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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9.1.2] 영화해석의 새 지평 연 『투명기계』…눈부신 표면의 정치를 꿈꾸다 / 전성욱 (문학평론가,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92


내가 이 난해하고 복잡한 책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기이하고 견고한 낯섦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떠한 무엇은 그 앞에서 그렇게 견뎌내기를 요구함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한다. 예컨대 란츠만의 <쇼아>는 아홉 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 앞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그 영화는 막대한 질량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냄으로써만 겨우 가늠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여겨졌다. 이 한 권의 책에는 내가 감히 감당하기에 벅찬 무수한 고유명들이 난무한다. 붙잡으려할수록 붙잡히지 않는 아득한 이름들이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 마침내 해석의 욕망 속에서 완전히 소진되고 난 뒤에야 생각할 수가 있었다. 그 막대함과 번다함이 ‘해석’에 반대하는 일종의 날카로운 저항일 수 있다는 것을.

투명기계는 전체로 수렴될 수 없는 파상(破狀)적인 부분들의 모자이크이다. 해석의 욕망이 전체의 상을 움켜쥐려는 오만한 자의식라고 한다면, 이 책은 분명 그런 자의식을 야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므로 정복의 야욕처럼 해석의 완수를 바라는 자는 이 막대한 이름들의 나열 앞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 깊숙한 좌절의 통각이 아니라면 이 책을 굳이 읽어야 하는 이유란 무엇일까. 그처럼 감당하기 힘든 것을 견뎌내야만 하는 책읽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숱한 텍스트들을 겪어냈을 그 저자의 존재론적 죽음과 깊이 연루하는 것이 아닐까. ‘김곡’이라는 저자의 고유명. 무수하게 많은 것을 보아냈고, 읽어냈고, 결국은 견뎌내야만 했을 그 사람.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책의 저자로서 그는 이미 여기에 없다. 이른바 저자의 죽음, 그의 고유명은 그가 인용한 또 다른 고유명들의 연쇄와 충돌 속에서 찬란하게 파열하였으리라.

김곡이라는 주체성을 통과한 이름들, 그 고유성의 경험을 편집한 것이 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어떠할까. 나는 바로 그 편집의 흔적 속에서 저자의 존재를 흐릿하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무수한 고유명들의 목록으로 존재하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떠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책은 분명 김곡이 쓴 영화의 ‘역사(들)’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유기체적인 전체의 통사가 아니라 김곡이라는 고유명을 투과한 파편들의 역사이다. 그는 상투화된 사조와 유파와 장르의 편견을 온몸 혹은 맨몸으로 관통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투명기계’는 영화라는 일종의 장치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김곡이라는 주체성을 호명하는 이름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그 이름들을 견뎌냈던 것일까. 아니, 정말 그는 그 이름들을 제대로 견뎌내기나 한 것일까.

유기체가 아닌 기계라는 개념을 더듬거릴 때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 들뢰즈라면 진부하다 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시네마의 저자 들뢰즈의 비역질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뇌는 스크린이고, 영화(철학)는 철학(영화)이다. ‘화이트헤드와 영화의 소멸’이라는 선명한 부제. 어쨌거나 저자가 선택한 것은 베르크손이 아니라 화이트헤드였다. 그러니까 이 책의 안팎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고유명들, 곧 김곡의 이질성에 대한 경험들을 아우르는 것은 ‘합생(concresence)’이다. 합생은 심도와 사물, 주관과 객관을 절합하는 개념의 장치이자, 변신하는 원자의 관계론으로써 존재하는 ‘표면’에 이르는 한 갈래의 길이다.

난삽한 고유명들, 어지러운 경험의 파편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의 편집체계는 다소 허탈할 정도로 일관되고 평면적이다. 1부 ‘과거와 소멸: 표면과 몽타주에 대하여’, 2부 ‘현재와 속도: 틈새와 프레이밍에 대하여’, 3부 ‘미래와 평행: 풍경과 내러티브에 대하여’, 4부 ‘영원과 변신: 막과 무대에 대하여’. 그러나 그 체계의 일관성이 무지막지한 동일성의 사태인 것은 아니다. 과거(폐쇄회로)에서 현재(스트로크회로)와 미래(병렬회로)를 거쳐 영원(변신회로)으로 흐르는 저 시간의 직선적인 일관성은, 기실 ‘편집’으로 배열되는 순수한 관계의 영화적 시간을 유비(類比)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존재와 사건을 본질적인 것으로 실체화하는 추상적인 시간의 관념에 저항한다. 그것은 지금 이 표상의 세계 속에서 인형처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그 본질적인 추상의 관념을 구체적인 원자론으로 되살려내려는 화이트헤드의 시간론을 표현한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명제는, 그렇게 표면들의 합생을 실행하는 영화적 운동의 중추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공리는 이렇게 펼쳐진다. 소멸하지 않는 것은 불투명하고, 불투명한 것은 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변신하는 영화의 존재론은 ‘투명기계’라는 명징한 개념으로 압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은 ‘소멸’함으로써 ‘변신’하는 ‘현실적 존재’의 투명성, 다시 말해 불투명의 연극적 재현을 통해 투명을 제헌하는 영화의 정치성에 대한 사유로 뻗어나간다. 그것이 이 난해하고도 난삽한 책의 귀결이다. 과거에서 영원으로, 소멸에서 변신으로의 비목적론적(비본질적)인 흐름은, ‘시간의 무대화’라는 영화의 ‘연극적 본성’을 통해 마침내 현실적 존재로서의 ‘표면’에서 만난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표면은 재현이 일으키는 간격이고 간극이다.” 그래서 표면화는 곧 ‘시간’의 분할과 ‘회로’의 분류로 무대화되는 ‘재현’의 연극화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또 이렇게 적음으로써 투명기계의 정치적 함의를 요령껏 정리하였다. “영화의 정치는 재현의 문법에 고통 받되, 그 고통의 반복과 변주로 그 법을 변형하고 개헌함으로써, 재현에 내재된 제헌권능을 다시 소환해내는 데에 있다.” 요컨대 영화의 연극적 본성인 시간의 무대화가 곧 재현이므로, 표면을 불러일으키는 그 재현으로 인해 영화는 소멸되는 것의 변신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제헌의 정치적 역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통해 영화의 정치철학을 정립한다.

이해 불가능한 책의 이해, 해석에 저항하는 책의 해석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정리되지 않는 것의 현실적 존재는, 바로 그 서투른 정리의 한계를 통해서만 자기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저 무수한 태양광선을 겨우 일곱 개의 빛깔로 추출(정리)하는 이 표상의 세계에서, 다만 그 추출의 우악스러움에 분노하는 것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현과 대의의 불가능성을 아포리아의 언술로써 속삭이는 것만으로 점잖게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읽을 수 없는 책을 읽어내기, 그렇게 읽을 수 없는 것의 현실적 존재를 가늠하는 것은 오독을 무릅쓴 읽기의 실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김곡이라는 저자는 인용의 과잉 속에서 사라져버렸지만, 그를 투명하게 통과하고 지나간 것들이 남긴 불투명한 찌꺼기들을 속에서 나는 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었다. 주관(저자)의 과잉이 주관(독자)의 과잉을 부르는 주체의 죽음을 확인하는 읽기. 그처럼 관념이 죽은 곳에서는 표면의 구체성이 눈부시게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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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기계 | 김곡 지음 | 갈무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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