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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저널 2018.07.04] 우리 사회의 정치 실험을 상상한다 / 이수영 (미술작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us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37


70년대 등장한 개념미술, 플럭서스 등의 활동 이후 우리시대 미술은 그림이나 조각 같은 사물을 작품으로 생산하는 분과적 전통 미술에서 이미 많이 자유롭다. 랏자라또가 말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물질노동에 의한 자본축적이 아닌 비물질노동이 비가시적 가치를 생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이기 때문일까. 이 비물질 노동은 물질형태의 상품이 아닌 욕망, 정보, 정서 등의 상품을 생산한다. 우리시대에 비물질 미술은 교육, 복지, 관광 문화 상품으로 나타난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을 벽화그리기, 지자체 관광 상품을 위한 지역 스토리텔링 미술제,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창작 프로그램 등이다. 복지부, 문화부, 지자체의 공모와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메가급 엘리트 미술제 역시 관광 상품 혹은 한국 미술의 세계 시장의 역할에 재원의 타당성을 두고 있다.

지원이 있는 곳에 작가들은 몰린다. 예술가들이 돈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을 한다는 그 허약하고 불안한 정체성을 안전하게하기 위해서이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는 것이 예술 활동과 예술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관습이다. 이에 더하여 예술 공모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그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이 ‘나는 예술을 하고 있다, 나는 예술가이다.’라는 예술가 주체성을 구성해 주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이력서엔 참여한 전시 경력과 함께 각종 공모와 공공기관의 재정 지원 리스트가 들어간다. 랏자라또가 말하는 주체성의 빈곤화이다. 뒤샹을 빌어 랏자라또가 말한 ‘예술’, 즉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창조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의 예술은 아니다. 물론 몰단위의 예술계의 규율과 분배라는 그 장소가 바로 분자 단위의 관계적 미학이 일어나는 바로 그 곳이겠지만. 예술은 돈을 벌어 생활을 하기 힘든 활동이고, 예술가는 사회적으로 소속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스스로 창작 동기를 일으키기 어렵다. ‘내가 예술을 하고 있다, 나는 예술가이다’라는 능동적 삶은 힘들다. 전시회 같은 관습 혹은 공모 당선과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수혜라는 외부적 분배와 규율에 속하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혹은 지자체 예술발전기금등의 신청요강이 주도하는 대로 창작은 쏠린다. 공공미술 지원책정이 많으면 많은 작가들이 공공미술을 하게 되고 융복합예술 지원 제도가 많아지면 융복합 예술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하고 있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예술의 개념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노동형태인 비물질 노동이 생산하는 교양, 문화, 언어, 자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적 두뇌인 사회의 형성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 ‘누구나’의 예술은 지금 시민축제와 관광, 여가 상품의 근간이 되고 있기도 하다. 미술관은 시민참여와 대중교육의 형태로, 지자체는 관광 상품으로의 지방 축제 형태로, 기업은 사회 환원의 차원으로 다양한 시민 참여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예술가들을 고용한다. 문화부 산하 예술복지재단은 예술가 일자리 창출과 ‘누구나 예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지자체, 기업, 공공단체들에게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어 예술가들을 고용하게 한다. 그 예술가들의 임금은 예술복지재단이 지급하고 있다. 예술가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재정 지원을 받으려면 예술가임을 인정받아야 등록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연주회 혹은 전시회를 했던 카탈로그 등의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문래동은 소규모 공장이 많이 밀집한 곳으로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많아 미술가들이 많이 작업실을 얻으며 자연스럽게 생긴 예술 단지이다. 서울시는 문래에 문래예술공장이라는 창작지원센터를 만들어 문래동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은 기업과 서울시 매칭 펀드로 억 단위의 기금이 마련됐다. 창작 지원 프로그램과 운영도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문래 지역 예술가의 분류 자격, 수혜 방식을 놓고 갈등이 증폭되고 배제되는 작가들도 생겼다.

하지만 분자단위의 특이성들을 실험하는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이 이상한 단어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피곤하고 힘든 노동과 퇴근 후 일상적 삶의 분리. 이 단어는 화해할 수 없는 이원체계의 갈등을 표상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생긴 단어일까. 아니면 일하고 있지 않은 시간마저도 소비로 조직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일까. 퇴근 후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면 노동의 고통스런 시간이 해결될까. 시간에 대한 규제는 주체성을 획일화하고 동질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랏자라또는 말한다. 주체성의 빈곤화는 우선 시간의 빈곤화라고 한다. 변화의 가능태 창조의 원천으로서의 시간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노동소외와 주체성의 종속은 동시에 저항 양식들과 대항 주체 또한 형성한다는 점을 랏자라또는 정성을 기울여 서술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저항 주체들의 운동이 자본주의 통치술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통치하고자 하는 운동과 통치 받지 않으려는 두 운동은 서로 기대고 있다. 권력과 욕망은 같다. 일상을 구성하려는 개체화 전략과 스스로 통치하려는 개체화 욕망은 같다. 통치 받을 때 그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작동한다. 욕망은 이때 발생한다. 욕망은 이 수준에서 작동한다.

랏자라또의 『정치 실험』에서 ‘정치’는 정치, 경제, 문화라고 보통 말할 때의 분과적 의미의 정치는 아니다. 그것은 모든 관계의 구성과 운동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타자통치와 자기 변형,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윤리, 자기 배려를 일컫는다. 세계생산과 주체생산. ‘실험’은 그런 관계 구성의 사건들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의지의 펼쳐짐이다.

나는 위에 우리시대 예술계의 부정적인 것만 말했다. 사실 싱싱하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치 실험들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랏자라또의 예술가-영매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확언과 행동을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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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험 |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 주형일 옮김 | 갈무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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