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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2018.3.14] 의식이 존재하는가? 합리론과 경험론의 간극 / 김영철(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s://goo.gl/fmc8Fh


이 책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1912)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가 1907년에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모아 둔 그의 글들을 랠프 바튼 페리(Ralph Barton Perry)가 편집한 책이다. 제목에서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이름이 눈에 강렬하게 들어온다.

이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의식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는 뭔가 도전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의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원자들이나 분자들과 달리, 양적으로 객관화시킬 수 있는 데이터를 의식에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런 의식이 ‘존재한다’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기를 밥 먹듯이 하니,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의식의 존재 여부’와 같이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 자원이 풍부한 광맥을 파들어 가는 작업에서처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작업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본다.

제임스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 상식의 관점에서 ‘의식’과 ‘물질’은 언제나 대비되어 왔으며, 철학에서도 처음에는 의식과 물질이 중요성과 관심 면에서 매우 대등한 한 쌍의 실체들을 대표했었는데, 칸트가 나타나서 영혼을 약화시키고 선험적 자아를 도입하자, 그 후로 양극적 관계는 상당히 균형을 잃게 되었다. 선험적 자아는 오늘날 합리론 진영에서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경험론 진영에서는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되었다.

의식이 존재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는 의식이 어떤 기능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의식의 기능이란 앎이며, ‘의식’은 사물이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알려지고 인식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전제된다.

일견 ‘의식이 존재는 아니지만 앎 기능이다.’라는 말에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제임스가 기능에 대해 하는 말들을 더 따라가 보자.

“병에 담겨 다른 물감들과 나란히 진열된 그것은 온전히 상품이다. 반면 다른 물감들과 더불어 캔버스 위에 펴 바르면 그것은 그림 속의 어떤 형상을 표상하고 ‘정신적 기능’을 수행한다. ‘분할되지 않고 주어진 경험’의 부분도 그와 마찬가지로 ‘연합의 어떤 맥락에서’ 취해지면 인식하는 자의 역할, 마음의 상태의 역할, ‘의식’의 역할을 한다. 반면 ‘경험의 분할되지 않은 같은 부분’은 ‘다른 (연합의) 맥락에서’ 인식된 사물의 역할, 객관적 내용의 역할을 한다.”

그의 설명을 보면, ‘연합의 어떤 맥락에서 취해진 경험’은 ‘의식의 역할’을 하고 “연합의 또 다른 맥락에서 취해진 경험”은 사물의 역할, 객관적 내용의 역할을 한다. ‘분할되지 않고 주어진 경험/연합의 맥락에서 주어진 경험들’이란 대비 관계를 볼 수 있고, 연합의 맥락은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2장은 “순수경험의 세계”라는 장이다. “순수경험”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순수경험은 앞에서 본 분할되지 않은 경험과 같은 것이다. 순수상태에서 혹은 고립되어 있을 때 경험은 의식과 의식의 대상인 것으로 자기분열하지 않지만, 경험이 연합의 계열로 나타날 때 의식과 의식의 대상은 실현된다.

그는 한 점에서 만나는 두 직선의 비유를 들어, 의식과 의식의 대상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우리가 방안에 앉아 주위를 둘러볼 때 그 방은 사물들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시에 그 방은 우리의 마음이 지각하는 그 방인데, 두 직선의 교차 지점에 있는 점이 두 직선에 각각 온전히 속하는 것과 같이, 그 방에 대한 ‘순수경험’이 그 방을 서로 다른 연합에 각각 연관시키는 두 과정의 교차점이라면, 그 방은 사물의 연합과 의식의 연합에서 두 번 헤아려질 수 있다.

한 점에서 만나는 두 직선의 비유를 가지고, 의식 연합의 계열과 사물 연합의 계열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이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선마다 한 가지 색을 칠할 수 있다면, 그래서 파란색의 직선과 붉은 색의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게 되면, 그 점은 파란색의 직선에도 속하고 붉은색의 직선에도 속하게 된다. 두 직선이 만나는 그 점은 아마도 보라색을 띨 것이다. 동일한 보라색의 점이 파란색 직선에도 속하고 붉은색 직선에도 속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파란색과 붉은색 보라색은 색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사물과 의식은 붉은색과 파란색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어떻게 두 쌍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 있는가? 사물은 딱딱하거나 무르거나, 짧거나 길거나 할 수 있는데, 의식은 그런 성질들을 갖고 있지 않다. 아주 그럴듯한 반문이다. 이런 반문에 대해 제임스는 어떻게 보면 대담하다고 할 수 있는 주장을 펼친다.

사고와 사물 둘 모두는 부분을 가질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사고가 부분을 가지는 것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둘 다 복잡하거나 단순할 수 있다. 심리학 서적의 지각에 관한 장들은 사고와 사물의 본질적인 동질성을 향한 사실들로 가득하다. 고통스러운 대상에 대한 경험은 통상 고통스런 경험이며, 사랑스러운 것에 대한 경험은 사랑스러운 경험이고, 추한 대상에 대한 경험은 추한 경험이이다. 사물의 연합이 의식의 연합과는 다르지만, 둘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는 없다.

제임스는 자신의 경험론을 일반적인 경험론과 구별하여, “근본적 경험론”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경험론이 근본적이려면, 그것을 구축할 때 직접 경험되지 않은 어떤 요소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직접 경험된 어떠한 요소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 경험론자들에게 사물들 사이의 ‘연합’이나 ‘관계’는 실제적인 것으로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연합, 관계는 사물들 사이의 ‘분리’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경험론 및 합리론의 주장과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경험론자들은 사물들 사이의 ‘실제적인 연합이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란 것은 실제로는 없는 관계이지만, 습관적인 관찰에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와 같은 비실제적인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합리론자들은 초경험적인 작인들, 즉 실체, 지성적 범주와 지성적 힘 또는 ‘자아’를 추가함으로써 산산이 부서진 경험의 세계를 통일하려고 한다.

제임스는 이어지는 장들에서, 마음과 마음의 관계, 근본적 경험론의 진리관, 근본적 경험론과 실용주의 및 인본주의 사이의 관계, 근본적 경험론 비판에 대한 반박 등의 내용을 다루면서 근본적 경험론의 기초를 놓고 있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해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조류가 등장해서, 신선한 관점을 전개하고 다듬어 감으로써, 경험론과 합리론이 각각 큰 흐름을 이루던 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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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 윌리엄 제임스 지음 | 정유경 옮김 | 갈무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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