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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뉴욕 거리에서 시위하는 여성들. 피켓에는 ‘싱글실업여성연합’ ‘우리는 직장을 원한다!’ ‘싱글 실업 여성을 위한 공공사업 일자리!’ ‘우리는 잊혀진 여성들입니까?’라는 문구가 써있다.




[여성신문 2017.09.21] 뉴딜은 어떻게 여성의 가사노동을 착취했나 / 여사라 (시민단체 활동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s://goo.gl/uasQ5B


『집안의 노동자』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가능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그 정책이 빛을 보기까지 그림자 속에서 격렬하게 투쟁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 특히 여성을 다룬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선언처럼 뉴딜 정책은 대공황 이후 실업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자들의 전방위적인 투쟁과 연대 끝에 이뤄낸 것이었다.

책을 쓴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여러 서신, 공문서 등 방대한 문헌을 참조해 후버 정부의 방임 아래 고통 받았던 노동자 계층의 어려움과 긴 투쟁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그 투쟁의 열매로서의 뉴딜과 사회보장법의 등장을 충실하게 기술한다.

여성을 포함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뉴딜을 위시한 여러 정책과 국가와 노동자 간 관계와 노동 재생산에서 국가의 역할 자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모든 과정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뉴딜 정책을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새롭게 조명한 것에 있다.

뉴딜 정책 하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큰 정부’는 여성과 여성 노동을 비롯한 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노동 재생산과 사회화에 있어서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을 억제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이전 노동부 장관 제임스 데이비스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은 더 고상한 삶의 영역에서 더 숭고한 의무를 책임지고 있다. 이브는 아담의 동반자이자 배우자로서 모든 면에서 아담과 평등하지만, 미래를 위해 이브를 보호하고 부양하는 일은 아담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성이 가정에서 국가의 운명을 이끌었으면 좋겠다.”(69쪽)

이런 정부의 방향성은 결혼을 이유로 여성을 해고하는 법률을 도입하고 ‘남편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 여성을 고용할 때 차별을 허용하는’ 등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출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사업진흥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는 빨래, 다림질, 장보기 외에 전문성 있는 내용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구현됐다.


▲ 1958년 파업 현장의 아이들과 여성들. ‘우리 엄마의 피켓라인을 넘지 마’, ‘우리 엄마는 파업 중’, ‘학교 끝나서 엄마를 돕는 중’라고 써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집안의 노동자』는 이처럼 점진적이면서도 치열했던 ‘자본과 노동자라는 두 전선 사이의 갈등’과 노동자 중에서도 더 차별받고 억압되었던 여성의 삶, 그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과 노동자라는 두 전선 사이의 갈등’ 패러다임은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뉴딜이 부상하기 전 미국처럼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더 심해져만 가는 형편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을 등에 업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비로소 빛을 보았듯이, 여러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불합리성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응집된 ‘촛불 혁명’으로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축, 즉 정부에서는 복지 국가를 주창하며 최저임금과 노인연금 인상 등을 비롯한 정책을 연일 내놓고 있고 다른 한 축에서는 이를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를 두고 ‘빨갱이’라며 색깔론을 펴기도 한다. ‘근로 시간 제한과 최저임금 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며, 이러한 요구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주장이라며 묵살’했던 뉴딜 이전의 미국 사법부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에도 건재하다.

전례 없는 위기상황 속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의 기치를 외치며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부가 과연 이데올로기의 논리, 색깔 논리에 갇히지 않고,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 성공적으로 그 과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뉴딜 정책 하에서 여성이 오히려 차별받고 억압받았듯, 공공 일자리와 복지를 늘리고 노동의 재생산을 책임지는 큰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세대의 생산과 재생산을 담당하는 기능을 짊어진 여성의 정체성만을 지나치게 부각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여성을 개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지닌 개별적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가족을 책임지고 노동 재생산, 심리적 지지, 훈육과 사회화를 담당하는 가족의 주 보조자로 보는, 여성에 대한 획일화된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던져봐야 하는 주요한 질문에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는 유효한 지침을 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기에 달라 코스따의 이 책 출간이 더 반갑다.

“나는 처음으로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고할 권리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이 되고 싶다.”(184쪽)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이탈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이탈리아 파도바대학 정치법학부·국제학부 교수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이 처해 있는 환경을 연구해왔다.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셀마 제임스와 함께 쓴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과 『여성, 개발, 재생산 노동』(G. F. 달라 코스따와 공동 편집), 『자궁 절제술. 여성에 대한 학대라는 사회적 문제』, 『우리의 어머니인 바다』(모니카 킬레스와 공저) 등을 펴냈다.




집안의 노동자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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