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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문)


바벨탑의 도전이 실패한 후, 인종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어를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쩨파냐, 중세 빙겐의 힐데가르트 수녀, 데카르뜨 등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목적은 달랐지만 모든 인류가 소통할 수 있는 공통어를 구상했으며, 250여 개에 달하는 공통어들이 창안되었다. 독일인 신부 슐라이어가 창안한(1879/80) 볼라퓌크는 이러한 인류의 공통어에 대한 이상이 실현된 첫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언어 자체의 난해함과 창안자의 독단 등으로 바로 뒤이어 탄생한 에스페란토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울리히 린스의 『위험한 언어』는 자멘호프가 인종,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인류의 자유로운 소통을 꿈꾸면서 창안한 평화와 평등을 지향한 언어 ‘에스페란토’가, 자신들과 비슷한 이상을 추구했던 공산주의국가들에서 왜 ‘위험한 언어’로 규정되었으며 또 어떻게 탄압받았는가를 생생한 자료를 통해 규명한 책이다.  

유대인인 자멘호프는 피지배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로운 소통을 방해하는 언어문제가 또 다른 차별과 불화의 원천임을 고민하면서 적어도 언어가 다름으로 인해 인간들이 구별되고 차별받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그는 언어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창안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으며, 이러한 결정을 통해 초기에 열정적인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에스페란토는 서로 다른 요인들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러시아에서는 차르체제의 부패와 불안정한 상황에서 피난처를 찾던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 등 진보적인 흐름들과 접목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외세와 자본의 지배에서 민족과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던 세력들과 접목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가파르게 성장하던 에스페란토는 발전의 커다란 동력이 되었던 정치적 지지자들로 인해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나치 독일과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탄압이 그것이다. 

히틀러의 나치는 에스페란토가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유대인이 만든 유대인들의 언어라는 이유로 탄압했다. 10월 혁명 후, 에스페란토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호이해 수단’으로 이해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소련에서는 1928년 이후 소련공산당 내부의 계급투쟁이 격화되면서 극적인 반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이 제기된 후 에스페란토를 부패한 부르주아 사상의 침투수단으로 또 부르주아 국가를 위한 간첩활동의 규정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탄압이 시작되었다.  뒤이어 다른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같은 이유로 에스페란토와 에스페란토 운동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울리히 린스의 『위험한 언어』는 에스페란토가 창안되자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바로 그 국가들에서 에스페란토에 가해진 가장 무자비하고 잔혹한 탄압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소개와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에스페란토의 감춰졌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위험한 언어』가 출판된 후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필 과정에 반영되지 못한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노력으로 원저의 마지막 절(4.5.6절)에 반영되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이 한국어판에 조금 반영되고 잘못 전해진 내용들이 일부 수정되기는 했지만 새로 발굴된 자료의 양에 비하면 충분하다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위험한 언어』는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면서 탄생한 에스페란토가 ‘위험한 언어’로 규정되면서 겪은 험난한 여정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험난했던 에스페란토의 여정을 통해, 자멘호프가 희망했던 모든 인류의 소통을 위한 교량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3년 11월 12일
문화빵 29호
최만원(『위험한 언어』 옮긴이)

기사 원문 링크 : http://www.culturalaction.org/xe/newsletter/30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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