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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찾아올 시간이 필요하다

멜린다 쿠퍼의 『잉여로서의 생명』 (갈무리, 2016)

 

 

주재형 (서울대학교 철학과)

 

 

* 이 서평은 2017.1.8.(일) 2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잉여로서의 생명』 서평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http://waam.net/xe/free/469675

 

* 이 서평은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xs1wC0

 

미하엘 엔데의 환상 소설 『모모』에는 시간 도둑 회색 신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절약하게 만들어 그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시간저축은행에 소속된 이들은 시간을 가장 소중한 재화로 보고 다음과 같은 약속을 사람들에게 한다. “우리 즉 시간저축은행은, 이를테면 당신이 저축한 시간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이자까지 지불하지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더 많이 저축한 셈이 됩니다.” 시간이 마치 돈처럼 저축되고 이자로 불어나는 이 상황은, 사실 단순한 환상은 아니다.

 

멜린다 쿠퍼의 저작 『잉여로서의 생명』이 주목하는 자본주의의 현 상태가 바로 이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70년대 성장의 위기에 맞닥뜨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를 통해 변형되기 시작했을 때, 자본주의는 실물 가치에 근거한 교환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신용에 기초한 부채 경제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쿠퍼는 미국 제국주의에서 이 부채 자본주의 자체의 전형과 완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 즉 최종 상환의 기대가 전혀 없는 부채의 끝없는 창출에 의존하는 초제국주의”(189~290쪽)이다. 세계 경제의 유일무이한 중심으로서 미국은 자신의 부채를 부채로 갚으며 더 이상 어떤 실제적 토대도 없는 자가 증식의 신용 경제를 창출했다. 그것은 무한정한 미래의 약속에 호소하며 현실적 기반 없이 팽창하고 성장하는 부채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이 한계 없는 성장의 자본주의는 또 한편으로 전례없는 착취를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지불 기한을 무한정 연기한다는 것, 그것은 또한 미래를 저당잡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이제 약속들이 실현되고 이윤들이 창출될 시간이며, 그 시간에 대한 기대가 실제적인 현재의 이윤을 창출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부채 자본주의를 낳았던 신자유주의가 왜 ‘생명’이라는 대상에 집중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생산적인 미래 그 자체를 상품화하려 한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 경제의 실체적 핵심에 해당하는 생산력 자체를 상품화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노동자라는 대상보다 더 근원적인 대상, 즉 노동자를 노동자로 만들어주는 그의 생명력 자체를 상품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깐 맑스가 정치경제학에 들여온 혁신을 떠올려보자. 리카르도식의 고전 정치 경제학이 노동에서 출발한다면 맑스는 이를 노동력(Arbeitskraft)으로 대체한다. 노동자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판매한다. 그리고 이 노동력은, 피에르 마슈레의 탁월한 분석에 따르자면, 이중적이다(Pierre Macherey, Le Sujet des Normes, Édition Amsterdam, 2014, 154~173쪽).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은 죽은 노동으로서의 노동력, 즉 재생산되기 위해 일련의 재화의 소비를 필요로 하는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지만, 자본가가 실제로 구매하는 것은 항상 잉여를 생산하는 활동으로서의 노동력(산 노동)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거래에서 이처럼 자기 초과적인 힘으로서의 노동력, 곧 생명의 근원적 활동력을 추출해내고자 하며, 모든 경제 활동은 이 노동력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힘의 차원이 바로 생명이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하는 자 자체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이 생명의 힘을 착취하는가?

 

멜린다 쿠퍼는 서문에서 자신의 작업이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과 생명 정치 개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푸코가 개입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푸코의 생명 정치 개념은, 권력의 초점이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놓이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치 권력은 더 이상 생사여탈권을 통해 행사되지 않고, 인간의 생명, 곧 생산적 힘을 발전시키고 원하는 조건들 속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예속시키는 방식으로 행사된다. 생명 정치는 생명을 관리하는(포괄적 의미에서) 정치, 생명을 육성하는 정치이다. 

 

쿠퍼의 연구는 이러한 푸코적 작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푸코에게서 인간의 생명을 노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권력 장치들이 자본의 외부에 있었다면(생산 과정과 재생산 과정의 분리), 쿠퍼는 이러한 재생산 영역이 이제 자본 내부로 통합되어 생산과 구분불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 재생산 영역을 경제적 계산이라는 땡볕 아래 드러내게 된다.”(27쪽) 이제 인간의 생명을 증진시키고 육성시키는 가능한 모든 과정들이 자본주의적 거래의 대상이 된다. 바로 이렇게 해서 무한한 부채 자본주의는 생명 착취 자본주의와 연결된다.

