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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저널 2018.05.23] <노예선>을 읽고 / 김영철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usjournal.kr/News/95393


책이나 매체를 통해 노예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서,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노예들과 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예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런데 망망대해에 떠 있는 노예선에 대해 상상해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배는 섬처럼 단절되어 있어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군가 노예선에 대한 책을 엮어내려 한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가 지었고, 갈무리 출판사에서 나온 <노예선>이란 책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책 덕분에 노예선의 항해와 배 안에서 일어나는 흑인노예들의 삶에 관련된 사건들을 알 수 있었다.
지나간 역사적인 사건들, 공간적으로 육지와 떨어진 배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앎들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선원들의 경험담을 기록한 자료들, 항해일지, 노예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조사활동을 벌인 연구자의 자료들, 전해져 오던 이야기들과 같은 수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풍부하게 구성한다.
항해일지를 통해 노예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존 뉴턴이 선장인 ‘아프리칸’호는 1752년 6월 30일에 리버풀을 떠났다. 아프리카의 해안에서 노예를 모으는데 8개월 반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으며, 선장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세인트 키츠’에서 노예들을 팔았고, 1753년 8월 29일에 리버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배에서의 1년 2개월은 육지에서 흘러가는 평상시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간일 것이다. 그것은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간이며, 갖가지 사건 사고가 기다리는 시간이다. 저자는 항해의 준비 기간부터 항해를 마치기까지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을 기술함으로써, 독자들을 대양을 항해하던 낮선 배로 인도한다.

항해기간 동안에는 선원들과 노예들은 배안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배는 삶의 터전과 같은 공간이 된다. 그래서 특히나 장기간 항해에서 배의 구조는 선원들과 노예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노예선은 어떻게 생겼을까? 노예들을 위해 활동하던 사람들과 위원회가 제작한 배의 그림을 통해 노예선의 구조를 엿볼 수도 있다.

노예들을 가두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으며, 더 많은 노예들을 나르기 위한 탐욕 때문에 그들에게는 매우 비좁은 공간이 할당되었다. 노예들을 감시하거나 그들의 반란과 탈주를 막기 위한 구조도 필요했다. 노예들이 오랜 시간 배에서 생활할수록 사망률이 높아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항해 속도가 빠르게 배를 만들어야 했다.

저자는 노예선을 만드는 과정, 노예들의 공간, 노예 한 사람당 할당된 공간의 크기, 탈출 방지 시설, 반란 대응 시설 등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노예들의 삶의 조건들이 어떠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노예선의 선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선주나 선장은 노예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거나 한 몫 챙길 수 있지만, 일반 선원들 대부분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이들은 노예를 감시하고 때로는 노예의 반란이나 탈주에 직면해야 했으며, 장기간의 항해에서 얻게 되는 병과 영양결핍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이들은 노예를 감시하고 핍박하지만 때로는 노예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저자는 노예선과 관련한 역사를 한편의 서사극에 비유한다. 어떻게 한편의 서사극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흑인 노예들, 선원들, 선주와 선장들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간 군상들이 노예선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저항을 둘러싼 거대한 흐름에 합류한다. 그리고 잔혹한 억압과 장엄한 저항의 몸짓이 연출되었던, 특이한 구조의 노예선은 서사극이 상연되는 무대가 된다. 이 책은 노예의 역사에 관한 객관적 사실의 기술을 넘어서, 그 장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따듯한 손길들을 그리고 있다.

노예선과 관련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했다는 것 못지않게, 그 역사를 서사극과 같이 기록했다는 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선에 관한 서사극을 읽고 나서, 노예들의 삶에 관한 소중한 단편들이 아직도 현대의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간직하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조각들을 또 다른 <노예선>을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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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선 | 마커스 레디커 지음 | 박지순 옮김 | 갈무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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