의 특이성을 유지하고 각자의 차이가 차이로 남으면서도, 동시에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대항력이자 구성력이 될 수 있다. (151)


이렇게 “아직 공유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가는’ 공통의 도구나 의지(the common)”(90)로서의 공통장은 선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명확한 대상이 있는 공포와 달리 불확정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한정하게 주어진 자유를 버리고 재선택하는 국가, 민족, 인종 등 “자기 생의 주권을 양도할 또 다른 초월적 대상”(309)과는 결이 다르다. 저자가 김유진 등 최근의 소설들에서, 그리고 현실들에서 읽어 낸 우리 시대의 정동인 불안을 손쉬운 안정으로 떨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존재와 세계에 관한 상상력을 손쉽게 거세할지 모른다.

그러니 시스템에 재포섭되는 무늬만의 극복이 아니라, 대표자에게 위임되어 대표자 외의 존재들을 일개 구성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접촉하고 접속하여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대항력’이자 ‘구성력’이라는 힘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접속하느냐에 따라 ‘나-우리’도, 세계도 달라지므로 이 힘 역시 예상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상상력에 접속하기

위에서 ‘만들어간다는 상상력’에 관해 인용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상상력이다. 접속하며 공통장을 함께 구성해 나가면서 드러나는 잠재성의 기저에는 상상력이 있다. 저자가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을 통해 말하는 ‘생의 창조’(310)도 이에 따라 가능할 것이다. 상상력이 있는 한, 끝까지 냉소하지 않을 희망이 있으며 이에 따라 저자는 쉽게 냉소하지 않는 미덕을 보여 준다. “혹자는 우려하고, 혹자는 냉소할지 모른다.”(94)라고 저자가 말한 것을 약간 변형해 보자면, 우려하되 냉소하지 않고 새로운 힘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힘은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을 힘들의 증감, 즉 ‘존재력(ontopower)’에 관한 것”이기에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들, 생물과 무생물 등의 경계 이전에, 그리고 그것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힘”(9)이다. 심지어 “인간의 잡종성을 증거”(447)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저자는 “인간은 언제나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었는지도 모른다”(447)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한없이 비루한 인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없이 우월한 인간이 애초부터 불가능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존재력이 인간에게만 있을 리 없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생각에서 나타난 상상력은 윤이형의 소설에서처럼 일상 속에서 ‘은폐된 것’을 발견하게 하는 능력이다. “이미지에 대한 능력이며, 형태를 만드는 능력”(451)으로서 ‘다른’ 것을 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혐오에 기반한 반난민집회와 백래시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상황에서 섣부른 비판보다 객관적인 진단과 함께, 이러한 상황에서 구성되는 사건들에 주목한다. 상상력은 배제나 혐오가 아니라 “특이성의 존재들끼리 접속하고 서로 겹치고 분리되는 마주침, 그리고 제3, 제4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네트워크의 다른 표현”(327)인 공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란 나의 감각적 경험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힘이다. 이곳에서 저곳을, 저곳에서 이곳을 연결 지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또한 현재의 시간과 과거 및 미래의 시간을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 상상력은 나와 타자의 간극을 조정하고 나의 존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매개다. (326)


이는 “자기 삶을 절단하고 ‘다른 삶’과 접속”(92)할 때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힘과 이어지며 이때 “‘나’와 ‘세계’를 동시에 사유‧상상할 가능성”(93)을 보여 준다. 광장, SNS에서의 움직임과 더불어 저자가 『마이너리티 코뮌』에서 읽어내듯 시와 소설 중심의 ‘장르피라미드’를 벗어나 “거리와 현장에서 신체와 신체가 마주치면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어떤 운동‧운동성”(318)으로서 “서로 만나고 느끼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이행’, ‘변이’의 과정”(318)이자 “흘러넘치는 정동(affect)”(318)인 것이다.

이러한 마주침들을 긍정하고 접속 너머의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현실도, 새로운 문학도 가능해질 것이다. 『움직이는 별자리들』은 그 새로움을 위한 정동-쓰기의 흔적이다. 그러니 이 책과의 마주침을 통해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지 또한 예측 불가능하며, 다만 예고할 수 있는 것은 관계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잠재성일 것이다.





『움직이는 별자리들』 | 김미정 지음 | 갈무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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