 

쿠퍼가 이 책의 5장 및 후반부에서 분석하는 줄기세포 연구 및 재생 의학 산업이 이를 예증한다. 다양한 유기적 형태를 만들어내는 인간 생명 자체의 힘이 이제 자본적 투자와 거래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포섭은 자본 경제 외부에서 이루어지던 인간 생명의 사회관리적 과정들, 자본의 착취에 외적 한계를 부여하던 과정들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은 개인화되어야만 하며, 모든 종류의 사회적 중재는 사라질 것이다.”(118쪽) 이 책의 1장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 한계는 생명과의 ‘은유적 결합’을 통해서 극복된다고 가정되고 그러한 가정은 믿음의 형태로, 곧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전파된다.(6장) 이 믿음 밑에 은폐되어 있는 것은, 땡볕 아래 노출되어 더 이상 어떤 사회적 통제와 제한 없이 무한정한 착취 가능성에 내맡겨진 인간들이다. “더 많은 삶,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 반드시 요구된다...”(32쪽)

 

그러므로 쿠퍼가 그리는 신자유주의적 생명 경제에서 생명과 자본의 연결은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우선 그 연결은 자본이 직접 생명의 자연적 과정들을 거래의 대상으로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쿠퍼의 말을 따르지면, 자본은 생명의 재생하고 형성하는 이 힘을 “상품화”한다기보다는, “금융화”한다. 그 힘 자체는 현재 현실에서 어떤 실질적인 재화를 생산하는 힘이 아니라, 생산적인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 실체 없는 약속이 한 순간이라도 지탱될 수 있으려면 그 약속을 믿고 미래를 기다리면서 자신이 현재 가진 것을 자본가들에게 내어줄 사람들, 곧 미래에 대한 믿음 속에서 현재 착취당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미래가 무한히 연장되는 만큼 무한히 확장되는 현재의 고통을 은폐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는 자본 경제의 한계 없는 성장을 설파한다. 이 때 신자유주의는 생명 과학이 밝혀낸 생명의 한계 없는 힘의 수사를 따라간다. 쿠퍼가 흥미롭게 지적하듯이, 산타페 연구소로 대표되는 복잡계 이론이 자본 경제를 기술하는 데 곧바로 적용되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생명력을 금융화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의 한계 없고 창조적인 생명과 같은 또 하나의 생명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명을 비롯한 생명 자체의 힘을 금융화하는 또 하나의 생명인 것이다. 생명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 생명이다.

 

이 모호성은, 쿠퍼가 기술하는 신자유주의적 생명 정치의 근본적 기만성을 드러낸다. 간단히 말해 생명 자체의 금융화는 부채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 자본 경제 자체가 한계를 극복하는 창발적 생명이라는 믿음에 기반해서만 가능해진다.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인 것이다. 

 

『모모』의 회색 신사들이 금융화하는 ‘시간’이란 사실 쿠퍼가 말하는 ‘잉여로서의 생명’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더 많은 잉여가치를 낳을 것이라고 가정되며 저당잡히는 생명-삶이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잉여가치의 원천인 동시에 그러한 믿음 속에서 우리들의 삶 자체가 착취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다. 회색신사에게 자신의 시간을 저축하기로 한 이발사 푸시씨는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지만 정작 그 자신의 현재 삶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각박해져버린다. 신자유주의는 노동하는 현재의 시간이 아니라, 미래, 즉 시간 그 자체를 착취하는 방법을 발명해냈다. 신자유주의의 손아귀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계산 가능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거래 가능한 미래로 탈바꿈한다. 신자유주의는 시간 자체를 앞질러 어떤 종말론적 미래 속에서 시간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잉여로서의 생명은 또한 상실되고 결핍되는 시간이다. 넘치는 생명의 이면은 점점 부족해지는 시간이다. 쿠퍼는 잉여와 결핍의 이러한 교환에 대해서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은 보여주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에 맞설 수 있는 시간 자체를 그들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번역자의 성실하고 꼼꼼한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저자의 방대하고 흥미로운 연구들이 시간을 되찾아오는 싸움에 필요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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